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해어화' 한효주, 봄처럼 싱그럽고 음악처럼 진솔한 배우
기사 등록 2016-04-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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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소준환기자]“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의 변화가 컸습니다. ‘나이 드는 게 뭐 어때서’라던 자연스러운 생각이 20대 마지막 연말이 되니까 뭔가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고 뭔가 억울하고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왜 아쉬웠는지를 생각해보니까 너무 어릴 적부터 책임감을 가져야 했고 그 책임감이 어른스럽게 만든 것 같아요. 어리광을 많이 못 부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강아지처럼 어리광 부리고 다니고 있어요(웃음).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 애교 부리고 다닙니다. 원래 애교가 없었는데 애교가 늘었어요. 인간적으로 변화가 찾아오고 있는데 좋은 것 같습니다.”
완연한 봄을 맞아 영화 ‘해어화(감독 박흥식)’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작품은 평생을 함께한 동무인 소율(한효주)과 연희(천우희)의 대립과 욕망, 작곡가 윤우(유연석)와 얽힌 사랑과 이별을 다뤘다. 그야말로 애절한 멜로인 것. 한국 영화계에는 그동안 뜨거운 감성이 깃든 작품이 드물었던 바 ‘해어화’는 영화 팬들에게 반가움으로 다가올 터. 그 중심에는 한효주가 있다. 영화 속 예인으로 분해 섬세하고 심도 있는 연기를 펼친 그와 최근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쉽지만은 않은 작품이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가 놓치기 아까운 시나리오였습니다(웃음).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욕심이 났어요. 연기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도전에 느낌이 강했습니다. 실제로도 많이 배워야 됐거든요. 처음엔 시간이 부족하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촬영이 몇 달 딜레이 되면서 연습할 시간이 늘어났어요. 충분히 배울 시간을 확보한 셈이죠. 배우는 것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기에 그 한계를 뛰어넘으면 일종의 성취감과 즐거움이 있었어요. 그 배움을 통해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모습이 쌓여갔던 것 같아요.”
한효주의 대답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이는 그가 그만큼 캐릭터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연구했기 때문이리라. 소율은 캐릭터의 특성상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인물이다. 소율에 입장에서 보면 그는 처절한 배신을 당하기에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캐릭터는 미묘한 감정까지도 표현해내야 하는 바 배우로서 부담이 되는 캐리터일 수 있다. 한효주는 어떤 감정선을 중시하며 연기했을까.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소율은 초반과 후반의 모습과 얼굴이 상당히 달라요. 초반 모습은 시나리오 보다 맑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존재여야만 일련의 일들을 눈앞에서 겪었을 때 그 정도로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조금 이성적이거나 성숙하면 그런 식으로 변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너무나도 순수한 존재였기에 자신이 변하는 태도에도 감당할 수가 없었던 것 아닐까요. 그러면서 자기 자신을 버리게 되는 모습도 나오고. 즉 소율의 감정은 순수함 아직 성숙하지 않은 아이의 모습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촬영할 때 그 모습을 원래의 톤보다 올려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한효주는 영화 속에서 구슬픈 정가를 불렀다. 실제로 그가 부른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해어화’는 정가와 1943년 당시의 대중가요를 아우르며 전개가 펼쳐지므로 인물들의 가창은 극의 감정선을 이끔과 동시에 배가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한효주는 배우이지 가수가 아닌 바 각고의 연습과 노력이 필요했다.
“정가를 배울 때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생소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정간보라고 옛날 악보가 있었어요. 음이 다섯 개 한자로 써 있습니다. 그걸 간파하기 어려워 나만의 악보를 만들어 음을 외웠어요(웃음). 원래 소리 내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잘하는 건 아니고 즐기는 정도입니다. 사실 한편으로는 정가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왜냐면 나한테도 생소한데 누군가한테도 분명 생소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다면 비교분이 없을 것 같아 덜 부담이 됐던 것 같아요. 선생님이 잘한다고 칭찬해주셔서 국악한마당을 나가볼까 생각 중입니다(웃음).”
