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 손예진 “‘덕혜옹주’, ‘해적’ 넘어 최고 흥행작 되길 바라”
기사 등록 2016-08-05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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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양지연기자] 배우 손예진에게서는 큰 욕심이 보였다. 영화의 흥행에 대한 욕심이었다. 그러나 배우로서 자신의 위상이 높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덕혜라는 한 여인의 삶이 대중들 속에서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손예진은 누구보다 덕혜옹주의 삶을 애달프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배역에서 빨리 벗어나는 편이었던 그에게 이번 영화 ‘덕혜옹주(감독 허진호)’는 달랐다. 하이라이트 영상만으로도 울컥했다고.
“이번 작품에 몰입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는데 지금도 이 영화를 얘기하고 생각하면 기분이 울컥울컥한 느낌이네요. 아직까지 그 마음이 있나 봐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기존에도 책임감이 강했기 때문에 개봉 한 달 전에 잠 못 자고 그랬지만 그 때는 잘 돼야 되는데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단순한 고민이었다면 이번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예요.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설명할 수 없는 먹먹함은 덕혜옹주의 삶 때문일까. 손예진은 덕혜옹주의 삶을 ‘가혹하다’고 표현했다. 당시 나라의 운명만큼 비극적이었던 덕혜옹주의 삶. 강제 유학부터 시작해 강제 결혼을 하고, 고국으로 오고 싶어도 못 오다 정신병원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던 덕혜옹주의 가혹한 삶은 모두의 기억 속 쉽게 잊혔다는 아픔까지 가졌다.
“한번쯤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죠. 영화가 엄청난 교훈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을 다 떠나서 우리 인생에 관련된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역사적으로 업적을 쌓은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애정과 연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할 수 없는 세월 속 수동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던 한 여인에게 같은 여자로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와 닿고. 독립운동을 하는 멋지고 훌륭한 분들도 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사람들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그 피가 흐르고 있고 아주 옛날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민족적인 한도 분명 있을 거고요.”
‘덕혜옹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그가 정확히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남겨둔 기록은 많지 않다. 대부분 타인의 회고록에 남아 있는 덕혜옹주의 모습을 바탕으로 비어있는 이야기를 완성했다. 때문에 실제로 있었던 일을 제대로 담아내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많은 분들이 보셔야 하고 그러려면 볼거리가 있어야하는데 과연 얼마나 많은 분들이 보고 재밌어하실까 자신이 없었어요. 시대적인 것을 잘 재현하고 싶었고 이야기도 잘 만들어서 많은 분들이 봤으면 했죠.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것도 넣고 저것도 넣고 그렇다고 또 말이 안 되게 미화시킬 수도 없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 영화는 개봉 전부터 ‘역사 미화’가 아니냐는 우려 섞인 반응을 받았다. 대한제국 왕실에 대해 대중들이 가지고 있던 미덥지 않은 시선들 때문이었을까. ‘덕혜옹주’는 영화로서의 흥미성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실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했다.
“그 시대에 덕혜옹주가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차분히 담고 싶었던 게 목표였어요. 없었던 독립운동을 만들 수는 없죠. 그래서 최소한의 진실성을 가지고 가려고 했던 거고. 미화가 아니냐는 얘기에 대해서는 그만큼 관심이 많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선 책이 베스트셀러였기도 하고. 무조건 비판적으로 바라보시는 분도 분명히 존재하겠죠. 막상 영화를 보시면 미화됐다는 생각을 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덕혜옹주’는 우리나라의 격동기를 녹여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창작된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하다.
“두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보여줘야 됐어요. 덕혜옹주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망명 작전, 독립운동 등이 들어가야 돼서 덕혜옹주의 인생을 깊게 들어갈 수는 없었죠. 큰 사건을 위주로 대본이 나왔는데 이 상황들이 실제로 있었던 일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너무 과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어요.”
