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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페이스 메이커' 김명민, "그와 함께했던 별이 빛나던 밤에"

기사 등록 2012-01-3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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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홍수연 인턴기자]배우 김명민의 눈에서 별이 반짝인다. 그 별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속 목동이 느꼈던 것처럼 신성하고 프로메테우스의 불처럼 뜨겁다. 영화 '페이스 메이커'는 생각만큼 좋은 성적을 올리진 못했지만 그래도 김명민이란 배우가 얼마만큼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지는 보여준 작품이었다. 요즘 새로운 영화촬영에 여념인 그가 기자와 다시 대면했다.

그의 연기에 대한 사명감은 티 없이 순수하고 그 열정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영화 '페이스 메이커'에서 김명민은 마라토너다. 하지만 이전에 그가 보여줬던 날카로운 모습을 기대하진 마시라. 고작 42.195km 중 30km밖에 달리지 못해 메달도 목에 걸 수 없는 안타까운 운명을 가진 마라토너니까.

뒤돌아 몰래 흘리는 눈물처럼 슬픈 것이 없듯이 끝까지 완주할 수 없는 마라토너의 마음만큼 아픈 것이 있을까.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그의 희생이 지금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명심하자.

이제부터 후배들에겐 길을 알려주는 밤하늘에 나침반이 되고 관객을 위해선 자신을 혹사해야만 하는 벌(?)을 받게 된 배우 김명민의 영화이야기와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려한다.

Part 1. 김명민의 ‘페이스 메이커’이야기

# 소개팅에 나가 첫 눈에 반한 느낌

우선 많은 대본 중 왜 하필 ‘페이스 메이커’를 선택했냐는 질문에 김명민은 이내 "생각처럼 많은 작품이 들어오는 건 아니라"고 겸손하게 답한다. 그리고 그는 처음 '페이스 메이커'의 대본을 읽고 난 후 받았던 첫 인상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이건 해야 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늘이 내려준 작품이라는 그런 느낌? 소개팅에 나갔는데 첫눈에 상대방에게 반한 것 같은 설렘이 있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만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 눈물이 흘렀다. 무엇보다 '페이스 메이커'의 만호와 나는 인연이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이 대본이 색다름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번째 읽으면서 현실적인 문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대본에 뛰고 난 뒤에 조금 있어 또 뛰고 그리고 계속 뛰는 장면들이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고 쉽지 않은 작업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말이 힘들게 달리는 모습

영화 '페이스 메이커'의 언론 시사회에서 그는 주인공 주만호를 연기하기 위해 인공치아를 꼈다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만호를 위한 그의 세심한 마음에 모성을 느낀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책을 읽으면 우리는 상상 속에서 인물과 배경을 그리게 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배우들도 대본을 읽으며 어떤 장면으로 그려갈지 미리 떠올려보는데 그 형상화 작업들이 배우들에게는 매우 구체적이다."

"만호가 무거운 짐을 떠안고 달리는 모습에서 말의 힘겨운 호흡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행동을 조금씩 그려가다 보니 몸짓과 발짓까지 선명해졌다."

# 인공치아를 내 몸의 일부처럼

처음 그가 만호를 연기하기 위해 인공치아를 껴야겠다는 말은 감독에게는 반갑지 않았다. 마라토너라서 화장도 안하겠다, 거기다 인공치아로 돌출된 구강구조를 만들겠다니 망가뜨려도 너무 망가뜨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호를 생각하는 마음은 김명민이나 김달중 감독이나 비슷했나보다.

"만호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독특한 매력을 부여하고 싶었다. 일류 요리로 만들어봐야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그런데 너무 아프더라. 무조건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공치아를 끼고 있는 시간을 조금씩 늘렸고 그러다가 끼고 잠도 자고 밥도 먹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발음이었다. 첫 리딩 때 인공치아를 끼우고 대사연습을 했다. 동시녹음 된 목소리를 직접 들으면서 교정해갔다. 스태프들의 반응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또박또박한 말투는 만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알아듣지 못할 정도가 아닌 만호의 어눌한 말투를 찾아서 스태프들과 함께 교감하며 작업해갔다."

