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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창용의 사극돋보기]'구르미 그린 달빛', 세자와 홍경래가 꿈꾸는 세상은 다르지 않았다

기사 등록 2016-10-1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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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여창용 기자] 백성이 행복한 세상은 세자 이영과 '혁명가' 홍경래의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지난 11일 방송된 KBS2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극본 김민정 임예진, 연출 김성윤 백상훈)' 16회에서 백성을 위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왕세자 이영(박보검 분)에게 크나큰 위기가 찾아왔다. 홍경래(정해균 분)의 추국장에 홍라온(김유정 분)을 데려온 김헌(천호진 분)은 역적의 딸과 내통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려면 목을 베라고 협박했다.

이영은 홍경래에게 "당신은 왕이 사라지길 바란다"고 들었다며 "그럼 나 역시 당신의 표적이 되는 건가"라고 물었다. 이영의 물음에 홍경래는 "백성을 위한 지도자는 하늘이 세우는 것이 아닌, 백성의 손으로 직접 세우는 것"이라는 뜻밖의 말로 이영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홍경래와 다시 만난 자리에서 이영은 "백성이 세운 지도자라 하면, 백성의 말을 잘 듣는 허수아비 왕을 뜻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당신과 나, 계집과 사내, 이들이 동등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허용하는 왕을 원한다는 답에 "내가 꿈꾸는 세상과 당신이 꿈꾸는 세상이 다르지 않다"라고 응수했다. 영 또한 "아이가 아이답게, 여인이 여인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원하는 것만큼은 같았다. 때문에 영은 "어쩌면 피 흘리지 않고 찾을 수도 있지 않겠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 발걸음을 맞추는 그 길을"이라며 추국을 마치고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지만, 위기가 다가왔다. 홍경래의 추포 소식을 들은 후 내내 불안함에 시달리던 왕(김승수 분)은 곧장 추국장을 열라고 지시했고, 김헌은 아버지를 보기 위해 몰래 궐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지 못한 라온을 납치했다.

그렇게 영과 라온은 추국장 한복판에서 재회했고, 김헌은 "역당의 무리와 역모를 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라"며 "저 계집(라온)의 목을 치라"고 협박,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백운회와 금군이 대치한 순간, 병연(곽동연 분)은 영과 라온을 모두 살리기 위해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선택을 했다. 병연은 영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세자를 살리고자 한다면, 길을 터라"고 소리쳤다.

홍경래는 정주성에서의 정부군과 전투 중에 사망한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근본을 흔들었던 '홍경래의 난'은 수천명의 남성들이 처형을 당하는 끔찍한 결말을 맞았다. 하지만 '홍경래의 난' 이후 민란은 계속해서 일어났고 동학농민운동을 통해 극에 달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홍경래가 정주성 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야사에 근거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당시 백성들은 홍경래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소문이 팽배했다. 난은 진압됐지만 도참을 신봉하는 백성들은 늘어만갔다. 당시의 위정자들은 '홍경래의 난'을 통해 얻은 교훈을 없었고, '홍경래의 난'을 단순한 소요사태라고 여겼다.

역사학자들은 '홍경래의 난'에 대해 본래는 차별받던 평안도 지역민들의 분노로 일어난 반란이지만 난 진압과정에서 보여준 조선 조정의 무능함과 악랄함에 다양한 계층의 지역민들이 가세한 민중봉기로 발전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홍경래가 새로운 세상을 꿈꿨는지를 모르겠지만 조선 백성들은 그를 통해 자신들의 꿈을 본 것 같다.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였지만 조선시대에도 많은 민중 반란이 있었다. 그중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은 조선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도적 두목에 불과했지만 백성들은 그들을 민중의 영웅 또는 의적으로 불렀다. 홍경래 역시 반란을 주도한 평안도 지역 주민에 불과했지만 백성들은 홍경래를 민중혁명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왕과 김헌 등 안동 김씨 세력이 왜 홍경래를 그토록 죽이려 하는지, 백운회라는 비밀결사가 어째서 목숨을 걸고 홍경래를 지키려 하는지는 드라마를 통해 드러난다. 홍경래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위험인물과 혁명의 상징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극중 청춘 남녀들이 휘말린 것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정통 사극은 아니지만 정통 사극 못지 않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오히려 정통 사극이 할 수 없는 참신한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설정을 빌려왔으면서 원작의 스토리에만 집중하느라 역사 왜곡까지 자행하고 있는 어떤 사극과는 다르다.

박보검, 김유정, 진영의 해사한 비주얼에 가려있지만 '구르미 그린 달빛'은 당시 헬조선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KBS2 방송화면 캡쳐]

여창용 기자 hblood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