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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브뢰겔의 '뒤죽박죽 뒤집힌 세계'

기사 등록 2011-07-1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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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테르 브뢰겔 - 네덜란드 속담 (1559)

[박정은 미술객원 전문기자] 중세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브뢰겔의 그림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는게 특징입니다. [사육제와 사순절 사이의 싸움], [야외에서의 혼례 춤] 같이 중세 마을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놀이]에 등장하는 사람만 무려 25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브뢰겔의 대표작의 하나로 인식되는 [네덜란드 속담]도 예외는 아니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속담을 수집 한 이래 속담 채집은 16세기 백과사전적 작업의 하나로 자리잡았는데, 브뢰겔은 그런 속담을 그림으로 구현했습니다. 대단한 것은 개개의 속담을 총망라해 그것을 하나의 작품 속에 집대성했다는 점입니다. 중세 마을을 배경으로 삼아 무려 118개에 달하는 속담을 개개 사람들의 행동으로 묘사해 냈습니다. 그중에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같은 우리 속담에 유사한 것도 있어 흥미롭습니다. 지구본 밑에 십자가를 거꾸로 매달아 놓은 탓에 이 그림은 [뒤죽박죽 뒤집힌 세계]라는 제목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림에는 100개가 넘는 속담이 마을 사람들의 행동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양털과 돼지털을 깍는 사람도 있고 (이득 보는 사람과 손해 보는 사람), 악마한테 고해성사를 하는사람도 있고 (원수한테 속을 털어 놓는다), 죽을 엎지른 사람도 있으며 (한번 엎지른 물은 되담을 수 없다), 남편한테 파란 망토를 입히는 여인도 있습니다 (남편 속이기). 무엇보다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행위를 유머러스하게 묘사함으로써 어리석고 무분별한 서민들의 일상에서의 행동 하나 하나가 속담과 절묘한 매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브뢰겔은 귀족이나 지배층이 아닌 서민들을 중심으로 그림에 시대의 생활상을 담아내고 있는게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농부나 수공업자 등 피지배 계층을 다수 등장시켜 그들의 고단한 삶을 코믹하게 그려냄으로서 서민들의 일상을 희화화시킨 듯한 느낌을 줍니다. 어느 작품이든 브뢰겔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초상화 모델처럼 가만히 앉아있거나 서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무수히 많은 마을 사람들이 등장해서 각자 분주하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게 또한 특징입니다. 비록 기독교적 세계관 속에 서민들을 옭아매는 인습의 중세 사회지만 마을 사람들은 힘들고 고단한 일상임에도 활력이 넘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네덜란드 속담'을 비롯해서 브뢰겔의 대다수 그림들은 항상 군중들로 북적거리며, 그리 높지 않지만 위에서 내려다 본 세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등장 인물들 대부분이 희화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탓에 마을은 하나의 연극 무대 같고, 인물들은 흡사 무대 위의 배우 같은 느낌을 줍니다. 브뢰겔의 작품들은 대개 중세 마을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서 서로 뒤얽히면서 다양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방대하면서도 세밀하고, 코믹하면서도 활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비록 고귀하고 풍요롭지는 못해도 일상의 여러 모습들을 통해 그 곳에도 삶이 있고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브뢰겔 1.jpg

브뢰겔 < Pieter Bruegel the Younger >(1564~1638)

네덜란드 플랑드르의 화가. 브뤼셀 출생. 브뢰겔 1세의 장남으로 주로 아버지의 그림수법을 모방하여 풍속화·종교화 등을 그렸습니다. 또한 겨울풍경이나 공상적 또는 괴기한 장면 및 악마이나 지옥의 장면 등을 즐겨 그려 그를 ‘지옥의 브뢰겔’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대표작에 '십자가를 진 그리스도' '베를린국립미술관 소장'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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