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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4등' 정지우 감독 "부모가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봐줬으면"

기사 등록 2016-04-13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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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김성연기자]'4등'이라는 짧고 간단명료한 영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떠올려지는 이미지가 있었다. 순위권 밖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운동선수의 모습. 그런데 막상 '4등'을 보고 나서는 그 운동선수가 그러한 결과를 얻기 위해 흘렸을 땀 뿐만이 아니라 남몰래 흘렸던 눈물까지 생각하게 됐다.

13일 개봉한 '4등'은 그런 영화다. 우리는 가끔 너무 쉽게 결과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과정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결과를 포장하기 위해 과정도 미화 시킬 때가 많다. 바로 그 지점에서 '4등'이 말하려는 폭력에 무뎌짐을 볼 수 있다. 이다지도 날카로운 견해와 주제를 갖고 있는 '4등'을 연출한 감독은 바로 정지우다.

요즈음 관객들에게는 그의 가장 최근 연출작 '은교(2012)'를 얘기하면 '아아, 그 감독'하면서 아는 체를 하다가도 '근데 그 감독이 왜 이런 영화를?'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다. 아닌게 아니라 삶을 다해가는 70대 노인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10대 여고생의 금기시 된 사랑을 다뤘던 '은교'와 앞서 설명한 '4등'은 분명 간극이 존재한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최근 삼청동의 어느 한 카페에서 정지우 감독과 만나 하나하나 물어봤다.

"저는 상업영화를 하기 전인 90년대 중반에 독립영화 집단에서 오랫동안 지냈던 사람이에요. 2005년도에는 '다섯 개의 시선'이라는 옴니버스 영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적도 있었고요.('다섯 개의 시선'은 다섯 명의 감독이 인권이란 주제를 갖고 참여한 중·단편 영화를 모아놓은 영화다) 저는 제 자신이 성향적으로 조금 '마이너한' 상업영화 감독이라고 제 스스로가 생각을 해요. 그런 면에 있어서 '4등'은 제가 낯설기만한 도전은 아니었는데 대중들이 절 기억하고 주로 만난 것은 많이 알려져 있는 몇 개의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에서 낯설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오래전 부터 해오던 일이었던 거죠."

'4등'도 그가 앞서 작업했던 '다섯 개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국가인권위원회의 제안이 들어오면서 시작된 영화다. 이번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진행한지 꼭 "열두번 째 프로젝트 였던만큼 그간 해왔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 자유롭게 토론했다"고 말한 정지우 감독은 그렇기 때문에 스포츠란 소재를 선택했고 그중에서도 수영을 골랐다고 말했다.

"기록이 나오지 않아서 물 속에서 우는 수영선수의 모습을 머릿 속으로 그려보았어요. 그 이미지가 연결 고리처럼 따라 나오면서 벗어나질 못하겠더라고요. 물 속에서 운다는 것은 정말 참 슬프고도 짠한 기분이 드는 모습이지 않나요."

'4등'이 만년 4등이란 결과를 기록하는 어린 수영선수가 코치의 무분별한 군기 폭력에 노출된다는 이야기로 가닥이 잡혀가자 캐스팅이 문제가 됐다. 국가대표 수영 선수의 몸을 갖고 있는 젊은 배우와 실제 수영을 능숙하게 하는 아역배우가 필요했던 것.

하지만 정지우 감독이 누구던가. 이전 작품 '은교'에서 김고은이란 신예 배우를 단숨에 관능의 뮤즈로 만들었고, 그보다 훨씬 앞서서는 지금에 '칸의 여왕'으로 불리는 전도연을 '해피엔드'로 통해 배우로서 새로운 길을 열어준 감독이 아니었나. 이번 '4등'에서도 노련한 성인 배우들 이외에 눈에 띄게 반짝이는 배우들이 존재한다. 오디션을 통해 발굴한 배우 유재상과 정가람이 그들이다.

"주로 오디션을 통해 새얼굴을 찾는 편인데 대대적으로 배우 오디션을 통해 모집하지는 않고, 주변의 소개로 아름아름 알아간다거나 혹은 '필름 메이커스'라는 사이트나 연극 무대를 통해 배우들을 모집했었어요. 정가람 같은 경우는 감성이 좋은 연기자였는데 인연이 닿았었고, 유재상 군은 수영 선수였던 점이 캐스팅에 가장 크게 작용했죠."

