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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김재욱 "'다른 길이 있다', 내가 타고 있는 차를 해부해 본 기분"

기사 등록 2017-02-11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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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안예랑기자]첫 인상은 역시 차가웠다. 선 굵은 얼굴이 서늘한 느낌을 주는 배우 김재욱. 드라마 '커피프린스1호점'(2007)에서 매사에 시니컬한 카페 직원 김선재를 맡아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는 그동안 다양한 작품에 등장하며 차근차근 자신의 필모를 쌓아왔다.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분위기를 닮은 겨울 감성 영화 '다른 길이 있다'(감독 조창호)로 돌아왔다. 영화는 김재욱과 너무 잘 어울리는 색감을 가지고 있다. 이슈데일리는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재욱과 만남을 가졌다.

'다른 길이 있다'는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이후 2년 만에 공식적인 개봉을 알렸다. 영화가 개봉한 기분을 묻는 질문에 김재욱은 '당연한 일'이라고 답한다.

"감격스럽다거나 다행이라고는 생각 안 해봤어요. 언젠가는 개봉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2년 동안 감독님이랑 영화가 다듬어지는 과정을 함께 지켜봐왔거든요. 시간이 지난만큼 감동이 진해졌어요. 그런 영화여서 겨울이라는 계절에 개봉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김재욱은 영화의 개봉 시즌에 맞춰 발 벗고 홍보활동에 나섰다. 각종 무대인사는 물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춘천까지 찾아가는 열정을 보였다. 영화의 크기, 흥행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영화의 톤이 정말 좋았어요. 굉장히 좋아하는 톤의 영화가 운명적으로 나를 찾아왔다는 생각을 했어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바로 하겠다고 결정했어요. "

관객들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상업 영화도 아니었고, 재미를 주는 영화도 아니었지만 김재욱은 영화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그가 좋아하는 톤의 영화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극화된 영화도 좋아요. 인물이나 스토리의 희로애락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도 좋죠. 그런데 이 영화는 우리 가까운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요. 미장센, 배우들의 동선, 앵글이 인물의 외형보다는 정서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보여주는 그런 영화여서 좋았어요."

김재욱의 말처럼 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특히 김재욱이 연기한 수완이라는 인물은 대사, 행동 하나하나에 그 인물이 느끼는 감정이 함축적으로 담겨있었다. 인물에 대한 설명이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않아, 영화를 보는 내내 수완이 궁금해졌다.

"저는 천 명의 사람이 있으면, 천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목표가 같아도 인물들의 히스토리가 다르듯이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인물들의 행동, 감정에 의아함을 느끼는 것도 영화를 보는 재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관객 분들이 '수완이는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라고 가끔 물어보세요. 수완이는 결과적으로 자살하는 과정에서도 굳건한 결심이 없어요.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없는 인물. 망설이는 인물. 자살하기 전 날 밤에 만난 여자에게 새로운 희망을 느끼기도 하죠. 인간의 우유부단함이나 모순을 수완의 캐릭터에 녹여내려고 했어요."

영화는 인물의 내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큰 에피소드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캐릭터의 행동을 통해 메시지를 계속 던진다. 그렇기에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했다. 서예지와 김재욱, 단 두 사람이 영화를 끌고 가기에는 버겁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

"영화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의심하는 시간들이었어요. 감독님이 만든 그림에 이 연기가 맞을까. 이번 영화에서는 사람의 내면을 다루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계속 제 연기에 의심을 가져야했어요. 칭찬 한 마디에도 자신감이 올라가고 연기에 그게 표현이 되는데, 그런 부분이 없으니까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었죠. 촬영을 하면서 성취감에 젖은 날들이 없었어요. 그 전체적인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었어요. 그런데 결과적으로 보니까 그런 과정들이 수완이를 표현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더라고요."

김재욱은 영화를 끝내고 비로소 '우리의 시간들이 틀리지 않았구나'라는 성취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거쳐 영화가 만들어졌고,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 관객에게 공개됐다. 김재욱은 '이번 영화는 기존 영화에서 할 수 없던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일단 해보고 싶었던 톤의 영화를 했다는 성취감을 얻었던 것도 좋았어요. 영화를 통해서 가장 크게 얻은 건 경험. 이번 영화를 통해서 처음으로 영화의 시작부터 개봉까지 그 과정에 전부 관여했어요. 어쩌면 다양성 영화라서 가능한 작업이었겠죠. 조창호 감독님이 기회를 주셨거든요. 내가 타는 차를 해부해 본 기분?(웃음) 원리적으로 영화 자체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어요. 나중에 어떤 길을 갈 지 모르겠지만 제 연기 인생에 있어서도 많은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아요."

김재욱은 인터뷰 동안 여러 번 영화의 '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톤'은 영화에 대한 김재욱의 확고한 주관을 표현하는 단어다. 그는 캐릭터가 자신의 이미지와 맞는다고 영화를 고르지 않는다.

"캐릭터의 색 때문에 영화를 정해본 적은 없어요. 이전에 찍었던 영화 '덕혜옹주'(2016)에서 캐릭터도 차갑기 보다는 이성적이고 따듯한 인물이었거든요. 함축적이고 압축적인 인물, 그가 가진 어떤 히스토리, 복합적으로 캐릭터를 보고 정해요.”

차가운 이미지의 캐릭터만을 고수하지 않는다는 김재욱. 그러나 자신도 여전히 많은 분들이 ‘커피프린스 1호점’의 차갑고 냉정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외적인 부분이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며 그는 다양한 역할을 해왔음을 어필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채정안, 박규리와 함께 호흡을 맞춘 영화 ‘두 개의 연애’(2016)에서 두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 갈피를 못 잡는 지질한 남자를 연기하기도 했다. 김재욱이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연기는 어떤 연기일까.

“도전해보고 싶은 영화. 지금 딱 생각난 거는 애쉬튼 커쳐랑 브리트니 머피 나온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2003). 정말 ‘개판’치는 영화가 있거든요.(웃음) 맞고, 기절하고. 저런 영화 찍으면, 찍으면서도 되게 즐겁고 보기에도 즐겁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관객 분들에게 이제 웃음을 드리고 싶네요.”

김재욱의 매력적인 미소와 낮은 목소리로 뿜어내는 연기 열정을 고스란히 받다 보니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몰랐다. 영화에 대한 소신과 목표를 향한 쉼 없는 고민이 가득 담긴 진중한 대답을 듣다보니 그가 찍은 모든 영화들이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 차가운 외형과 인간적인 감성. 상반된 매력을 가득 담은 그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는 얼마나 다채로운 색채를 띠었을까. 앞으로 그의 연기 열정이 더 다양한 작품을 통해서 화려한 색으로 피어나길 바란다.

(사진=이슈데일리 서종민 기자)

안예랑기자 yrang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