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밀정’ 모그 음악감독 “우리 안에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 담아내려 했다”

기사 등록 2016-10-0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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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최고의 호흡.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에 어울리는 말이다. 눈에 보이는 송강호•공유 조합을 떠올리기 쉽지만 스크린 아래에서 벌써 일곱 번째 호흡을 맞춘 김지운 감독과 모그(본명 이성현) 음악감독에게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하루는 이정출이 되기도 하고, 하루는 김우진이 되기도 했어요”라고 말하는 그가 ‘밀정’을 통해 드러낸 음악적 역량은 7백만 관객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최근 한 논현동의 카페에서 그를 만나 ‘밀정’과 그의 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의 상업영화는 기획개발 중심이나 연출 중심으로 나뉘어요. 그것에 따라 작업의 방향도, 비중도 달라져요. 김지운 감독님 같은 경우는 파트너처럼 작업했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감독님의 성향, 본인이 평소에 들으시는 음악에 맞는 톤 앤 매너를 적용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실제로 그래서 ‘밀정’에는 여러 가지 삽입곡이 쓰였다. ‘볼레로’조차도 여러 버전을 가지고 촬영과 시나리오 등 그 분위기에 맞춰진 버전을 고른 것이라고. 클래식이다보니 지휘자, 연주자에 따라 속도부터 강약의 강조까지 많은 차이가 나는 곡이기 때문이다.

“‘밀정’의 음악작업은 시나리오부터 많이 얘기를 했어요. 삽입곡은 볼레로, 슬라브 무곡처럼 많이 아는 클래식부터 생소한 곡까지 무수히 많은 리스트가 있었고 여러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묘미가 쉬운 걸 어렵게 풀거나 어려운 걸 쉽게 풀거나 선택해서 풀어간다는 점이잖아요. 김지운 감독님은 본인이 연출하는 의도에 맞춰 상의를 하시는 편이죠. ‘밀정’은 기획 단계에선 콜드 느와르였으나 캐릭터들의 온도가 높아지는 바람에 콘셉트가 달라졌었어요. 현장 편집을 하면서 나오는 얘기가 ‘콜드느와르였는데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네’이기도 했거든요.”

2009년 단편영화 ‘선물’ 이후 김지운 감독의 작품에서 줄곧 음악을 맡아온 모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끊임없이 김지운 감독과 교류하며 ‘밀정’만의 색을 채워나갔다. 때로는 ‘음악이 있는지도 모르게’ 장면에 긴장감을 더하는가 하면, 인물의 감정을 완벽하게 부각시키는 음악으로 장면의 정서를 살리기도 했다.

“촬영 중간에 인물들의 내면에 몸부림치는 것들이 느껴지곤 하면서 ‘콜드 느와르’를 포기해야하는 지점이 와서, 그래서 콘셉트를 수정했어요. 국내영화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기법인데, 인더스트리얼한 느낌으로 곡을 구상했어요. 일반적으로 오케스트라 안에서 음을 정확히 내는 방식이 아니라 스크래치를 내서 악곡을 구상한다던가 했죠. 저 역시 ‘밀정’ 전까지 작업했던, 대중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던 부분들을 내려놓고 제가 좀 더 추구하고자 하는 길을 가보자 했습니다. 시대극 같은 경우는 진부하기 쉽기 때문에 어떻게든 방지하려고 했어요. 한가지 음을 중심으로 효과음을 바꾸듯이 한다던가 하는 방식이었죠.”


그는 그렇게 현장편집본을 보면서 이전에 작업했던 곡과 이후에 작업한 곡을 선별했다. ‘밀정’에 쓰인 음악을 트랙수로 따지면 약 사십여 곡.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의외로 많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 콘셉트에 맞춰 ‘부각되지 않게’ 만들어진 곡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밀정’의 내면이라는건 사실은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잖아요. 그런 콘셉트를 살리다보니 관객들이 모르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었죠. 오프닝 같은 경우 영화를 좋아하면 그 배열 자체가 로망이잖아요. 회사 로고가 나오고 타이틀이 뜨기까지의 그런 것들이요. 그래서 거기서 음악을 쭉 밀고 가서 타이틀이 뜨는 순간까지, 클래식으로 치면 하나의 교향곡이라고 생각하면서 작업했어요.”

이런 콘셉트 때문에 ‘밀정’의 음악은 때로 효과음처럼 장면의 잔향을 남기기도 했고, 심지어 실제로 효과음과 어우러지며 새로운 효과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런 ‘밀정’의 음악이 가진 특성은 김지운 감독이 가진 ‘민감함’ 때문이라고 모그는 말했다.