덕혜옹주의 ‘과했던’ 실제 삶은 허진호 감독을 만나며 담백해졌다. 손예진은 ‘허진호식 연출’에 대해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배우 입장에서는 얼굴을 더 클로즈업하고 더 길게 보여주는 것이 연기력 면에서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손예진은 장면을 적절하게 제한함으로써 슬픔을 극대화시키는 감독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감동을 주려고 일부러 꾸미지 않은 것이 오히려 관객들에게 더 먹먹한 아픔으로 다가가지 않았을까.
“편집하면서 간결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실제 연기할 때는 감정 다 끌어올려서 했는데 그 바닷가 장면을 어둡게 해버리고. 근데 그게 감독님 방식이고 그걸 좋아해요.”
손예진은 덕혜옹주를 책으로 먼저 만났다고 했다. 베스트셀러일 때 서점에서 우연히 읽으며 존재를 알게 됐다고. 이후 그는 허진호 감독이 소설 ‘덕혜옹주’를 영화화한다는 소식을 기사로써 접했다.
“감독님이 이런 역사적인 내용을, 여인의 인생을? 너무 신선했죠. 감독님이 어떻게 할까 기대도 됐고요. 여배우로서 여자의 일대기를 그린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영화화된다는 것도 좋았고 감독이 허진호인 것도 특별했고. 그러다가 연락이 왔어요. 영화화된다는 소식 이후 몇 년이 지나서요. 그동안 제작이나 투자가 쉽지 않았구나 생각을 했죠. 시나리오 계속 각색하시고 계신가 생각하기도 했고요.”
덕혜옹주의 영화화 소식에 누구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그는 영화제에서 감독을 만나 주인공 제의를 받게 됐다. ‘덕혜옹주’에 10억을 투자한 손예진의 쉽지 않은 결정은 어쩌면 소설을 통해 인물을 만났을 때부터 차곡차곡 쌓여왔던 것 일수도 있겠다.
“우연히 감독님을 영화제에서 만났는데 ‘예진아 한번 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거기서 조금 눈치를 챘죠. 워낙 역사적이고 무거운 이야기고 한 여자의 일대기고, 또 우리가 엄청 꾸며낼 수 없는 작품이다 보니 흥행을 떠나서 그냥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그냥 너무 욕심이 났고 영광이었습니다.”
배우 손예진과 감독 허진호는 영화 ‘외출’을 통해 만난 적 있다. 자기가 출연한 작품을 보면 ‘오글거려서’ 원래 잘 보지 않는다는 그는 올해 초에 외출을 다시 봤다고 한다. ‘외출’을 촬영할 당시에는 연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어색하더라며 쑥스러운 미소를 짓기도 했다.
“저는 외출의 분위기를 좋아해요. 그때만 하더라도 허진호 감독에게 선택받았다는 것이 굉장한 영광이었죠. 존중을 많이 해주셨어요. 감독님이 시나리오도 잘 본다고 하시고 의견도 잘 들어주시고. 그때 좋은 기억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이번 작품도 어떻게 보면 감독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손예진의 믿음이 통했던 걸까.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영화에는 호불호가 있을지언정 그의 연기력에는 모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말 너무 행복해요. ‘인생작이다’라는 표현도 해주시고, 연기적으로 되게 호평을 많이 해주셔서요. 이렇게까지는 처음이거든요. 보통 영화를 찍으면 조금 나뉘잖아요, 어느 정도는. 이번에는 다들 정말 좋게 봐주셔서 그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하고 뿌듯함이 있어요.”
누가 보기에도 완벽한 연기를 보여 준 손예진이었지만 분명 촬영할 때 힘든 점이 존재했을 터. 그는 그동안 맡았던 역할과 달리 이번에 연기한 역할은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쉽게 설명하지 못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인물들은 내가 상상한대로 마음껏 연주할 수 있었던 지점들이 있었죠. 덕혜옹주라는 인물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것이 있다 보니까 거기에 맞춰서 연기를 한 것 같습니다. 덕혜옹주에 얼마만큼 가까이 진실 되게 접근을 해서 관객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리허설을 거듭하면서 장면은 정말로 ‘완성’이 됐다. 극중 같이 모여 감자를 먹는 장면은 사실 쌀 씻어서 밥 하는 장면이었다고 한다. 손예진은 감자가 세 알인 것은 자기가 제안한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그 세 알의 감자는 결국 복동을 만나게 될 거라는 희망을 보여줬다.
