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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인터뷰]설경구 "'불한당' 악역 한재호, 더 즐겼어야.."

기사 등록 2017-05-1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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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유지윤기자]설경구가 다시 기지개를 켰다. 쉬지 않고 꾸준히 '나의 독재자' '서부전선' '루시드 드림' 등에 출연했지만 흥행면에서 참패를 면치 못했다. 그런 설경구가 마치 '이를 갈고 나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한당:나쁜 놈들의 세상'을 보고 든 인상이다. 국적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변성현 감독의 의도를 따라 설경구는 연기로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관객들과 소통할 준비를 마쳤다.

설경구가 마침내 제 옷을 입은 것 같은 연기로 돌아왔으니, 즐기고 평가하는 것은 이제 관객들의 몫이다. 최근 만난 설경구에게 '불한당' 한재호의 속내를 들어봤다.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범죄조직 1인자를 노리는 재호(설경구)와 패기 넘치는 신참 현수(임시완)가 교도소에서 만나 의리를 다지고, 출소 후 의기투합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너무 기대감을 가지고 보실까봐 걱정이네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잖아요. 저는 제 영화라서 '왜 이렇게 속도가 안붙지' 초조해하면서 봤네요. 영화 전체는 눈에 안들어오고 제 연기만 확인했던 것 같아요."

첫 악역에 도전한 설경구. '루시드 드림' 때도 악역이란 프레임 안에서 연기를 했지만 그는 "이번이 진짜"라고 설명과 함께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설경구는 활어회가 신선하게 뛰노는 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한재호'란 인물을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지 못한 듯 했다.

"조금 아쉽더라고요. 즐길 수 있는 캐릭터였던 것 같은데 확 못지른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즐겨도 될 것 같은데 말이죠. 한재호란 인간이 죄책감 없는 인물이잖아요. 두 번 보면 영화가 보일 것 같아요. 칸에 가서 보려고요. 거긴 도망 갈데도 없고.(웃음)"

'불한당' 한재호와 '불한당'이 되가는 조현수. 한재호는 점점 자신을 닮아가는 조현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한재호에게 현수는 내 눈을 흔들리게 만든 아이입니다. 버림만 받았던 재호가 유일하게 믿고 싶었던 한 사람이죠. 믿으려고 하다보니까 또 의심을 하게 되고, 자꾸 정황들이 재호를 흔들잖아요. 그 과정이 엔딩까지 이어집니다."

설경구는 극의 상황과 위화감을 주는 웃음소리를 자주 낸다. 심각한 상황이지만 홀로 장난러기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장난끼 가득 머금은 얼굴 뒤에는 어떤 짓을 할 지 모르는 잔인함이 깔려있다. 설경구의 얼굴은 120분 동안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을 관객들에게 주입한다.

"웃음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맞추진 않았는데 변성현 감독이 먼저 물어봤다. '잠깐인데 대화하기도 그렇게 한 번 웃죠'라고 해서 불편하게 웃었는데 끝까지 이 웃음으로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불편해보이는 웃음이 한재호의 심리 아닐까요."

국내 극장가는 남배우 두 명이 주연을 맡아 브로맨스를 펼치는 범죄물, 액션물, 형사물, 스릴러물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 '불한당'은 어떻게 차별점을 뒀을까. 이 영화는 '왜'보다는 '어떻게'에 더 초점을 맞췄다. 넘쳐나는 두 남자의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스토리보다는 감정에 더 초점을 맞췄다. 흔들리는 두 남자의 심리는 변성현 감독의 카메라 안에서 아름답고, 스타일리시하게 파국을 향해간다.

"책보다는 잘 나온 것 같아요. 큰 틀에서 보면 많이 본 것 같은 영화잖아요. 그걸 어떻게 차별화 시킬까가 중요했어요. 감독님이 저한테 남자들 이야기지만 감정에 충실할 것이라고 차별화에 자신있다고 하더라고요. 엔딩에서 아쉽다는 사람이 있긴한데 최선을 다했어요. 그 동안의 느와르 영화와 결과 정서 같은 것이 안 겹치게 하려고 했거든요. 영화를 보고 나서 변성현 감독이 괜히 자신있어 한게 아니구나 싶었어요. 그 사람은 말을 덧붙이지도 빼지도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경험이 적기 때문에 불안한건 있었어요. 전작이 너무 다른 장르였으니까요."