“김지운 감독님이 소리에 민감하세요. 기차 소리가 들어간 것도 ‘그 리듬감이 거칠고 빨랐으면 좋겠다’라고 지정한 거에요. 그래서 ‘밀정’에서는 음악의 속도가 때로는 확 돌진하다가도 한없이 정체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구성됐어요. 결국 ‘밀정’이란 작품이 내면 끝까지 가보자는 식의 심리물이잖아요. 이정출의 심리가 차가워지고 뜨거워지는 과정이니까요. 굳이 대사나 상황에 따라 보이지 않아도 그런 소리의 자극이나 속도감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김지운 감독님께서 요구했습니다. 저 역시도 영화음악을 하면서 재미있는 것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선율보다는 이런 식으로 관객들하고 심리전을 할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 변화무쌍한 콘셉트를 소화하기 위해 모그는 일본 오케스트라와 음악을 만들었다. 일본 영화음악을 작업한 적이 있었던 것도 이유지만, 일본 오케스트라가 가진 차가운 스타일을 표현하는 장점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쿄의 가장 크고 오래된 스튜디오 사운드시티에서 작업하는 동안 ‘밀정’에 출연한 일본 배우들도 종종 방문하기도 했다고.

“사실 ‘밀정’에서 음악을 거둬낸 부분도 있어요. 히가시가 하시모토만 다시 방으로 불러들여서 이정출이 혼자 남게 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은 엠비언스도 거의 없다시피 한데 음악을 만들어서 입혀봐도 음악이 없는 게 더 좋더라구요. 그래서 감독님하고 서로 의견을 내보자했는데 음악없이 가는 걸로 의견이 모였어요. 음악이 없는 멋이 있었죠. 이정출의 머쓱함, 쓸쓸함, 내동댕이쳐진 그런 모습을, 멋있다고 느끼기 힘든데 꽉 담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시나리오를 봤을 때 이정출을 송강호 선배가 한다고 해서 평소의 이미지를 생각했는데 현장에서 보니까 이정출이란 사람이 너무 멋있었어요.”

사실 모그는 원래 계획대로라면 가수 백청강과 함께 바의 연주자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중국 현지에서 그 음악을 소화할 연주자를 구하기 어려워 음악감독인 그가 연주자로 출연했었다고. 하지만 영화에서 그 장면은 사라졌고 모그는 “영화라는 게 찍어놓은 거에 50퍼센트는 버리지 않았나 싶어요. 저도 오케스트라 녹음한 작업물이 있으면 손 벌벌 떨었었는데 영화를 하다 보니 상당부분의 분량은 안 쓴 것 같아요”라고 영화 작업의 특징을 설명하기도 했다.

“‘밀정’은 김 감독님과 무척 자주 음악에 대해 상의했어요. 그러다보면 그 고민을 계속 안고 있어야 했죠. 저도 똑같이 뭔가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조력하는 사람 입장이니까 조사를 하면서 영화를 계속 보거든요. 오늘은 내가 이정출이어야지, 김우진이어야지 하면서. 관객들이 느낄 수 있거나 느끼려고 하는 부분들을 집중해서 보면서 음악적으로 묘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그의 고민은 엔딩크레딧 선곡까지 이어졌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사용된 곡은 ‘Wet Floor’. 영화 내내 ‘있는 듯 없는 듯’한 음악의 톤과는 정반대로 일렉트로닉 느낌이 강한 록 음악을 선택한 것이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면 폭발음이 들려요. 그게 일종의 청량감을 주는데 그전에 환기시킬 수 있는 곡을 선택했어요. 록이면서도 진부하진 않은 곡으로요. ‘코어매거진’의 류정헌을 통해 곡을 만들어달라고 했습니다. 보컬 버전도 있는데 수위가 강한 느낌이라서 인스트루멘탈 버전으로 만들어서 넣게 됐어요.”

이렇게 ‘밀정’에 공을 들인 모그는 이어서 차기작 ‘소중한 여인’ 작업에 착수했단다.

“‘소중한 여인’은 김혜수, 이선균 주연의 작품이에요. ‘밀정’을 제작한 최재원 대표님 제작이고, 김지운 감독님의 조감독 출신인 이안규 감독의 입봉작입니다.”

또 어떤 음악을 선보여줄까. 모그가 만들었던 그동안의 작업들을 돌이켜보면 그는 또 새로운 감성과 톤을 담을 음악을 들고 돌아올 것이다. 어떤 말 대신 스크린에 영사되는 작품을 빛내주는 그의 음악이 돌아올 때가 기대된다.

 

성찬얼기자 remember_sco@ 사진 박은비 기자 smart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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