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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선의 드라마원정기] '심야식당' 시 같은 명대사, 그 속에 담긴 철학

기사 등록 2015-08-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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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드르륵~’ 문을 열고 ‘심야식당’을 찾는 손님들과 시청자들. 우린 왜 이 곳을, 굳이 이 야심한 시각에 찾게 되는 것일까. 오늘 하루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고된 삶을 산 우리들은 지친 하루를 정리할 나의 안식이 필요한 시간, 장소를 원했던 것일 거다.

심야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그들의 말 못할 이런 저런 사연들을 털어 놓으며 공감을 구하고, 시청자들은 그 사연들에 웃음과 눈물로 공감하게 되며 사회생활을 하며 억눌러 왔던 솔직한 감정들을 배설해버린다. 특히 드라마 ‘심야식당’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혼을 실어 짧은 방영 시간에 극도의 ‘힐링’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작가의 마력이 있다.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서두를 무렵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메뉴는 이것뿐,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준다. 굽이굽이 후미진 곳까지 찾아주는 이가 있냐고? 그게 꽤 많다”

매회 심야식당의 오프닝에서 마스터 김승우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천천히 이 말을 읊는다. 이와 함께 작가는 손님들의 모든 말을 들을 자세가 되어 있다는 마스터의 마음가짐을 알리고 있다. 실제로 마스터는 오프닝 이후로 철저히 청자의 입장이 돼 손님들의 사연을 묵묵히 들어줄 뿐이다.

하지만 그의 조용한 끄덕임은 왠지 사연을 더 쏟아내고 싶은 신뢰감을 준다. 관찰자 시점으로 일관하는 그의 태도는 시청자들의 시선과 맞닿아 있기도 하며 마스터 캐릭터 자체에 대한 호기심, 극의 전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네가 하는 선택을 끝까지 책임 질수 있다면 그것은 옳은 선택이야. 매 순간의 오늘이 너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날이야”

2화 ‘메밀전’ 에피소드에서 비운의 하이틴스타 정운수로 분한 심혜진은 우연히 심야식당을 찾았다. 식당에서 복잡한 가정사를 이야기하는 유정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고는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위로하며, 연기자를 꿈꾸는 모습까지 같은 점을 발견한 정은수는 유정에게 위와 같은 말로 응원했다.

이 말은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살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이 글을 계속 읽어나갈지 말지, 다음 식사는 무엇을 먹을지, 이번 주말에는 무얼 할지, 올해 시험·취직 등 내가 계획한 일을 성공시키기 위해 단계는 잘 밟아가고 있는지... 시간은 흘러가며 양자택일에 따른 나비효과는 분명 나타날 것이다. 그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책임은 본인의 몫이다. 심혜진의 조언은 냉정한 현실에 놓인 우리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

“아빠가 우리 샛별이한테 진짜로 사라지는 마술 꼭 보여줄게“

5화 '햄버그스테이크 정식' 편에서 영식 역을 맡은 지진희의 대사다. 영식은 5년 전 아내와 이별하고 아이 샛별이를 홀로 키우며 마술사의 삶을 살던 남자였다. 하지만 그에게 간암이 찾아왔고, 이 상황을 우연히 알게 된 아내가 샛별이를 데려가려 했다. 이후 영식은 딸 샛별과의 만남에서 하고 싶은 것을 질문, 샛별은 영식에게 "아빠와 마술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때 영식은 위의 대사를 차오르는 눈물과 함께 흘리고는 얼마 후 심야식당에서 손님들을 관객삼아 마술을 펼치던 중 모습을 영영 감췄다.

영식의 이 같은 행동은 자식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우리 부모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샛별은 자라서 아버지 영식을 이해할까, 원망할까? 아마 자신의 인생 대부분에서 영식에 대해 원망을 느낄 거라고 본다. 과연 자신의 완벽한 모습만 보이는 게 부모의 옳은 선택인가에 대해 필자는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진실만큼 통하는 게 없고, 진실만큼 숨길 수 없는 게 없다. 특히나 가족이란, 못 볼 걸 다 보며 살아야 성립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긴밀한 사이에서 희로애락을 공유할 때 비로소 구성원들 서로가 힘이 되어주는 ‘즐거운 나의 집’이 될 수 있겠다. 이 대사는 우리가 현재 혹은 앞으로 지녀야 할 부모로서의 태도와 마음가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먹어봤자 내가 아는 맛이라고? 아니까 더 먹고 싶지! 가장 큰 문제는 세상에 아는 맛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다이어트는 결국 의지의 문제더라고요. 음식의 유혹에 지지 않겠다는 의지”

6화 '돼지갈비 김치찜' 에피소드의 주인공 ‘뚱녀’ 역으로 등장한 박준면은 다이어트에 거듭 실패하며 깨우친 자신의 다이어트 철학을 내뱉어 여성 시청자들의 폭풍 같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 여자라면 한 번 쯤은 다이어트에 도전, 실패한 경험이 있을 터. 원론적이기만 한 다이어트 명언을 신랄하게 비꼰 그의 솔직한 태도는 여성들이 항상 품고 있는 답답한 문제에 사이다처럼 속 시원한 쾌감을 준다.

‘심야식당’은 롱테이크 촬영 기법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대사 하나 하나를 더욱 깊이 곱씹을 수 있도록 만든다. 시집같은 드라마, 물론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속도와 깊이를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면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철학적 메시지까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 드라마 속 충만한 감성도 함께 말이다.

한해선기자 churab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