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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트릭' 이정진 "이제는 100세인생, 경비행기처럼 가겠다"

기사 등록 2016-07-15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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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우월한 기럭지, 훈훈한 미모에도 이정진은 어딘가 친숙했다. ‘엄친아’ 같은 분위기를 내뿜으면서도 유쾌하고 순수한 대화들로 친근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영화 ‘트릭(감독 이창열)’에서 시청률을 위해 조작도 마다않는 이석진 PD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전혀 다른 인물을 작품 속에서 완벽하게 녹여낸 그, 어떤 점 때문에 ‘트릭’의 이석진으로 변신하고자 했을까.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진과 작품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함께 했다.

“시나리오가 잘 넘어갔어요. 영화를 하다보면 계속 ‘해야 할 것’을 생각하다보니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가 가장 객관적인 거 같아요. ‘트릭’은 그런 점에서 잘 읽혔고, 방송계 이면의 일이지만 중심이 잡혀있어서 쉬운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보여지는 힘은 있어서 방송국이란 작은 공간이 실은 곧 대한민국이 아닌가라는 지점이 있었죠”

그는 ‘트릭’에서 자신이 연기한 석진이란 인물을 ‘만들어진 괴물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 말은 어떤 의미에서 사용된 걸까.

“석진이 하는 행동을 보고 ‘진짜 저렇게 해?’라고 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고 그런 사람이 칭찬받는 세상이잖아요. 그런 현실을 되묻고 싶어졌어요. 저런 사람이 될 것 같은 순간 ‘싫습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싶었어요. 다들 머리 위에 가격표가 붙은 느낌이에요, 요즘은. SNS도 그런 것 같습니다. 자극적인 거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죠. 이런 사회 속에서 석진은 만들어진 괴물처럼 된 거죠”

그렇게 이정진의 분석에 의하면 석진은 사회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이자 최고의 적응력을 가진 인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냉철함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은 터, 그는 석진을 ‘나쁘다’는 말로만 포장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나쁜 사람이죠. 하지만 나쁘다, 라는 말로만 정의되면 실패했다고 생각해요. 다른 수식어들도 있으니까요. 짜증난다, 한 대 치고 싶다 같은 말들. 대본을 보면서 ‘자신감이 있는 애구나’ 싶었어요. ‘시청률? 올리면 돼, 뭐가 잘못됐어?’라는 마음으로 계속 상기시켰습니다. 관객들이 봤을 때 ‘얠 어떻게 해야 하지?’ 마음이 들게 입체감을 원했어요.”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고, ‘내 것을 가지고 논다’라는 느낌으로 석진을 표현했다고. 덕분에 촬영장에서 상대배우인 김태훈에게 “그냥 반말을 해, 화날 거 같아”라는 농담섞인 핀잔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보다 즐겨야겠다고 계속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이정진’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이석진’으로 봤을 때는 그 상황을 그냥 즐길 수 있었어요. 이석진으로는 그냥 좋은 거죠. ‘다음 주에 시청률 또 올라가겠네? 됐어’ 하겠죠.”

조금 다른 지점이지만 ‘시청률’에 관한 압박은 PD뿐만 아니라 배우로서도 실제로 느껴봤을 감정이었을 것이다. 안방극장에서도 연기활동을 펼쳤던 이정진이기에 그 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영화는 관객 수라면 드라마는 시청률이 있죠.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일거에요. TV에도 손익분기점이 있기에 출연진인 저도 책임이 있는 겁니다. 늘 잘 될 수는 없지만 그 선을 넘어야 다음 작품을 하니까 배우로서도 마찬가지죠. 계속 성적이 낮으면 ‘어휴 오랜만에 뵙겠습니다’이라고 말하게 되겠죠?(웃음)”

묵직한 ‘트릭’이란 작품을 촬영했지만 인터뷰 현장에서는 유쾌한 에너지가 넘쳤던 이정진은 최근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한 사진 작업으로 대중들의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그는 ‘사진가’와 ‘사진작가’는 다르다며 간단한 설명과 함께 자신의 지향점에 대해 밝혔다.

“사진가는 일종의 의뢰를 받고 사진을 찍는다면, 사진작가는 본인의 작업을 하는 거죠. 화제가 된 건 사진가로서의 작업이었지만 8월경에는 국제 사진 페어에 사진작가로 출품할 예정이에요. 제가 찍은 사진은 네팔, 케팔, 아프리카 쪽에서 사람들이나 풍경 사진을 찍곤 해요.”

문득 그가 왜 이국땅에서 사진 작업을 하게 됐을까 궁금해졌다. 그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가족사진을 찍어주던 게 일이 커졌어요”라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이제는 걸그룹과 작업이 많아 ‘걸그룹 작가’로 불리는 이정진이지만 배우이자 사진작가로서 “선생님들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상업 작업도 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처음부터 사진으로 돈 벌겠다고 나선 건 아니니까요. 개인전할 때 언급했었지만 후배 배우로서, 사진작가로서 선생님들의 사진을 찍고 싶어요. 그래서 방송국 로비에 걸어두고 싶어요. 올해부터 내년까지 작업해 나갈 생각입니다.”

벌써 근 20년을 활동하며 ‘베테랑’이란 명칭이 아깝지 않은 이정진이지만, 그를 대표할만한 ‘대박’ 흥행작은 없다는 건 다소 아쉬울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이정진은 “저는 경비행기처럼 가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지나가서가 아니다. 2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엄청 고속으로 가신 분도, 내려오지 않는 분도, 올라간 만큼 내려온 분도 보게 됐어요. 뭐가 맞는지 모르겠더군요. 이제는 100세 인생이라고 하잖아요. 저로서는 지금이 최고 정점이라고 생각하지만 경비행기처럼 올라갔기 때문에 잘 가고 있어요. 경비행기는 시동 꺼져도 계속 날 수 있죠, 불시착이 없어요(웃음)”

지금이 최고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큼 이정진은 현재의 상황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새로운 작품을 받을 때 가장 즐거워요”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엔 배우로서의 행복감이 만연했다.

“작품을 받을 때 그 작품이 최고였으면 하는 꿈이 있어요. 앞으로 할 작품이 최고이길 바라는 건 아마도 배우분들 모두의 마음일 겁니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원하고 있구나, 그걸 느낄 수 있어요”

(사진=이슈데일리 박은비 기자)

성찬얼기자 remember_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