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얼의 영화읽기]'터널'·'서울역', 한국사회의 사라진 보금자리여
기사 등록 2016-08-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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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하나의 현상은 다양한 잔상을 남기곤 한다. 때문에 어떤 언어로 그 현상을 담아낼지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거울이 수없이 많은 방에서는 어떤 거울을 중심에 두는지가 곧 묘사의 방향성을 다르게 하는 것처럼.
'터널(감독 김성훈)'과 '서울역(감독 연상호)'은 그런 점에서 같은 걸 바라본 다른 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장르도 다르고 인물 구성이나 전개 양상도 다르지만 두 영화가 지적하는 것은 동일하다. 이 대한민국 사회에선, 이제 발딛고 평안을 누릴 '보금자리'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먼저 '터널'을 살펴보자. 한 남자가 부실공사로 시공된 터널을 지나가다 갇히게 되는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상적인 공간이 배제돼있다. 바로 '집'이다. 영화는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게 정수(하정우)와 세현(배두나)의 가정을 한 번도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정수의 사고를 세현이 처음 접한 곳은 마트이다. 그것도 터널처럼 일직선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무빙 워크 위에서이다. 분명 이들은 가정을 꾸린 사이지만 그들의 안식처는 보여지지 않고 오로지 터널-무빙워크로 상징되는 일방적인 고립만이 보여진다.
'터널'에서 그나마 집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으로 그려지는 건 정수의 차, 그리고 구조본부를 비롯한 천막 텐트들이다. 이들은 여기서 먹고 생활하며 '일상'을 구축해나간다. 그래서 정수는 그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차로 돌아온 후 '집에 왔다'는 식의 말까지 할 정도다. 이 재난 속에서 집을 대신할 보금자리는 고작 그정도인 것이다.
'서울역'은 어떤가. 이 영화 역시 '가정'의 부재가 유독 두드러진다. 혜선(심은경)은 가출소녀로 기웅(이준)과 함께 여인숙에서 살고 있다. 거기다 이제 생활비도 남지 않아 쫓겨나기 직전이다. 만일 돈이 넉넉한 사람이라면 여인숙이야말로 최고의 보금자리가 될지도 모른다. 원하는대로 머무르고 원할 때 떠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혜선은 이 사회에서 약자의 지점에 있는 인물이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곳을 혜선은 울음을 터뜨리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내뱉을 수밖에 없다.
재밌는 건 얼떨결에 혜선을 구하게 된 노숙자 역시 집이 없는 사람이란 것이다. '서울역'은 천지가 집을 잃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노숙자가 득실거리는 이 곳을 배경으로 삼은 것 자체가 '집'의 무너짐, 가정의 해체 등을 지적할 것이라는 암시인 셈이다.
심지어 '서울역'에서는 지금 이 사회에서 그려지는 가정의 모습이 허황된 꿈과 같다고 지적하기 위해 모델하우스 공간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여기서 벌어지는 파괴적인 사건들은 최대한 정갈하고 예쁘게 꾸며진 모델하우스가 가진 '집'의 이미지를 완벽히 상쇄시키며 나아가 한국 사회 속 남아있는 보금자리가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지적한다.
최근 영화에 대한 헤살들로 영화계가 진통을 겪었기에 더 자세히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그래서 '서울역'은 '부산행'의 프리퀄이라기보다 오히려 '터널'의 연작 같다는 느낌까지 준다. 사라진 보금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두 작품은 전혀 다른 톤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영화는 결말마저도 그 결을 달리한다. 떠오르는 햇빛을 똑같이 그리면서도 '터널'은 희망적인 태동을 품는가 하면, '서울역'은 깨어날 수 없는 악몽으로 치닫는다.
사실상 전혀 다른 장르와 이야기를 그린 두 작품이 공교롭게도 같은 주제를 담고 있는 건 몹시 흥미로운 일이다. 그저 '우연'으로 치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좀비는 베트남전 패배의 무기력함으로 태어난 상징이며 9..11테러 이후 미국 영화에 무의식적인 불안감이 내재돼 있던 것을 염두해두면 '터널'과 '서울역' 역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출발한, 다른 얼굴이라고 보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그 현상이 무엇인지 각자 떠올리는 것은 다르겠지만 그것이 낳은 파장은, 다시 영화를 통해 표현될 따름이다.
(사진=쇼박스, NEW 제공)
성찬얼기자 remember_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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