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탐구]김지운 감독, ‘밀정’까지 도달한 그의 여정①

기사 등록 2016-09-11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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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누군가 걷는 길엔 그의 족적이 남는다. 그건 시간이 지나도 그가 걸었던 길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한다. 그런 면에서 배우와 감독들은 언제나 모두에게 그들을 돌이켜볼 수 있는 영원의 순간을 선물한다. [필모탐구]는 이들의 필모그라피를 통해 배우와 감독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편집자주>

그야말로 ‘기회’란 말이 어울리는 인생이다. 김지운 감독은 ‘영화가 아니면 죽겠다’라고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뛰어들지도, 그렇다고 ‘언젠가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인생을 허비하지도 않았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10년 간의 방황 속에서도 그는 영화와 책을 놓지 않았고, 그것은 결국 그 자신의 자양분이 돼 ‘감독 김지운’이란 결과에 도달하게 했다.

김지운 감독은 연극 무대나 촬영 현장을 전전하던 중 차 사고의 수리비를 마련하고자 영화잡지 ‘프리미어’의 공모전에 시나리오를 출품해 가작으로 뽑혔다. 그 다음해에는 대학로 라면집에서 ‘라면받침’으로 쓰이던 영화잡지 ‘씨네21’에서 제 1회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됐다. 여러 번의 우연은 운명이라고 했던가. 그는 그렇게 감독이 됐다.


# 블랙코미디의 정수 ‘조용한 가족’(1998)

김 감독은 공모전에 당선된 ‘조용한 가족’으로 첫 감독직에 앉았다. 당시 블랙코미디라는 장르가 그렇게 보편화돼있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쓴 작품인 만큼 빼어난 센스를 보였다. 산장이란 좁은 공간 속을 포착해내는 감각은 이후 그의 영화에서 ‘공간’이란 테마가 부각될 것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많은 인원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조율하는 것도 탁월했다. 박인환, 나문희, 최민식, 송강호 같은 주연배우는 물론 정재영, 정웅인 등 현재 맹활약 중인 배우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한 작품이다. 이후 ‘조용한 가족’은 일본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 손에서 재탄생하는 등 알려진 것보다 세계적으로 이목을 모았다.


# 송강호의 재발견 ‘반칙왕’(2000)

차기작 ‘반칙왕’에서 김 감독은 다시 송강호를 선택했다. 당시 송강호는 ‘넘버 3’ ‘쉬리’ 등으로 대중들에게 주목받는 배우였다. 그런 그를 단독주연으로 내세우고 거기에 ‘프로레슬링’이란 소재를 선택한 김 감독은 다소 씁쓸한 맛을 줄인 코미디를 선사했다.

일상생활에 염증을 느낀 회사원이 스포츠를 접하면서 변한다는 내용은 비슷한 시기 일본의 ‘쉘 위 댄스’(2000) 미국의 ‘파이트클럽’(1999)을 연상시켰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한국인에게 적합한 개그 코드, 상황들로 그 해 흥행 2위를 차지했다.


# 일상을 집어삼킨 공포 ‘쓰리’(2002) ‘장화, 홍련’(2003)

그리고 그는 단 두 작품 만에 ‘한국 대표 감독’으로 발탁됐다. 공포에 대한 옴니버스 영화 ‘쓰리’에서 홍콩의 진가신, 대만의 논지 니미부트르과 한 부분을 맡은 것. 그는 김혜수, 정보석으로 인간의 심리를 기반으로 한 공포에 도전했다.

이어진 장편영화 ‘장화, 홍련’은 그의 장기가 한층 극대화됐다. 밀폐된 공간에서 불확실한 존재에 대한 공포감은 관객들에게 쫀득쫀득한 긴장감을 전했고, 무엇보다 탄탄한 복선을 바탕으로 완성된 결말은 또 하나의 충격을 선사했다.

거기에 이 작품은 모든 배우들이 ‘성취’라고 해도 좋을 만큼 빼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묵직한 존재감의 김갑수는 물론이고 염정아의 히스테릭한 연기, 임수정의 집착에 가까운 자매애, 문근영의 유약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아우라까지 여배우들이 무척 빛난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거론되고 있다.


# 배우 이병헌의 만개 ‘달콤한 인생’(2005)

성공적으로 호러 영화를 완성시켰지만 김 감독은 다시 자신의 작품세계를 넓혀나갔다. 국내에서 코미디로 자주 제작되는 ‘조폭물’을 전혀 상반된 ‘느와르’로 연결시켰다. 보스에게 배신당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2인자라는 다소 상투적인 소재를 특유의 아름다운 영상과 배우 이병헌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비틀었다.

특히 이병헌이란 배우의 영화 필모그라피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의 기점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공동경비구역 JSA’와 ‘번지점프를 하다’ 등에서 보여줬던 연기와는 상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이후에 이어지는 필모그라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황정민, 김뢰하, 이기영의 악역연기는 제각기 이병헌과 대립각을 세우며 영화의 균형을 맞췄다.

이 작품은 유독 김지운 감독의 ‘독한 면’이 자주 회자되기도 했다. 창고 장면에서 이병헌의 몸에서 김을 내기 위해 한겨울에 찬물을 뿌리고 비가 오는 날씨에도 실제로 이병헌을 매장하는 장면을 강행하는 등의 일화가 유명하다.


◆ '달콤한 인생' 이후 김지운 감독의 [필모탐구]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성찬얼기자 remember_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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