한효주는 특유의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계절에 맞게 얼굴에 봄이 드리운 것만 같은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 속 소율은 중 후반부터 웃음을 잃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에 직면해 있기에 그렇다. 소율은 아름다워서 슬픈 꽃 같았다. 한효주가 ‘해어화’를 보면서 가장 슬펐던 장면과 가장 행복했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저는 의외로 마음을 두드린 장면이 있었어요. 소율이 윤우를 찾아가서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하자 그런 소율에게 연희 소식을 물을 때 굉장히 슬펐습니다. 강렬했던 인상은 연희와 윤우의 키스신을 봤을 때였어요. 마지막 장면도 연기 할 때 힘들었기에 하고 나니까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준비 기간까지 달려와 마지막 날에 찍어 굉장히 여운이 남았나봐요. 행복했던 장면은 윤우가 소율을 찾아왔을 때 이난영 선생님의 집에 데려다줬을 때 그때가 행복했던 것 같아요.”
그는 ‘해어화’를 통해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경험한 셈이었다. 한 인간의 회한 속에는 쓰디쓴 경험도 사무치는 기쁨과 슬픔의 추억도 모두 담겨 있기에. 그런가하면 ‘해어화’는 ‘조선의 마음’과 ‘사랑 거짓말이’ 등의 노래를 필두로 음악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영화다. 직업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소율-윤우-연희의 삶에서 음악을 떼어놓을 수가 없기에 그렇다. 문득 한효주는 실제로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평소 18번은 김광석의 노래입니다(웃음). 특히 ‘사랑했지만’을 좋아해요. 데미안 라이스 1집도 좋아합니다. 20대 초반엔 김광석과 유재하의 노래를 좋아했고 지금 유행하는 노래뿐만 아니라 옛날 노래를 찾아듣는 걸 좋아합니다.”
한효주는 지난 4일 서울시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 열린 ‘해어화’ 언론시사회에서 이슈데일리의 “실제로 사랑의 약속을 믿고 있느냐’는 질문에 ”사랑의 약속을 믿고 싶다”고 답한 바 있다. 그렇다면 소율의 입장에서 봤을 때 윤우를 향한 솔직한 심경은 사랑이었을까.
“사랑이었습니다. 소율은 윤우를 사랑했는데 그게 나중에 집착처럼 변한 케이스죠. 저도 아직 진짜 사랑이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변해 버리면 사랑이 아니지 않을까. 그래도 소율 역시 사랑이었던 것 같아요. 그 나이의 사랑. 그 상황의 사랑. ‘사랑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거짓말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거든요. 사랑의 의미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그게 위대한 거라면 저한테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처럼 사랑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상황과 변화 등으로 사람의 마음이 변할 뿐. 그러고보면 ‘해어화’는 사랑에 대한 뜨거운 고찰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어화’를 이끄는 감정은 사랑과 이별. 질투와 욕망이기에 그렇다. 여기에 인물들의 회한과 감성이 노래를 통해 담겨졌다. 사랑을 믿고 싶거나 혹은 사랑을 믿을 수 없게 된 사람에게 이 영화는 남다른 의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음악은 삶에 있어서는 안 될 공기 같은 존재잖아요. 음악이 없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서도 어디에나 음악이 흘러나와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 중 없어서는 안 될 예술이 음악 같아요. ‘해어화’는 저를 한 번 더 성장하게 했습니다. 촬영 현장에서 느끼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원래 막내였다가 뭐랄까 이젠 포지션이 생긴 것 같아요. 내 밑에 동생들도 생겨나고 있고 한 작품에 많은 역할을 차지해야 하는 것에 있어 오는 태도, 책임감 등등 ‘해어화’가 저를 가장 느끼게 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무책임하게 그냥 마냥 웃고 있을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때가 되면 싸울 수 있고 때가 되면 앞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한효주의 꿈은 마치 음악처럼 흐를 것 같았다. 그의 연기가 스크린 속의 공기처럼 필요하다면 그는 뮤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효주를 한층 성장시켰고 울고 웃게 만들었던 ‘해어화’는 13일 개봉한다. 그와 이 작품이 특유의 매력과 뜨거운 감성을 통해 올 상반기 극장가에 어떤 울림을 선사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이슈데일리 남용희 기자)
소준환기자 akaso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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