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누가 잘했나]탈탈 털려도 좋아? 호구男들..‘타짜’-‘오늘의 연애’-‘위대한 개츠비’-‘500일의 썸머’

기사 등록 2016-10-26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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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다. 그리고 캐릭터들도 넘쳐난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르는 그들을 하나의 주제에 놓고 선별해 볼 필요가 있었다. <편집자 주>

호구(虎口).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이기도, 또는 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는 바둑에서 바둑돌 세 점에 둘러싸인 채 한쪽만 트인 형국을 떠올리면 단번에 이해가 갈 것이다. 누가 봐도 막 바로 ‘잡아먹힐’ 먹잇감이 된 꼴이다.

‘호구’는 우리사회에서 주로 사기꾼의 표적, 이성관계의 노리갯감으로 많이들 언급된다. 그 중에서도 ‘내 여자’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을 만큼 몸도, 마음도, 돈도 전부 갖다 바치는 남자들은 영화의 흥미로운 소재거리를 제공한다. 나 하나에 상대방 두 점으로 ‘이정도면’ 평행을 유지하나 싶던 관계는, 돌 하나가 더 얹히며 단수(單手)에 빠졌다는 것을 깨닫고는 뒤늦게 ‘애초부터 내 여자였는지’ 의심하게 되는 국면을 맞는다. 이 가엾은 영혼들을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볼지, 순수 결정체로 대할지는 당신의 판단에 달려 있다.




# ‘타짜’ 호구(권태원)

이름부터 ‘호구’다. 영화 끝끝내 극 중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그저 ‘호구’다. ‘타짜’(감독 최동훈, 2006)에서 연신 “예림이”(김혜수)를 외치며 “내가 예림이 때문에 인생을 다시 느껴. 우리 오래가자”는 명대사를 남긴 이다. 까딱하다가는 손모가지 ‘댕강’ 잘리는 위험천만한 화투판에 몸을 담그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예림이 때문이다. 족히 50세는 돼 보일 정도로 나이 지긋하게 먹고는 예림의 아름다움에 홀려 이성을 잃고 정신을 못 차린다.

호구는 말한다. “화투는 운7기3이야. 운이 70이고 기세가 30이거든. 기세란 게 결국 판돈이거든. 노름이 뭐야? 그래 파도, 올라갔으면 내려가고,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거야”라고 모든 판을 관망하기라도 하듯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하지만 오늘도 호구는 예림 즉, 정마담과 일당들이 벌인 판에 보기 좋게 호구 잡힌다.




# ‘오늘의 연애’ 준수(이승기)

준수에게는 18년 된 벗이 있다. 남자도 아닌 그녀 현우(문채원)는 준수에게 “XX친구”라 칭하지만, 현우는 이 말이 꽤나 불편하다. 단지 여자여서 그런 게 아닌데, 여자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준수는 현우를 만난 18년 전부터 현재까지 쭉 그녀만을 짝사랑 해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준수를 향해 순정남이라고 경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준수 자신은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현우’를 마냥 지켜보고 싶지 않다.

‘오늘의 연애’(감독 박진표, 2015)는 18년째 진전도 없고 정리도 어렵게 ‘썸’을 타는 미묘한 남녀 사이를 이어가는 준수와 현우의 이야기를 담았다. ‘친구’라는 미명으로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강을 건너지 못한 이들이 진짜 짝임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이제는 그 단어를 오명으로 더럽히고 버려도 좋으니 ‘연인’이라는 새 이름표를 달고 싶은 순간이다. 현우 역시 그런 준수의 마음을 알고 있지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헤매고 아파하다 결국 안식처인 준수를 찾는다. 그렇게 ‘오늘의 연애’는 오랫동안 현우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줄 알았다가 사랑에 성공한 준수의 ‘호구 탈출기’이기도 하다. 호구가 평생 호구로 남으라는 법이 어디 있던가.




# ‘위대한 개츠비’ 제이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호구=해바라기’라는 공식이라도 존재하는 걸까. ‘위대한 개츠비’(감독 바즈 루어만, 2013)의 개츠비 또한 ‘역대급 스케일’의 헌신을 자랑하며 데이지(캐리 멀리건)만을 그리고 또 찾는다. 개츠비는 5년 전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군 장교시절 잠시 만난 데이지를 잊지 못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대부호가 됐고, 데이지를 찾을 방법으로 자신의 뉴욕 외곽 초호화 저택에서 토요일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어 수많은 손님을 초대하는 것을 택했다. 하지만 데이지는 이미 미국 동부의 이름난 부잣집 아들 톰 부캐넌(조엘 에저튼)과 결혼한 몸. 그럼에도 개츠비는 데이지를 되찾으려 톰과 마찰을 일으키고, 데이지의 애매한 태도와 톰의 불륜으로 시작된 사고까지 겹치면서 결국 개츠비는 돈도, 사랑도 모두 잃고 몰락하게 된다.

개츠비의 엔딩을 마주하고 많은 이들은 허망함에 몸서리친다. 하지만 이는 원작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메시지가 온전히 관통했다는 증거다. 스콧 피츠제럴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찾아온 버블경제, 그리고 대공황으로 무너져가는 아메리칸 드림을 예리한 선구안으로 시사했다. 개츠비는 곧 1920년대 거품 낀 미국의 자화상이었다. ‘허황됨’이 ‘허망함’으로 전락하는 처참한 과정은 ‘대부호’ 개츠비를 ‘대호구’로 희생시키는 꼴로 다뤄졌다.




# ‘500일의 썸머’ 톰(조셉 고든 레빗)

많은 남자들, 특히 짝사랑에 일가견 있는 남자들이 공감하는 영화로 ‘500일의 썸머’(감독 마크 웹, 2009)를 꼽는다. 영화의 주인공으로는 운명적 사랑을 기다리는 순수 청년 톰이 등장한다. 대단한 부를 축적한 것도, 높은 지위에서 직원들을 거느리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 감사카드를 제작하던 톰은 처음 본 자신에게 키스를 퍼붓는 등 처음으로 적극적인 여인 썸머(주이 디샤넬)를 만나고, 일생일대의 감사의 메시지를 남기게 된다. 하지만 썸머의 적극성과 자유분방함은 날이 갈수록 톰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급기야 자신을 두고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는 썸머는 천하의 ‘어장 관리녀’로 보인다. 그녀의 진짜 모습을 마주한 후 ‘나는 휘둘리기만 했다’고 억울해하며 눈물 콧물 다 쏟는 톰은 상실감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썸머와 뜨겁게 사랑하고 이별한 ‘500일간의 여름’을 거친 후, 가을을 맞은 톰은 깨닫는다. ‘그러한 사랑도 존재 한다’는 것을. 진짜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부모의 이혼 트라우마로 깊은 관계를 두려워 한 썸머와 안정적이고 영원한 행복을 추구한 톰은 그저 달랐던 것 뿐, 그릇된 것은 아니었다. 썸머가 지나고서야 오텀(Autumn)을 맞은 톰은 내면이 무르익은 상태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진=‘타짜’, ‘오늘의 연애’, ‘위대한 개츠비’, ‘500일의 썸머’ 포스터 및 스틸컷)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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