# 말벅지(?)가 된 건 김명민의 자유의지 덕분에?

설상가상이다. 인공치아 끼우는 것도 고된 일인데 마라토너라 뛰지 않을 수 없으니. 김명민은 만호를 연기하기 위해 마라토너에게 어떻게 그런 다리를 만드냐고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간단명료했다. 뛰다보니 이렇게 됐다고.

"마라토너라 그냥 달리기 시작했다. 문제의 본질은 그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마라톤 선수들 다리를 보고 억소리가 나왔다. 저 다리를 어떻게 만드나 걱정부터 앞섰다."

"너무 힘들어서 촬영 끝나면 다시는 안 달리겠다고 다짐했지만 지금도 달리고 있다."

말벅지를 사수(?)해야 하겠다는 건 아닌 것 같다. 여성 팬들을 위한 시혜적 차원에 서비스도 아닐 듯하다. 배역에 빠져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러 있고 싶은 건 반가운 친구를 만나 헤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다를 바 있을까.

# 잘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

영화 '페이스 메이커'에 중요한 화두가 있다. 우리가 살면서 고민해봐야 할 문제. 잘할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것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나. 만호를 떠나서 배우 김명민은 어떤지 물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는 일이 뚜렷했다. 남들 앞에서 춤추고 연기하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춤꾼이라 소문이 나서 소풍을 가면 여기저기 다니며 춤추느라 앉아있을 시간도 없었다."

"친구들의 환호를 즐기게 되면서부터 연기에 대한 꿈도 커져갔다. 인기를 얻게 되니 반장도 하게 됐다."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즐겁게 하다보면 잘하게 되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깨달음. 어쩌면 영화 ‘페이스 메이커’도 같은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운이 좋은 사람일까. 현명한 사람일까.

# 만호의 페이스메이커는?

우리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곁에서 황금보다 빛나는 희생을 아끼지 않는 이들 덕분이다. 죽어라 동생 성호 학비와 마라톤 금메달 후보 민윤기를 위해 뛰는 만호의 페이스 메이커는 누구일까?

"종수. 극중 종수는 친구를 위해 하는 일도 때려치우고 만호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지원이와 박성일 감독. 그들이 있어 만호는 뛸 수 있다. 그리고 박성일 감독도 만호의 페이스 메이커일 수도 있다."

김명민에게 만호의 페이스메이커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박성일 감독을 포함시킨 건 조금 의외였다.

#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박성일 감독이 금메달을 위해서 물불가리지 않는 아빠 같은 사람이라면 만호는 동생 성호의 일이라면 극성인 엄마 같은 사람이다. 보통의 형과는 다른 모습인 만호를 김명민은 모성으로 접근했다.

"영화 속 만호의 모습은 아들을 끔찍이 여기는 어머니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성호를 대할 때 만호는 말도 빨라지고 행동도 허둥지둥 호들갑이다. 특히 재수씨에게 통장을 돌려줄 때의 만호의 모습은 폐 끼치기 싫은 어머니 같다."

그렇다면 김명민에게 만호와 같은 형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 만호 같은 형? 글쎄...

시사회에서 그는 배우 김명민의 페이스 메이커로 자신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지인들이라고 대답했다. 김명민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만약 김명민에게도 만호 같은 형이 있으면 어떨까?

"만호는 융통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나와는 좀 다르다. 솔직히 말하면 답답할 것 같다. 성호의 입장이 이해된다. 평생 빚을 지고 살았던 성호의 영화 속 대사처럼 마음에 무거운 돌덩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 나도 성호와 비슷할 것 같다."

김명민은 의외로 소탈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친 기색 없이 처음하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하겠다며 팔을 휘두르던 그의 모습에 그의 인간적인 면들이 더 궁금해졌다.

Part 2. 배우 김명민의 이야기

# 배우는 인물을 위한 대변인

이제부터 배우 김명민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지만 조금은 특별한 일. 김명민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는지부터가 궁금했다.

"실제로 인물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철저하게 주어진 배역으로 거듭나고자 한다. 배우는 배역을 대신하는 대변인이다. 그래서 인물의 면면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면 미안한 마음이 생기게 돼서 더 알고 싶어지고 호기심이 일어난다."