정지우 감독의 배우 칭찬은 그대로 이어졌다. 그는 "배급 때문에 모니터 시사를 하고 개봉 전 많은 분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기도 했었는데 그 때마다 정가람을 보고 '저 사람 누구냐' '나이는 몇 살이냐' 이런 질문들을 하더라고요. 정가람에게도 신나는 기회가 얼른 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였다.

'4등'에 출연한 정가람의 어린 광수 연기가 그토록 돋보였던 이유는 그가 본연에 갖고 있는 배우의 감수성이 빛을 발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가 출연한 과거 장면이 모두 흑백으로 연출됐단 사실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극장을 찾은 관객이 '4등'을 관람한다면 흑백으로 시작되는 영화를 보고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흑백장면은 비단 영화가 과거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차용된 것은 아닐꺼란 생각이 들었다.

"흑백으로 촬영된 과거 장면이 조금 어중띠게 길죠?(웃음) 관습적으로 사용돼 오던 과거 장면하고는 달라요. 저는 영화의 중반 부에 보여지는 보통의 구타 장면과 예전 흑백 장면에서의 구타 장면이 연결되기를 바랐어요. 지금 현재의 구타가 무엇으로 시작됐는지를 기억해달라는 느낌이 묻어있죠. 흑백으로 촬영된 게 섬뜩하기도 하고 보는 것이 조금 힘들고 유쾌하진 않지만 꼭 필요한 장면이었죠."

'4등'에서 등장하는 숱한 폭력들은 '체벌' '군기' '사랑의 매'란 표현으로 여러 번 등장한다. 정지우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였던 광수가 자신의 코치에게 당한 폭력 때문에 수영이란 꿈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또 자신이 코치의 자리에 섰을 때 폭력을 되물림하는 지에 대한 답으로 "폭력이란 피부에 묻는 것처럼 붙어버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폭력이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피부에 묻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과 포옹을 하거나 대화를 할 때 심지어는 같은 장소에 있다가도 그 폭력의 흔적을 남에게 전달해 묻힐 수 있는 것이다.

"아이가 맞을 짓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어요? 하지만 그렇게 폭력이 전달되다 보면 나중에는 처음의 잘못과는 전혀 상관 없는 준호의 동생이 체벌에 시달리는 것처럼 피해자가 생기게 돼요. '때리면 안 돼'라는 주장을 펼치다 보면 '그럼 맞을 짓 한사람은?'이란 반대에 부딪히게 돼요. 애초부터 '맞을 짓은 없다'란 주장이 더 맞는거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때는 그거에 맞는 벌칙을 찾거나 다른 제도를 마련해서 처리 해야하는 거죠. 폭력에 세습된 관계에서는 그런 희망을 찾기 힘들어요. 그것의 근거가 '4등' 안에서 분명한 증거로 보여지고 있잖아요."

'4등'은 단순 폭력 없는 삶을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폭력이 시작된 본질적인 사건으로 돌아가 그것이 어떻게 전이되는지를 파악해 폭력에 동참한 사람, 폭력을 동조한 사람, 폭력을 눈감아 준 사람들의 모습을 징그러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본 관객들은 모두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누구는 거울처럼 자신의 모습을 볼 것이고 다른 누구는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라며 후회하는 이도 분명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모두 옳다. 다만 우리가 멀리 해야할 생각은 이런 점들을 묵인하고 외면하는 것이다.

"'4등'을 부모 혹은 코치가 학생을 데리고 영화를 같이 봐주신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한 마디 씩 서로 속에 있는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까요. '엄마는 그때 왜 그랬어?' '엄마가 오죽하면 그랬겠니' '네가 볼 때 저 엄마는 어때?' 이런 대화들 말이에요. 그런 상황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면, 그렇게 되기가 정말 어렵겠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고마울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사진=이슈데일리 남용희 기자)

김성연기자 sean5347@ 사진 남용희 기자 nyh5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