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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재심’ 정우 “단역 시절 쌓인 감정들, ‘긍정의 감정’이라 생각”

기사 등록 2017-02-2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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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실화 모티브에서 부담감을 느꼈을 법도 하지만 배우 정우는 특유의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영화 ‘재심’(감독 김태윤)을 이끌어간다. 데뷔 17년차 그에게 연기를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또 한 번의 인생 연기로 ‘천생배우’임을 입증한 것을 인정하고 봐야한다. 이번 영화에서 속물 변호사 준영 역을 맡은 그는 소년 현우(강하늘)를 만난 후 점차 정의감에 불타는 인물을 연기한다. 그 변곡점이 느껴질 새도 없이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이는 정우의 기교가 감탄스러울 뿐이다.

이슈데일리는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정우와 만나 영화 ‘재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실화인 걸 알고 충격 받았어요. 이런 일이 진짜 있을 수 있는 건가 싶었죠. 입장 바꿔 생각을 많이 해봤더니 두렵더라고요.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소재 자체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무겁잖아요. 제목 자체도 ‘재심’으로 묵직하고. 내가 긴장감을 끌고 가기에 무리가 있지 않을까 염려했거든요. 연출도 중요 하겠다 생각 들었어요. 관객 분들이 지치지 않게 초반에 유쾌하게 풀어가려 했죠.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편안하게 다가오게끔 하고 싶었어요.”

‘재심’은 지난해 무죄판결로 화제가 된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실존인물 최 씨는 2000년 8월 10일 새벽 발생한 익산시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목격자였지만, 가해자로 몰려 살해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10년 형을 산 후 2010년 출소했다. 정우는 15살 소년의 잃어버린 10년을 재심으로 찾아주려 고군분투하는 변호사 준영을 열연했다. 그의 첫 변호사 연기이기도 하다.

“기존에 변호사 캐릭터들이 많이 있었으니 다르게 표현을 하려고 했어요. 관객 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해요. 무엇보다 제가 표현하는 준영의 모습을 그리면서 ‘나라면 어땠을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비중보다 소시민으로서의 성찰, 중심을 가지고 본질을 생각하려 했죠. 가족을 사랑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물이에요. 돈 잘 벌고 잘 먹고 잘 살고 싶어서 변호사가 된 인물이라 처음에는 비교적 단순하게 다가갔고요. 제 성격 자체가 그렇기도 한데, 준영이 변화하는 시점을 딱 정하는 것도 유치할 것 같았어요. 사람은 사소한 에피소드로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쌓여가는 거라서요. 이 영화는 겉으로 보면 사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한 사람이 상처가 있는 사람을 올곧이 이해하고 믿으면서 상처를 감싸주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 생각해요.”

극중 준영은 속물 변호사에서 현우의 재심 사건을 계기로 따뜻한 인간미를 되찾는다. 준영은 출세 욕심으로 사건을 맡지만, 10년 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현우의 재심 청구에 나섰다가 점차 현우의 무죄를 확신하게 되면서 진심을 다해 진실에 다가선다. 영화 말미 그가 쏟아내는 변론 장면은 ‘변호사’ 못지않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까지 한다.

“실존 주인공 박준영 변호사님을 만나면서 실제 인물의 버릇과 말투도 중요하겠지만, 그 사람이 당시 느꼈던 감정을 어떻게 전달할지에 집중했어요. 이런 스타일로 얘기하고, 나에게 이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구나를 유심히 관찰했죠. 변호사님은 굉장히 예리하시고 정확한 느낌이었어요. 친근하고 따뜻하기도 했고요. 편안한 분인 것 같더라고요.”

“전작에서는 선배님들이 많이 계셔서 저도 모르게 의지가 된 부분도 있었죠. 지금은 중간 단계라 생각해요. 제가 후배였을 때 어려웠던 것들을 지금 후배들이 어렵지 않게 해주려 하고, 제가 후배 입장이었을 때 힘이 됐던 걸 떠올려서 현장에서 발휘하려 해요. 독립영화 ‘바람’ 등을 하던 예전에는 잘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했었는데, 그 이후 상업영화를 하면서 많은 예산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책임감이 들더라고요. 제가 그런 걸 느끼게 될 줄은 몰랐어요. 매 작품마다 반성을 하고, 그런 제 자신을 보며 다행이라 생각해요. 50억 정도로 적은 예산이 아님에도 로케가 많았거든요. 그 와중에 쉽게 타협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른 방식으로 채워나가고 싶어서 아이디어를 많이 냈죠.”

2001년 ‘7인의 새벽’부터 ‘라이터를 켜라’ ‘품행 제로’ ‘동갑내기 과외하기’ ‘바람난 가족’ ‘불어라 봄바람’ ‘그 놈은 멋있었다’ ‘사생결단’ ‘짝패’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등 한국영화사의 굵직한 작품들에서 단역과 조연으로 오랜 기간 몸 담아오던 정우는 2008년 ‘스페어’부터 주연 반열에 들어섰다. ‘붉은 가족’을 통해 본격적으로 주연 가능성을 인정받은 후 이제는 완벽히 포스터에 얼굴을 내걸며 ‘쎄시봉’ ‘히말라야’까지 쉼 없이 필모그래피를 다지고 있다.

“단역부터 조연을 거쳐 지금까지 왔는데, 단역을 긴 시간 했을 때 쌓이는 감정들이 있거든요. 긍정의 감정들이라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버릇처럼 큰 그림보다 작은 그림을 보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저는 아직 그런 부분에서 부족했던 것 같아요. 아직 좁은 시야에 질책하기도 해요. 매 작품마다 경험하고 있어요. 감독님이 주신 디렉션을 따라 재미있게 촬영에 임하고 있어요. 리허설을 충분히 하고 현장에서 NG없이 끝냈어야 했거든요. 저예산에서 상업 영화까지 무수한 경험을 쌓으며 느낀 건, 결코 쉬운 작품은 없다는 거예요. 가끔 힘들기도 하고 제 자신이 못나 보이기도 하는데, 그 생각을 한다는 거 자체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어요. 연기를 할 때 불필요한 연기 욕심을 부리고 싶지 않아요. 내가 돋보이기 위한 욕심 같은 거요.”

본인의 매력을 짚어 달라 하니 “모르겠어요. 그 전에는 과대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겨우 기회를 찾은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정우에게서 자체적인 엄격함이 느껴졌다. “저희 영화를 얘기 할 수 있는 것 자체로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것 자체로 감사해요.”라 덧붙이는 그에게 긴 시간 연기할 수 있던 동력을 물었다.

“처음에는 연기와 작품 자체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는 루트가 없었죠. 저는 사무실이 없었거든요. 대학로에도 아는 사람이 있어야 갈 텐데, 용기도 없었어요. 막연하게 ‘씨네21’ 잡지 맨 뒤 공고를 보고 시작한 거예요. 조금씩 발을 디디며 한 작품씩 감독님들께서 좋게 봐주셔서 성장해온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배우가 돼 있더라고요. 후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린 거죠. 어떤 직업이든 우여곡절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제 꿈을 가지고 가려고요. 천만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봐요. 앞으로 기대가 많이 돼요. 두려움 보다.”

(사진=오퍼스픽쳐스 제공)

한해선기자 churab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