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누가 잘했나]‘파국 초래’ 우유부단 캐릭터는? ‘덕혜옹주’-‘밀정’-‘아수라’-‘천일의 스캔들’

기사 등록 2016-11-0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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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다. 그리고 캐릭터들도 넘쳐난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르는 그들을 하나의 주제에 놓고 선별해 볼 필요가 있었다. <편집자 주>

주관이 너무 뚜렷한 바람에 여럿에게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악질’로 여겨지는 것이 ‘우유부단함’이다. 현 시국을 봤을 때 이러한 성향이 한층 큰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우유부단함이 미치는 파급력은 생각보다 그 범주와 범위가 각양각색이다. 작게는 음식이나 의상 등 취향 선정부터 크게는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논하는 부분까지 있겠다.

이번 주 캐릭터 랭킹 [누가누가 잘했나]에서는 실로 ‘잘 한 짓’이라기보다 우유부단함으로 분노를 유발한 몇몇 캐릭터들을 꼽아보겠다. 권익을 좇느라 계산기를 심하게 두드린 결과, 충동적 사랑에 눈이 먼 결과 모두, 어쨌든 ‘파국’에 가깝다.




# ‘덕혜옹주’ 영친왕(박수영)

‘덕혜옹주’(감독 허진호)에서 덕혜옹주였던 이덕혜(손예진)가 조선인이라는 신분을 지우고 소 타케유키와 정략결혼을 한 후 반 일본인 신세로 전락한 것은 그의 오빠 영친왕 때문이라 해도 무방하다. 덕혜옹주의 결혼 이전, 일제강점기로 나라 잃은 황태자가 된 영친왕은 고종의 막내아들이자 순종의 동생으로서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 황족의 맏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방자)와 정략결혼을 한 인물이다.

영친왕과 덕혜옹주의 정략결혼은, 일제강점기 내내 이 조선왕실이 일본 지배자들에게 선전의 도구로 이용된 흔적이었다. 영친왕 역시 처참한 시대가 낳은 희생양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 세대까지 국민들은 일제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며 강단 있는 처사를 하지 않은 그의 방관적인 태도에 안타까운 통곡을 쏟아내고 있다.




# ‘밀정’ 이정출(송강호)

‘덕혜옹주’보다 살짝 앞선 시기, 1920년대 일제강점기 의열단의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 ‘밀정’(감독 김지운)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다름 아닌 이정출이었다. 보통 친일파는 거세게 비난 받기 마련이지만, 이정출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친일파로 시작했지만, 의열단 김우진(공유)과 정채산(이병헌)을 만난 후 입장은 서서히 변화한다. 거나하게 술독을 나누고서 조국 동포끼리 ‘허허’ 웃음꽃을 피우는 나사 풀린 면모가 인간적이기까지 하다.

이후 김우진의 거듭된 부탁에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조선총독부 경무국 부장 히가시(츠루미 신고)의 압박 속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실소를 자아내면서도 참 애잔하다. 이는 배우 송강호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력이 가미돼 시대가 낳을 수 있는 기형적 회색분자의 내면 붕괴가 입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 ‘아수라’ 한도경(정우성)

현대에도 ‘박쥐’ 같은 인물이 없으랴. 지옥 같은 세상,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악인들의 전쟁을 그린 ‘아수라’(감독 김성수)에서 한도경은 강력계 형사라는 신분을 최대한 남용해 여기저기서 돈을 갈취하는 데 혈안이 된 인물이다. 특히 그가 거머리노릇으로 빌붙는 인물은 이권과 성공을 위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 한 마디로 박성배의 뒤치다꺼리 전문가로 밥 벌어 먹고 살았다.

그가 악의 구렁텅이에 발을 담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기는 하다.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던 것. 사람 목숨 앞에 ‘정의’ 따위는 허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다 검사 김차인(곽도원)과 검찰수사관 도창학(정만식)은 박성배의 비리와 범죄 혐의를 캐려 측근인 한도경의 약점을 쥐고 그를 협박, 이용하기 시작했다. 각자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한도경의 목을 짓누르는 검찰과 박성배 사이에서 태풍의 눈처럼 돼 버린 한도경은 양 측에 임시방편으로 서지만, 갈수록 딜레마에 빠질 뿐이었다.




# ‘천일의 스캔들’ 헨리 8세(에릭 바나)

국가를 위협하는 공권력으로 시대를 어지럽게 만든 이가 있는가 하면, 욕구와 본능에 충실한 나머지 국가를 저버린 채 의미 없는 소모전을 벌인 이가 있다. ‘천일의 스캔들’(2008, 감독 저스틴 채드윅)의 헨리 8세다. 볼린 가의 아름다운 딸 앤 볼린(나탈리 포트만)은 영국의 국왕 헨리 8세를 유혹해 권력과 명예를 움켜쥐려는 야욕이 있었다. 하지만 헨리 8세는 당차고 도전적인 앤과 달리 순수함과 관능미를 가진 동생 메리 볼린(스칼렛 요한슨)에 매료돼 그를 아내로 맞았다. 왕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메리가 동침이 불가능해지자, 언니 볼린은 기회를 틈타 왕을 유혹하고 만다.

민심 헤아리기에도 벅찬 형국에 여심에 줏대 없이 휘둘리는 헨리 8세는 ‘사랑꾼’이라기보다 ‘사랑의 노예’, ‘여성 편력가’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나쁜 X’은 누구일까. 끊임없이 야욕을 드러내는 앤도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사랑에 눈 먼 장님 헨리 8세가 어쩌면 더 크게 부합할지 모르겠다. 늘상 앤의 치맛바람에 휘둘리다 그가 아들을 잉태하지 못함에 실망하고 시녀들에게 눈길을 돌리는 헨리 8세의 행태는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이에 그치지 않고 앤이 왕비가 된 1000일이 되었을 쯤 그를 간통죄로 참수형 시키기까지 하니 ‘천하의 나쁜 X’이라 부를 만하다.


(사진=‘덕혜옹주’, ‘밀정’, ‘아수라’, ‘천일의 스캔들’ 포스터 및 스틸컷)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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