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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스케치]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전하는 묵직한 위로, '다른 길이 있다'

기사 등록 2017-01-11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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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안예랑기자]얼어붙은 마음들이 서로를 알아볼 때, 다른 길이 있다. 혼자 견뎌낼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영화 '다른 길이 있다'(감독 조창호)가 3년만의 개봉을 알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10일 오후 서울 성동구 CGV왕십리에서는 '다른 길이 있다'의 언론 시사회가 진행됐다. 이날 감독 조창호와 두 주연 배우 김재욱, 서예지는 영화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전했다.

혼자 극복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그들의 인생 여정을 계속할 수 있을까. 감독의 고민이 영화를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날 조창호 감독은 "사람들 간의 스침이 위로가 될 수 없는 사회상이 너무 절망적이었다. 스스로 고통을 이겨내지 못할 만큼 지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고 영화 제작 이유를 밝혔다.

이 영화는 사실 햇수로 3년 전인 2015년 부산 국제 영화제 초청작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후 3년, 영화가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감독의 감회가 남다를 터였다.

조창호 감독은 "앞으로 일어날 많은 기적 중 하나의 기적을 이뤘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영화에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모두 고단한 삶에 지쳤고, 마지막 순간에 우연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이 작품에서 서예지는 병든 엄마의 수발을 들며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을 안고 사는 정원을 연기했다.

서예지는 이날 "사실 개봉을 못할 줄 알았다. 그래서 느낌이 새롭다. 영화를 8번 봤는데 지치지 않고 볼 때마다 계속 의미가 더해지고 있다"며 개봉 소감을 밝혔다.

삶에 지쳐 자신의 아픔밖에 볼 수 없던 남자 수완을 연기한 김재욱은 "나도 영화를 많이 봤다"고 덧붙였다.

그는 영화를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배우들은 늘 기다리는 시나리오가 있다. 이 시나리오에 연기를 하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다른 길이 있다'가 그런 영화였다"며 "운명이라고 생각 한다"고 답했다.

영화에 대한 두 배우의 극찬을 들은 조창호 감독은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그는 왜 김재욱과 서예지를 선택했을까. 그는 캐스팅 이유 질문에 "내가 캐스팅한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작품을 선택해주셨다고 생각한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두 배우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김재욱은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런 부분이 확신 앞에서 망설이는 수완과 닮아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서예지는 설득력이 강한 사람이다. 얘기를 하다보면 자꾸 감화되는 느낌이 들었다"면서 "이런 설득력 있는 배우가 선택한 캐릭터라면 나도, 관객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서예지에 대한 첫인상을 덧붙였다.

확신하지 못하는 배우 김재욱과 확신을 안겨주는 배우 서예지의 앙상블을 기대했다며 감독은 두 사람의 연기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김재욱은 이 모든 것을 조창호 감독의 시나리오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완이가 어떤 행동을 하기까지의 감정선이 굉장히 담담하고 처연하게 시나리오에 잘 표현돼있다"면서 "그만큼만 따라가도, 그리고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연기가 잘 나오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공을 돌렸다.

이날은 영화 촬영장의 뒷얘기에 대한 질문도 빠질 수 없었다. 영화가 인간의 어둡고 깊은 심연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심리를 겉으로 표출하는 장치를 많이 사용했다.

그 중 수완이 걸어다녔던 아슬아슬한 얼음물은 보는 사람마저 오싹함을 느끼게 했다.

김재욱은 이 장면에 대해 "정말 무서웠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하지만 그의 두려움도 감독의 열정을 이길 수는 없었다.

김재욱은 "감독님은 말보다 행동으로 설득하신다"며 "매일 밤마다 얼음물 위에 서 있는 사진을 보내주셔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감독의 열정에 존경을 표했다.

그러나 김재욱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얼음물도 사실은 조창호 감독의 실제 경험이었다.

조창호 감독은 "어느 겨울, 한강에 갔는데 얼음이 얼어있더라. 계속 걷다보니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서 뒤를 쳐다봤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앞을 보니 한참 남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중심을 잡고 누워있는 일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러한 경험이 그에게 ‘삶에 지친 사람’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고, 그는 그들을 위로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조창호 감독은 이날 시사회 내내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드러냈다.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그의 생각이 누군가에게 계속 위로를 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창호 감독은 끝으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에게 이유를 묻는 것은 폭력적인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일도, 누군가에게는 큰 일로 다가와 때로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하곤 한다”며 타인의 아픔을 재단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수완은 자신의 죽음에 가까워지고 나서야 타인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타인의 고통으로 인지하게 됐을 때, 수완에게는 ‘다른 길’이 있었다. 이처럼 주위를 둘러보라 말하며 지친 사람에게 희망을 선사해주는 '다른 길이 있다'는 1월 19일 개봉한다.

(사진= '다른 길이 있다' 포스터/스틸컷)

안예랑기자 yrang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