"처음 만났을 때 하겠다고 말 못했어요. 새벽까지 술 마시면서 이야기했는데 참 솔직한 사람이더라고요. 준비가 된 사람이란 확신이 생겼죠."

극 초반 허준호가 등장해 설경구와 기싸움을 벌이는데, 비주얼적으로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두 배우가 한 카메라 안에 잡히니 시너지는 대단했다.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은 배가 됐다. 허준호의 캐스팅은 설경구의 물밑작업에서 시작됐다.

"시나리오를 읽고 준호 형이 해줬으면 좋겠어서 제작진한테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요. 다 미국에 있는줄 알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 왔다더라', '번호는 이거다'라고 힌트를 줬죠. 저는 말 못해요. 임팩트는 있는데 롤이 작잖아요. 제작진쪽에서 연락을 했더니 제가 출연한다고 하니 흔쾌히 나와주겠다고 하셨대요. 너무 감사했어요. 촬영 때 만났는데 살을 쫙 빼서 나오셨더라고요. 촬영을 먼저 하고 눈발 날리는 신은 12월 마지막 촬영 때 찍었어요. 중간에 미국에 다시 들어갔다가 그 촬영 때문에 다시 그대로 살을 빼서 오셨더라고요. 초반은 준호 형이 다 살려줬어요. 존재감 때문에 공기가 달라요."

설경구가 임시완을 향해 말로 설명하지 못할 미묘한 감정을 가졌다면, 김희원은 극중 '설경구 바라기'다. 설경구는 김희원을 '윤활유 같은' 배우라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희원이는 참 아이디어가 좋은 배우입니다. 촬영 들어갈 때 '나는 경구 형만 짝사랑할거야'라고 하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전 그렇게까지 생각 못했거든요. '재호가 죽으라면 죽을거야. 이유 몰라. 왜? 난 재호가 머리 쓰다듬어주면 좋거든' 딱 정리를 하는데 참 잘하더라고요. 나는 그렇게 현수를 사랑하고요. 하하. 악역이라고 부담스러워했는데 희원이 역이 제일 순수하지 않나요?"

이 작품은 설경구보다 임시완이 먼저 캐스팅 됐었다. 설경구는 임시완이 내정돼 있다는 사실에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던 그 때를 떠올렸다.

"현수의 성장담이잖아요. 미소년같은 남자가 거친 남자가 되는 괴정에 임시완의 맑은 이미지가 잘 부합하더라고요. 이미지가 영화의 출발에 잘 어울렸어요."

"큰 욕심 없어요. 많이 봐주시면 좋지만요. 기자 시사 때 평이 좋았는데 기자들과 관객들의 눈인 다를 수 있잖아요. 호불호가 조금 있어요. 재호의 심리에 맞춘 버전도 있었는데 앞뒤가 안맞더라고요. 영화라는 작업이 참 재미있어요. 순서, 편집에 따라 완전 다른 영화가 되기도 하잖아요. 영화라서 가능한 이야기들이죠."

'불한당'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기에 볼 수 있는 연령층은 한정됐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극장으로 발걸음 하는 관객들에게 '불한당'을 어떻게 어필하겠냐고 물었더니 이같은 대답이 나왔다. 투박하게 진심을 담은 설경구스러운 마무리였다.

"제가 '감시자들'을 참 좋아해요. 범인을 감시하는 이야기인데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긴장감을 주잖아요. 그 때 '이게 영화구나' 처음 느꼈어요. 뻔한 이야기 가지고 긴장감 있게 끌고간단 생각을 했죠. '불한당'도 그래요."

유지윤기자 jiyoon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