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선의 영화 원정기] 惡魔는 ‘곡성’에도 '사냥'에도 도사리더라

기사 등록 2016-07-0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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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선과 악은 이 땅 어디에나 도사리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는 산에 집중적으로 머물고 있는 악의 형태에 대해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곡성’(감독 나홍진)과 ‘사냥’(감독 이우철)을 통해 악의 행적을 짚어보겠다.

‘곡성’에서 마지막 한 마디로 “와타시와 아쿠마다!”(私は悪魔だ, 나는 악마다)를 외치는 악마의 발칙한 도발은 영화를 본 관객들의 뇌리에서 쉽사리 잊혀 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남는다. 둔갑했던 악이 인간 앞에 원형(原型)으로 고개를 든 순간, 새삼 완벽하게 소름이 끼친다.

앞서 ‘추격자’와 ‘황해’로 인간의 악행에 대해 분석한 나홍진 감독은 ‘곡성’에서 악의 근원과 본질을 파헤치는 데 집중한다. ‘추격자’와 ‘황해’에서 악은 일반적인 범죄자의 형태로 등장했다. 하지만 ‘곡성’에서는 그 대상이 미지의 초월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의심을 거두지 말 것’을 강조한 나홍진 감독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로 악을 표현했다.

그에 비해 ‘사냥’에서는 악이 선과 대척점에 있음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는 인간 내면을 탐구하며 물질을 쫓는 인간이 어디까지 포악해질 수 있고 비인간적이 되는지 신랄하게 까발린다. 탐욕이 낳는 처참한 광경을 무심하고 고요한 산을 배경으로 잔인하게 펼쳐 보인다.

두 작품 속 악의 정체가 산에 머물렀다는 점은 흥미롭다. ‘곡성’에서의 악이 고요하게 은둔하고 잠적했다면, ‘사냥’의 악은 산으로 먹잇감을 찾아와 쉼 없이 활개를 친다. 엽사 무리로 분열한 결과를 낳은 것인지, 개개의 악이 한 데 모여 거악(巨惡)이 된 것인지는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 인간을 그 어떤 때보다 추한 몰골로 만듦에는 확실하다.

그렇다면 두 영화의 배경이 굳이 산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악은 요란하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산은 한결 같다. 그 자리에 있으며 어떠한 소란도 더는 퍼지지 않게 만드는 나무와 물의 힘이 있다, 이 위대하고 이로운 생명력을 자랑하는 자연은 어쩌면 죽음을 자처하는 인간의 덧없음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산이 지닌 정화능력의 새로운 형태로의 발견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공기와 물 정도로 그치지 않고 인간이 품고 있는 ‘악한 감정’까지 맑게 치유하는 산실이겠다. 山이 産과 같은 발음으로 일컬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 가운데 크게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선, 아니면 악이다. 우리는 이미 악이 끼치는 영향을 무수한 역사와 예로 접해봤기에, 교묘하게 정체를 숨긴 다양한 악의 형태에 긴장을 늦추어선 안 되겠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롯데엔터테인먼트)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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