“감독님은 디렉팅이 많지 않으세요. 일단은 무조건 리허설을 시키고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죠. 기본적인 대사를 똑같이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실화가 바탕이라 대사나 상황이 갖고 있는 정형성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걸 똑같은 방법으로 했다면 지루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거기에서 저희가 변주했던 것 같아요.”
덕혜옹주는 실제로 이 시대를 살았던 인물인 만큼 그가 ‘존재했음’을 관객들이 느끼게 하는 것이 영화의 큰 목표 같았다. 틀에 박히지 않은 연출과 연기는 그 존재의 증명을 도왔다.
“찍고 리허설 하면서 바뀌어 가는 것들이 많았어요. 바닷가 장면에서는 왠지 덕혜가 기어갈 것 같더라고요. 뒷모습으로 비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렇게 즉흥적인 상황에서 만들었던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생동감 있고 좀 더 리얼하게 볼 수 있죠. 너무 틀에 박힌 어떤 것들을 보여드리는 것 보다는요. 그런 지점이 허진호 감독님이어서 더 잘 되지 않았나싶습니다. 외출 때도 그랬어요. 그때는 거의 대본이 없었죠. 테이크 갈 때마다 다른 거예요. 재밌었죠.”
영화의 어느 부분도 쉽게 놓칠 수 없지만 유독 눈길이 가는 장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을 자아내는 ‘공항씬’이다. 덕혜옹주의 긴 세월동안 집약됐던 한을 드러내야 했던 이 장면. 그러나 그는 오히려 한의 표출을 최대한 절제함으로써 파란만장했던 삶과 고난이 관객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곧바로 새겨들 수 있게 했다.
“실제 자료 사진을 찾아봤는데 덕혜옹주가 출국하는 모습들, 사진의 모습들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동공에 초점이 없어보였어요.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걸 표현하고 싶었죠. 텅 빈 동공이요. 수많은 세월을 겪고 이 아픔을 겪은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슬픔도 아픔도 느껴지지 않는 눈빛.”
그가 연기한대로 관객은 덕혜옹주의 오열이 아니라 공허함에 더욱 큰 울림을 받았다. 공항 장면을 촬영할 때는 손예진 뿐 아니라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분위기에 젖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실화가 주는 힘. 보조출연자들은 덕혜옹주의 기구했던 사연을 듣고부터 울기 시작했다. 함께 출연한 라미란도 8시간동안 촬영하며 계속 울었다.
“미란언니도 처음이래요. 자기도 그렇게 눈물을 많이 흘린 적이 처음이래요. 그 분위기가 주는 것이 강했던 것 같아요. 해소가 되는 부분도 있을 거고. 저도 나중에 장면을 보면서 많이 울었거든요. 마음이 이상해서. 한 여인의 인생이잖아요. 대한제국의 황녀라는 타이틀을 다 떠나서.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할 수 있었던 게 별로 없던 가련한 여인이었던 것이 주는 감동과 아픔, 그런 것들에 우리가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너무나도 사랑받았던 딸인 덕혜옹주.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대한제국의 아이돌’이었던 덕혜옹주는 비극적인 생을 처절하게 살다가 잊혀져버렸다. 손예진은 그 삶이 주는 것이 본인에게 참 컸다고 한다. 무언가 한 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덕혜옹주가 돼 촬영하는 동안 자신의 맘속에 많은 것이 남았다고. 손예진의 바람대로 단순히 관객 수만 많이 모으는 흥행이 아닌, 실제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흥행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해적보다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나의 최고의 흥행작이 됐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고대하는 것 같아요. 천만이 목표가 아니라 그냥 잘 되기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양지연기자 jy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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