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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 ‘통증’ 곽경택 감독 “하나를 버리고 많은 것을 얻었다” (①)

기사 등록 2011-09-1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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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김하진기자]관객들에게 이른바 ‘부산사나이’로 불리며 남자들의 진한 우정, 그리고 사랑을 담아내며 강렬하고 선이 굵은 연출을 해온 곽경택 감독. 그가 10번째 연출작 ‘통증’으로 올 가을 관객들을 만났다.

# 인류상 최고의 테마는 ‘사랑’

남성들의 피 튀기는 폭력이 있고 그 속에 그들의 진한 우정이 담긴다 할지라도 곽경택 감독의 영화 속에 ‘사랑’이 빠진 적은 없다. 그 깊이와 크기에 차이는 있을지언정 곽 감독은 항상 작품 속에 ‘사랑’을 녹여냈다. 이번 ‘통증’ 역시 그렇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전작들과 비교해 ‘사랑’이 깊고 크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와 통증에 치명적인 여자의 가슴시린 러브스토리. 단 한 줄의 설명만으로도 느껴진다.

“인류상 최고의 테마는 ‘사랑’이 아닌가. 연출자로서 이러한 감성을 다루는 작품을 언젠가는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감정 컨트롤에도 신경을 썼다. 다른 작품을 할 때와는 다르게 스스로 외롭게 만드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사람들이 많은 북적거리는 곳보다는 조용한 숙소에서 혼자 작품 속 감성을 유지하려 했다”

소탈하고 소박해 보이는 ‘경상도 남자’의 이미지가 강한 곽 감독이 ‘사랑’을 말할 때는 연출자로서의 섬세함이 느껴졌다. 그는 언젠가 ‘사랑’이라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뤄보고 싶었고, 진정한 사랑을 이번 작품을 통해 풀어내고 싶었다.

“‘진정한 사랑’은 ‘통증’이라는 영화에서 말했다. 아무리 세월이 변하고 사람의 가치관이 바뀌어도 이성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은 영원한 테마다.”

# ‘하나’를 버리고 얻은 ‘많은’ 것들

곽경택 감독의 통산 열 번째 연출작인 ‘통증’은 그의 새로운 시도가 엿보인다. 그 첫 번째 변화로 전작들이 남성이 극의 중심축이 돼 이야기를 이끌어온 반면 이번 영화는 남자 주인공과 동등한 위치에서 오히려 남자를 이끄는 능동적이며, 당찬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이다.

“그 전에는 기획부터 시나리오까지 모두 내 몫이었다. 그래서 전작들은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고집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것이 잘 맞아 떨어질 때는 ‘친구’와 같은 파괴력을 지닌 작품이 탄생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관객들에게 외면 받더라”

곽경택 감독은 엄밀히 따지면 ‘통증’에서 시나리오의 마지막 작업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강풀 작가의 원안에 이은 한수련 작가의 시나리오를 최종적으로 수정-보완했다. 전작들처럼 기획-구상부터 시나리오 작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홀로 했을 때와는 확실히 큰 차이가 있다.

“시나리오 작업에서 조금만 더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면 더 많은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산뜻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나면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의 머리보다 여럿이 의기투합하니 더 좋은 스토리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 내가 하나를 버리면 이렇게 많이 얻을 수 있다”

“내가 표현할 수 없는 원안의 감동이나, 여성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섬세한 요소들은 한수련 작가의 시나리오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한수련 작가가 그려낸 입체적인 인물은 남자인 강풀 작가와 나는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영화 속 사랑스러운 장면들의 배치, 디테일한 부분은 정말 좋았다”

# 대한민국 전체가 나의 무대

두 번째 시도는 ‘통증’으로 곽경택 감독은 자신을 대표하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과감히 탈피해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택했다는 것이다.

“스태프들에게 새 영화 들어간다고 하니, 모두 짐을 꾸려 부산 갈 채비를 마쳤더라. 그래서 이번엔 부산 아니라고 했더니 모두 다시 짐을 풀었다. 아마 관객들은 물론, 제작진들도 이제 나의 영화는 당연히 ‘부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17살 때 고등학생 시절 서울에 올라왔다. 첫 인상이라 하면, 서울 사람은 굉장히 빨리 걸어 다닌다는 것, 그리고 뭔가를 물어보면 굉장히 귀찮아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서울에 있다가 고향인 부산에 가면 우선 마음이 ‘툭’하고 놓인다. 아마 명절날 사람들이 복잡한 교통체증에도 고향을 찾는 이유가 그것이 아닌가 싶다”

그는 그동안 ‘친구’ ‘태풍’ ‘사랑’ 등 이전 작품들의 주 배경으로 등장한 도시 부산이 아닌 서울에서, 가슴 시린 사랑이야기를 담아냈다. 거친 남자들의 우정과 사랑을 부산에서, 경상도 사투리로 그려낸 전작들과는 달리 ‘통증’은 서울로 무대를 옮겼고 주인공들은 모두 표준어를 구사한다.

“‘통증’의 무대를 서울로 한 것은 서로 다른 두 남녀, 외로운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는 이천만의 인구가 북적이는 서울에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산과는 또 다른 정서가 있는 서울을 고집했다. 서울이라는 곳은 ‘군중 속의 외로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이 영화는 그런 군중 속 외로운 남녀의 사랑이야기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버글거리는 동네는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그리고 최근에는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분명히 내 주변, 근거리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지만 정작 ‘나’는 혼자인 것, 그것이 우리네 서울이다. 북적이는 도심 속에서, 버글거리는 와중에 혼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남순과 동현도 그렇다. 그래서 두 사람 모두를 군중 속에 집어넣었다. 남순은 사람이 많은 시장통에서 맞으며 돈을 벌고, 동현 역시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 앞에서 일을 한다. 외로운 두 남녀가 전형적인 북적이는 공간에서 만나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곽 감독은 재개발이라는 명목아래 희생과 욕심, 그리고 사고가 뒤따르는 우리나라 현실을 작품에 담고 싶었다. 이를 그려낼 곳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진 특성이 가장 잘 표현해줄 것이고, 마지막으로 그 곳에 주인공을 던져두며, 잔인하지만 연출자로서 약간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고자 했다.

“이번 ‘통증’은 서울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좋은 작업이었다. 이제는 대한민국 전체를 나의 무대로 만들 것이다”

김하진기자 hajin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