한껏 몰입했던 인물과 작품이 끝나면 그는 어떻게 될까? 어떤 마음으로 지난 배역으로 부터 벗어날지도 궁금했다.

# 오래된 연인과 헤어진 느낌

극 속 인물을 연기하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과 비슷한가보다. 호기심을 가지고 알면 알수록 좋아지고 이해가 깊어진다. 그리고 연민도 생긴다.

"작품을 다시 시작하기 전 휴식기간 동안 여행을 한다. 여자 친구와 헤어져서 아픔을 달래는 시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이 경우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새로운 작품을 만나면 조금씩 잊혀 진다."

그는 온통 연기에 대한 생각뿐인 것 같다. 그리고 끊임없이 고민한다.

# 마음 비우기

김명민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자기절제 때문이다. 그는 등산도 좋아하지만 제일은 드라이브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과 춘천고속도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다.

"정상을 향한 마음으로 산에 오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래서 등산도 좋아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건 드라이브다. 잡념이 없어진다. 연기를 하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해진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이치다. 그에 또 다른 원동력은 가족이다. 특히 아들 이야기에 그는 금세 표정이 밝아졌다.

# 아들이 연기자가 되겠다면?

부전자전.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김명민의 아들도 만약 배우가 되겠다면 배우 김명민이 아닌 아버지 김명민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사실 내가 걷던 그 길을 똑같이 걷게 하고 싶지 않다. 배우란 자기 자신과의 처절한 사투를 끊임없이 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든 직업이다. 더구나 배우란 직업을 가지고 살다보면 어느 순간 내팽겨쳐진 것 같은 기분을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그 부담스러운 짐과 외로운 싸움은 마라톤 같다. 그래서 아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가 확실하다면 끝까지 말릴 생각은 없다. 중요한 건 본인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거다. 잡초 같은 생명력을 가진 배우가 되려면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김명민이 그동안 배우로써 걸어온 길들이 녹녹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의 인기 뒤에 그는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좌절을 느꼈을까. 그의 발자국들은 아직도 하늘에 선명히 빛나는 천칭자리의 별자리다.

# 김명민의 연기 스토리

이제 대통령역할만 남았다. 장군과 지휘자 역할을 했으니 남자배우의 로망 3가지 중 나머지 하나 대통령만 연기하면 된단다. 하지만 김명민은 그런 주변의 말들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런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배역과 애착이 가는 역할에 대해 물어봤다.

"조선 명탐정 각시투구 꽃의 비밀에 명탐정 역. 조금은 허당 끼가 있는 나의 원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 하얀거탑의 장준혁과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준 이순신 역이다."

지난 그의 필모그래피들은 아직도 팬들의 뇌리 속에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앞으로 그는 어떤 별이 되어갈지.

# 앞으로의 김명민의 모습은?

어떤 블로거는 김명민의 악역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연기본좌 김명민은 단 한 번도 스크린에서 악역을 맡은 적이 없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살인을 일삼는 배역이라면 사양이다. 명분이 있다면 악역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렇다면 나쁜 대통령 역할은 어떨까.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나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인 대통령의 모습을 한 김명민을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

# 배우 김명민에게 연기란?

"연기는 앞으로 평생 풀어야 할 과제다."

지금의 삶이 정말 행복하다는 배우 김명민. 떨어지지 않는 태양 같은 열정과 청명한 하늘 같은 경건함으로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그와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어쩌면 행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영화 '페이스 메이커'에 대해 이렇게 소회했다.

"우리 대부분은 평범한 98%에 속해있다. '페이스 메이커'는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평범한 98%의 사람들에게 주만호가 보내는 작은 응원의 메시지다. '페이스 메이커'를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소중한 것들을 찾았으면 좋겠다."

무명연기자에서 출발해 이제는 스타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배우 김명민. 후배들에겐 연기에 대한 길잡이가 되며 작품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혹사하는 일에도 주저함이 없는 그는 이제 우리들의 꿈과 희망이 됐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와 보니 하늘에 많은 별이 떴다. 그중 가장 밝고 영롱한 별을 찾았다. 오늘도 그 별은 바람(hope)에 스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