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얼의 영화읽기]‘곡성’ 집념으로 밀어붙인 미학적 성취

기사 등록 2016-05-04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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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사실 많은 영화들이 미시화되고 있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매체가 바뀐 순간부터 영화는 스스로를 잘게 나누는 것에 의미가 있는 듯 짧은 쇼트들과 클로즈업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현장의 즉흥성이 남아있는 한국영화는 그런 특색이 더욱 강한 편이다. 그러나 ‘곡성’은 무서우리만큼 자신을 몰아세웠다. 그리고 그 곳에는 가장 아름다운 거시적 미학이 남게 됐다.

‘추격자’ ‘황해’라는 나홍진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하면 다소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그의 작품은 항상 인물의 ‘투쟁’을 지켜본 만큼 거시적인 부분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홍진 감독 스스로 밝혔듯 ‘피해자가 왜 이렇게 당하게 되는 걸까’라는 고민에서 시작한 ‘곡성’은 필연적으로 그 이상의 시각을 가져야 했고, 그래서 그에 걸맞은 미학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곡성’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 혹은 끝이 없는 동굴을 파고드는 느낌을 준다. 한 번 시작된 의심이 거침없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나홍진 감독은 다층적인 프레임을 구축함으로 실현한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인물의 전경과 후경에 다른 피사체를 배치시켜 안쪽으로 깊게 뻗어나가는 ‘깊이’를 스크린에 구현한다.

여기에 여러 번 반복되는 카메라의 정면 트래킹(촬영 시 이동 수단을 통해 카메라를 움직이면서 촬영하는 것)은 관객들 역시 스크린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끌어들인다. 만일 관객들이 ‘곡성’을 보면서 ‘빠져든다’라는 이미지를 받게 된다면 그 비밀은 시시각각 제시되는 트래킹 쇼트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확고한 콘셉트는 그동안 완벽을 기했다는 헌팅(영화 촬영시 필요한 장소를 물색해 지원 또는 섭외)과도 정확히 맞아떨어져 시종일관 아름답고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형성해나간다. 그리고 이런 시각적인 부분들은 영화 속 심오한 주제를 보다 접근하기 쉽게 포장해서 관객들에게 건네준다. 잘 구축된 미학은 장르적 재미까지 포섭해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들이 ‘존재의 투쟁’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이번 ‘곡성’은 그것을 뒤집은 ‘투쟁의 존재’를 다룬다고 보는 것이 적합하다. 애초 강한 존재였던 전작의 주인공들과 달리 ‘곡성’의 종구는 남들보다 잘 놀라고 계속 마음이 흔들리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힘 이상의 뭔가와 맞닥뜨리면서 감정적 고조를 이루는 그 순간, 거기서 ‘곡성’은 순응하지 않는 인간의 단면을 풀어놓는다.

‘곡성’이 놀라운 건 생각보다 훨씬 유머러스하고, 그 유머를 넘어서는 지점부터는 가혹한 운명론적 비극이 기다리고 있지만 그걸 자유자재로 활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무시무시한 영화가 한층 더 돋보이는 건 배우들의 호연이다. 곽도원, 천우희, 황정민, 그리고 숨겨져있던 쿠니무라 준과 김환희의 시너지는 이 영화의 묵직함을 고스란히 살려낸다.

특히 곽도원은 첫 주연임에도 평범한 시민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이 악물고 싸우는 아빠까지 굉장히 넓은 종구의 감정선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곡성’을 이끌어나간다. 많지 않은 분량에도 천우희와 황정민은 이 이야기의 토대를 탄탄하게 지켜주고 쿠니무라 준은 외지인이자 사건의 중요한 키를 쥔 인물의 모호하고도 기묘한 카리스마를 발산한다. 아역배우라는 사실을 잊게 될 만큼 능숙한 김환희의 연기도 일품이다.



영화의 극적 분위기를 저변에서부터 끌어내는 음악과 몇 번을 다시 생각해봐도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는 스토리까지, ‘곡성’은 그렇게 ‘까도 까도 좋은’ 영화로 완성됐다. 다만 과연 이 영화 속 폭넓은 해석이 가해진 결말부가 과연 관객들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지 그것은 미지수이다.

그러나 관객들이 기억하고 있을 서늘한 밤공기의 감각과 압도적인 것을 마주했을 때 새어나오는 중압감 등을 자극하는 ‘곡성’은 분명 상반기 기대작에 걸맞은 완성도를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최근 한국영화에서도 가장 고민이 많이 느껴지고, 그 고민 이상으로 걸작이 나왔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는 12일, ‘곡성’이 전국 스크린에서 관객들을 매혹시킬 그 시간이 기다려질 뿐이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성찬얼기자 remember_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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