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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리뷰]'싱글라이더' 감성과 반전사이, 그 아쉬움에 대하여

기사 등록 2017-02-18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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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영화 '싱글라이더' 포스터
[이슈데일리 안예랑기자]감성과 반전 사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한 쪽으로 치우쳐지는 순간 영화의 주제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등장인물도 캐릭터의 상황도, 그저 반전을 위한 장치로만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병헌, 공효진, 안소희가 의기투합한 영화 ‘싱글라이더’(감독 이주영)가 드디어 첫 선을 보였다. 영화는 잘나가던 증권회사 지점장 재훈(이병헌)이 부실 채권에 휘말린 뒤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가족들이 있는 호주로 떠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아냈다.

재훈은 자신의 삶이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오랜 기간 잊고 있던 가족을 불현 듯 떠올린다. 그는 손등에 아내와 아이가 살고 있는 집 주소 하나만을 달랑 적은 채 충동적으로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호주의 따듯한 풍광과는 어울리지 않는 검은 슈트를 입은 재훈은 왠지 모르게 배경과 섞여들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찾은 아내 수진(공효진)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정체 모를 남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재훈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숨기고 먼 발치에 서서 계속 아내를 예의주시한다. 그의 의미 모를 답답한 행동은 영화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정체를 알리지도 않고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으며 혼자서만 아내와 남자에 대한 원망을 키워간다. 그런 그의 행동에 의문을 가질 때 쯤 관객들은 서서히 충격적인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 사진=영화 '싱글라이더' 스틸컷
감성 영화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운 만큼 영화는 감성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특히 영화의 시선을 책임지는 재훈을 연기한 이병헌은 대사 없이 눈빛만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하며 ‘감성’이라는 단어에 적합한 연기를 선보였다. 비슷비슷한 장면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그의 눈빛만큼은 온전히 다른 색채를 띠며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여기에 호주의 따사로운 햇살과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 화면 구성,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며 쌓아왔던 감독의 세심한 연출이 섞이며 ‘감성영화’를 완성 시켰다. 잔잔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극을 감싸 안으며 신선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감독과 배우들이 그토록 강조했던 감성은 극 사이사이 숨겨진 비밀에 의해 공중에 흩뿌려지고 만다. 충격적인 결말로 향하는 모든 지점에서 감독은 반전과 감성을 양 극단에 두고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펼쳐야만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다면 전개와 결말 사이의 괴리가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질 터였다.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감독은 너무나도 친절했다는 우를 범하고 만다. 반전을 위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의도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소재들이 반전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가족들의 곁을 맴도는 재훈, 재훈을 지나치게 의심하는 이웃, 유난히도 재훈과 자주 마주치는 지나(안소희)가 그랬다. 의문과 의문이 쌓여가는 사이사이에 관객들은 하나 둘씩 영화가 가진 비밀이 뭔지 알아차렸을지 모른다. 친절한 복선들이 숨은 그림을 찾는 것처럼 영화의 사소한 부분에 집중하게 만들며 전체적인 몰입을 떨어트렸고 끌어올려야만 하는 감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말았다.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서 결국 ‘반전’이 승기를 잡고야 만 것이다.

▲ 영화 '싱글라이더' 스틸컷
이와 함께 안소희의 연기도 극의 몰입을 저하시키는 요소 중 하나로 작용했다. 전작 ‘부산행’(2016)으로 천만 배우 반열에 오른 그였지만 계속 지적받아왔던 연기력 논란을 이번에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워킹홀리데이로 온 지 2년. 그 동안 고생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그가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극장 곳곳에서는 실소가 튀어나왔다. 이병헌, 공효진과 같은 베테랑 배우들이 절제된 감정 연기로 관객들의 감정을 끌어올렸던 것에 비하면 아직 완급조절에 능숙하지 못한 안소희는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한 듯 했다. 그 결과 잔잔한 표면에 던져진 작은 돌과 같이 영화의 주의를 흐트러트리고야 만다.

특히 안소희가 연기한 지나라는 존재의 충분한 필요성에 대한 의문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수진과 재훈의 존재가 감독이 말한 ‘잊지 말아야 하는 것들을 잊고 산 인물들’이었다면 지나는 그 주제와는 상당히 동 떨어진 인물이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는 단지 반전을 위해, 반전을 관객에게 알리기 위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말이다.

여기에 공효진이라는 감성연기에 특화된 배우를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용하지 못한 점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감성 영화 등 다양한 작품에서 이미 전천후 멀티 플레이어로서 역량을 인정받은 그에게서 이주영 감독은 ‘감성’이라는 가장 중요한 요소를 빼앗아버리고 만다. 수진은 단지 자신의 주체적 삶을 위해 나아가려는 인물로 그려지며 이병헌이 97분 내내 내면적 감성을 한껏 끌어올렸던 것에 비해 너무나도 약한 존재감으로 극의 작은 부분을 차지했다. 마지막 공효진의 오열장면을 뺀다면 그의 연기력에 대해 논할 부분이 딱히 없었다는 점이 배우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부분이 아닐까.

이렇듯 ‘싱글라이더’는 여러 지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엔딩 크레딧을 올렸다. 워너브라더스, 이병헌, 공효진, 안소희라는 단어들이 선사한 기대감이 공중으로 내뿜어지기도 전에 새어나갈 구멍을 너무 많이 남겨놓았다. 이병헌의 연기력과 호주가 주는 이국적인 분위기로 ‘감성’이라는 모든 단어를 대체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된다. 잔잔한 분위기와 충격적인 진실이라는 언밸런스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싱글라이더’는 오는 22일 개봉한다. 러닝타임 97분.

안예랑기자 yrang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