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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이청아 "'해빙' 미연 연기한 배우가 누구지? 그게 내 바람"

기사 등록 2017-03-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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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운 기자
[이슈데일리 유지윤기자] 청량하고 항상 긍정적일 것만 같은 이청아. 해맑은 미소만 지어줄 것만 같은 그는 이번에 의뭉스러운 간호조무사 미연으로 분했다. '해빙'의 미연은 수수께끼를 남겼지만 또 다른 얼굴들을 보여주며 그의 깊은 얼굴을 궁금해 하던 관객의 수수께끼를 해결해줬다.

'늑대의 유혹'의 정한경, 배우 이청아 앞에 붙는 또 다른 수식어다. 작품이 워낙 사랑을 받아 2004년 작품임에도 2017년인 지금까지 패러디가 되고 자주 회자된다. 이후에 드라마와 영화를 구분 짓지 않고 종횡무진 출연해왔으나 여전히 이청아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작품은 '늑대의 유혹'이다. 그런 이청아가 '해빙'에서 전혀 다른 온도의 얼굴을 보여준다니, 호기심이 일 수 밖에.

"저한테 있는 밝은 에너지를 다 채워 내야하는 캐릭터들을 많이 맡았어요. '늑대의 유혹' 이미지가 워낙 각인돼 있어서 그 후로 들어오는 작품들도 다 정의롭고 착한 역이었어요. 하지만 전 비극적인 캐릭터를 더 선호해요. 학교 다닐 때도 교수님이 맨날 비극만 준비해오니까 저에게는 희극 과제만 내주셔서 학기 내내 도망 다녔어요. 작품을 하면서 밝은 캐릭터에도 익숙해지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어주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배우를 하면서 여러 가지를 배우는 것 같아요."

애초에 이청아는 자신의 성격과 똑같은 역을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미연을 자신과 일치시키기 위해 이성적이고 냉정한 부분을 극대화시켰다. 그렇다고 미연을 단순히 '나쁜 사람'로 치부시키기엔, 보이지 않는 너머 미연의 마음이 측은했다.

"매번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성격을 어느 부분 살리거나, 극대화시키죠. 이번에는 이성적이고 냉적한 부분을 극대화시켰어요. 미연이라는 캐릭터를 할 때 저에게 가지고 올 수 있는 것들이 있었어요. 제가 배우를 하기 전까지 끈기가 없어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할지 불안했거든요. 꿈도 자주 바뀌었고요. 미래에 대한 막연함, 내가 원하는 미래는 나한테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미연에게도 있을 것 같았어요. 이수연 감독님이 '미연이는 꿈이 있을까요?', '왜 프로포폴을 팔아서 가방을 살까요'라고 물어보셨어요. 그 땐 잘 이해가 안됐어요. 감독님은 미연이라는 인물은 희망이 없고, 본인의 처한 위치가 어떻든 꿈을 꾸면 해낼 수 있는 자존감이 없는 상태인거죠. 높은 곳을 보지 못 하는 거죠."

▲ 황진운 기자
이청아는 작품에 들어가고 캐릭터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이 제일 신이난다고 털어놨다. 한 사람의 역사를 쓰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고 가정하고, 그러면서 그 인물은 곧 내가 된다는 작업이 이청아를 짜릿하게 만들었다.

"사소한 것들부터 생각해서 캐릭터를 잡아요. 스스로 '이 캐릭터는 이렇겠다'라고 답이 내려지면 빠르게 퍼즐을 맞춰나가기 시작합니다. 미연이라는 인물에서 빨리 캐치한 건 스승의 날에 찾아갈 선생님이 없겠다는 거였어요. 미연이를 잡아줄 선생님이 없었던 거죠. 그 다음 시나리오에서 많이 풀렸어요. 승훈에게 보이는 호감이 이성적일까 싶었어요 우리병원의 새 의사고, 강남에서 왔고, 그런데 신도시가 아닌 구도시에 살고. 그 때부터 '해볼만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높은 가지에 있는 감이다 흙바닥이 구르니 내가 먹을 수 있겠다는 심정이요. 전 미연이가 안쓰러웠어요."

▲ 황진운 기자
연극배우 이승철을 아버지로 둔 이청아에게 배우란 직업은 낯설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덕분에 호기롭게 배우를 시작할 수 있었고 겁 없이 걸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자신에게 부족한 점들은 다시 되돌아보면서 차곡차곡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연극 '꽃의 비밀' 출연이 이 같은 맥락이다.

"아버지께서 평생 연극배우로 사셨는데 어렸을 때 아빠가 대본을 읽으실 때 마루 한 가운데 교자상 위에 소주, 대본을 두고 읽으셨던 기억이 나요. 배역이 어떤 인물인지, 이 사람의 역사가 무엇인지 대본을 읽으면서 기다리세요. 그리고선 걷기 시작하는데, 배역의 걸음부터 만드시는 거였어요. 그 땐 배우가 아니라 이해를 못했는데 지금은 너무나 이해하고 있어요. 제가 신인 때 연기를 덜컥 할 수 있었던 게 '우리 아빠가 하는 일'이라 친근해서 흉내를 냈던 것 같아요."

"캐릭터를 생각하고 이해하는 건 빠른데 표현력을 속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보다 생각 없이 표현하는 걸 갈고 닦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판단이 들고는 연극을 바로 시작했어요."

이청아가 생각하는 '해빙'의 강점을 물었다. 그는 극장을 나오면서 영화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는 여지가 주는 힘을 믿고 있었다.

"무서운 영화를 잘 못 보는데 '해빙' 시나리오는 눅진하고 끈적한 느낌이 들었어요. 예고편 보고 놀랐어요. 우리 영화가 이렇게나 스펙터클 했었나 싶어서요. 느린 호흡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영화를 보고 나니 제가 생각한 느낌은 살아있고 두 번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인셉션'을 다섯 번 보고 친구들과 영화에 대해 치열하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났어요. 우리 영화도 관점을 가지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승훈의 관점이었다가 슬그머니 관점이 전환되는데 저는 아직도 헷갈려요. 일주일 사이에 한 두 번씩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제 기준에서는 좋은 영화인데, '해빙'은 그런 면에서 좋은 영화예요."

배우가 작품을 통해 자신을 각인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닌 흐릿해지고 싶다는 이청아. 화려한 후광이나 배우라는 타이틀 안에서 예상되는 연기를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청아가 미연 역을 참 잘했다란 말보다는 '미연이 역할이 누구였지?'란 말을 듣고 싶어요. 정말 그 동네 간호조무사를 데려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거든요. 이런 연기톤은 정말 오랜 만에 만나봐서 여러모로 신기하고 즐거운 기억만 남아있는 것 같아요.“

유지윤기자 jiyoon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