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ㅡ스티븐 스필버그가 소장한 자화상의 주인공 노먼 록웰의 '도망자'

기사 등록 2011-12-04 09:08
Copyright ⓒ Issuedaily. 즐겁고 신나고 유익한 뉴스, 이슈데일리(www.issuedaily.com) 무단 전재 배포금지
노먼록웰25.jpg
노먼 록웰,도망자 The Runaway, 1958,노먼 록웰 박물관

[이슈데일리 박정은 미술컬럼 전문기자]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경찰관이 어린 소년과 함께 간이 식당에 앉아 있습니다. 제목은 비록 거창하게'도망자'지만 가출 소년이 분명해 보입니다. 소년은 고작해야 10세 전후로 보이는데, 독립하기에는 너무 어려 보입니다. 아마도 어떤 사정 때문에 길거리를 배회하는 것을 경찰관이 발견하고 식당에 데려와 함께 식사를 하며 소년의 사연을 들어보려는 것 같습니다.

빨간 봇짐에 짐을 꾸린 것으로 보아 단단히 작정을 하고 가출한 것 같은데, 아마도 소년이 가출할 만한 어떤 사연이 있었던게 분명합니다. 왼편의 경찰관은 소년을 나무라거나 꾸짖기보다는 흡사 푸근한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년의 사연을 들어주는 모습입니다. 경찰관까지 등장시켜 '도망자'라는 제목은 붙여 놓았지만 탈출하려는 누군가를 붙잡은 것이 아니라, 경찰관과 식당 주인이 가출한 소년를 보호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도망자'라는 제목은 록웰식 반어법이자 록웰 특유의 생활유머로 봐도 좋을 듯 싶습니다.

경찰관은 자상한 표정으로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고, 식당 주인은 넉넉한 웃음으로 소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두 어른의 표정만 봐선 소년을 추궁하기 보단 친구처럼 다정스레 소년을 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 있었니?, 어디 갈건데?, 잘곳은 있니?" 같은 편안하고 일상적인 대화로 소년을 다독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두어른이 편하게 대해줘서 그런지 소년의 얼굴도 그리 어두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두 어른이 특별히 가출 소년을 선도한다기 보다는 소년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입니다.소년의 얼굴이 비교적 밝게 표현된건 그 때문인 듯 싶습니다. 학교 선생님이나 전문 상담원이 아니라서 오히려 소년도 편하게 사연을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찰관과 식당 주인의 여유로운 자세와 그리 심각하지 않은 표정으로 봐서 아마도 소년은 곧 귀가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입니다.

이렇듯 록웰의 일러스트에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생전에 주로 잡지 화보와 상업광고용으로 쓰였던 그림들을 많이 남겼던 탓에 록웰은 아티스트가 아닌 일러스트레이터라는 꽤나 실용적이고 사무적인 직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 컷의 일러스트에도 스토리가 담겨있기 때문에 오늘날 록웰은 단순한 일러스트레이터가 아닌 '스토리텔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The Saturday Evening Post)'라는 잡지의 메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4천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록웰은 미국인의 삶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데 주력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20세기 미국인의 삶과 일상이 잘 녹아 있습니다. 록웰의 일러스트 중에는 소년과 소녀가 등장하는 작품들이 많은데, 아이들 주변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거의 하나같이 시선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고 있는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등장하는 그의 일러스트는 대부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홈드라마 같다는 느낌을 줍니다.

'도망자'는 물론 '의사와 인형', '목마를 타는 할아버지와 아이' 같이 아이와 어른이 함께 나오는 그의 일러스트들은 대부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어른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록웰의 작품들이 대부분 다정하고 푸근하며 사랑스러운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록웰의 일러스트는 주로 미국인의 일상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 인물을 중심으로 표현되고 있는게 또 다른 특징입니다. 일상에서 기억할만한 순간을 포착하고 있는 탓에 록웰의 작품 하나 하나가 모두 한 편의 스토리를 담고 있으며 그 만큼 드라마틱합니다. 그래서인지 록웰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러스트를 연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록웰의 자화상을 소장하고 있다는게 우연은 아닌 듯 싶습니다.

 

박정은기자 pyk7302@naver.com

 

기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