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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리뷰]‘걷기왕’, ‘열정 같은’ 소리하는 기성세대에 던지는 의구심

기사 등록 2016-10-12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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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열정’(熱情)이란 본래 뜨거웠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차가운 말이다. ‘걷기왕’(감독 백승화)에서 담임 선생님(김새벽)은 만복(심은경)을 향해 두 주먹 불끈 쥐고 외친다. “‘꿈’과 ‘열정’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어”라고. 하지만 그 응원으로 포장된 한 마디는 어쩐지 좀체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다.

12일 오후 2시 서울 성동구 CGV 왕십리에서는 백승화 감독, 배우 심은경, 박주희, 김새벽, 허정도가 참석한 가운데 영화 ‘걷기왕’ 언론배급시사회가 열렸다.

‘걷기왕’은 빠른 것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선천적 멀미증후군 여고생 만복이 자신의 삶에 울린 경보를 통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꽤나 독특한 설정으로 시작되는 만큼 영화는 외적으로도 만화를 연상시킬 정도로 통통 튀는 디테일이 돋보인다. 인물들을 설명하는 과정, 상황이 작게 글로 표현되는가 하면, 오프닝에서는 인물이 실제 그림체로 그려지는 로토스코핑 애니메이션 작업이 진행되기도 하며 경쾌한 OST 등으로 극이 꾸며졌다.

특히 한 명씩 제대로 된 개성을 갖춘 캐릭터의 등장은 영화를 보다 풍성하게 장식했다. 특히 주연 만복으로 심은경이 분한 것은 더 없이 적합했다. 앞서 ‘써니’(2011)와 ‘수상한 그녀’(2014),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 등으로 독보적 개성을 거침없이 꺼내온 심은경은 이번 ‘걷기왕’에서도 재능을 십분 발휘했다. 세상에 때 묻지 않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으로 끊임없이 ‘꿈’에 반문을 제기하는 그는 특유의 코믹함과 능청미로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 외모로 농가의 딸이자 10대 고등학생 역을 소화하는 심은경의 환경은 참으로 친근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인물이 자아내는 공감과 위로는 전달받는 이의 가슴에 큰 파동을 일으키게 된다. 다소 장난스럽더라도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호소가 있는 것이다.

심은경과 더불어 박주희, 김새벽, 윤지원, 안승균, 이재진, 허정도, 김광규, 김정영 등 충무로 기대주와 이미 내공을 다진 연기파 배우들의 활약 또한 재기발랄하다. 담임 선생님 역의 김새벽은 지극히 상투적인 위로로 기성세대의 무책임한 면을 지적했으며, 수지 역의 박주희는 시크하지만 내심 후배 만복의 장래를 함께 공감하고 격려한다. 친구 지현으로 분한 윤지원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꿈과 의지 없이 9급 공무원을 바란다.

남자배우들은 한층 코믹한 캐릭터로 웃음을 유발한다. 육상부 동기 정돈으로 등장하는 안승균, 만복이 짝사랑하는 힙합퍼 배달부 효길의 이재진, 육상부 코치를 연기한 허정도 모두 시쳇말로 ‘골 때리는’ 코믹 연기를 펼치며 은근히 만복의 입장을 지지해준다. 이 가운데 안재홍의 ‘소순이’ 활약은 코믹의 방점을 찍는다.

‘걷기왕’은 언뜻 소녀 만복의 우당탕탕 경보 선수 도전기를 그리는 것 같지만, 이 과정을 통해 결국 ‘상추를 뒤집어 싸먹지 말라’는 등 기성세대의 맥락 없는 강요에 반발해 볼 줄 아는 용기와 솔직함을 강조한다. ‘걷는 것’은 빠르지는 않더라도 멈춤과 같지 않다. 모든 과정에서 눈에 불을 켜고 힘 줘 보지 않아도 되는 영화의 성격처럼 ‘걷기왕’은 엉뚱하면서도 긍정적인 만복을 통해 그저 편하게 웃고 즐기다 보면 얻게 되는 에너지가 있다. 오는 20일 개봉.

한해선기자 churabb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