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ㅡ원조'로미오와줄리엣' 워터하우스의 '티스베'

기사 등록 2011-09-03 21:46
Copyright ⓒ Issuedaily. 즐겁고 신나고 유익한 뉴스, 이슈데일리(www.issuedaily.com) 무단 전재 배포금지
티스베 11.jpg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티스베] 1909년
[이슈데일리 박정은 미술전문기자] 한 여인이 슬픔이 그득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녀의 온몸에 세포 하나하나가 맞은편 벽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 그림속 풍경으로 들어가 볼까요?

바빌로니아의 선남선녀인 피라모스와 티스베는 바로 옆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두사람은 열정적인 사랑을 하지만 양가 부모님들의 반대로 서로 얼굴을 볼수도 사랑을 나눌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이서 볼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일만큼 슬픈일은 없을 것입니다. 반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안타까운 마음은 커져갔고. 이 때문에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가슴앓이도 날로 더해져 눈물로 밤을 지세우는 날이 많았답니다.

그러던중 두집 사이의 벽에 구멍이 있는 걸 두사람은 우연히 알게 되었고, 이때부터 돌담 사이로 난 구멍은 그들만의 유일한 사랑의 연결통로가 됐고, 서로 얼굴은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안타까운 사랑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보고싶은 간절한 마음은 더해갔고 목소리로만 사랑을 나누기에는 서로를 너무도 그리워 했기에, 급기야 두사람은 양가부모님의 눈을 피해 그들만의 세상으로 도망가기로 했습니다. 마침내 이들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왕릉 흰 뽕나무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이날 새벽 티스베는 눈에 띄지않게 너울로 얼굴을 가린채 약속한 왕릉 나무 밑에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피라모스를 기다렸습니다. 이때 갑자기 짐승을 갓 잡아먹고 입가에 피가 흥건한 사자와 마주쳤습니다. 놀란 티스베는 쓰고온 너울을 떨어트린채 바위틈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사자는 피투성이가 된 입으로 티스베가 떨어트린 너울을 물어 뜯어 놓았습니다. 뒤이어 약속장소에 도착한 피라모스는 사자의 발자욱 위로 갈기갈기 찟겨진 너울을 보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티스베가 사자에게 잡아 먹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순간 그는 슬픔에 못이겨 칼을 뽑아 자신의 가슴을 찔렀고, 이로인해 그 옆에 있던 하얀색 뽕나무 열매가 빨갛게 물들여졌습니다.

한편 바위 뒤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던 티스베는 피라모스를 찾아 나섰고, 자신의 너울을 안고 숨을 거둔 사랑하는 남자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녀 역시 이같은 모습에 충격에 빠졌고, 상황을 짐작한 티스베는 스스로 자결, 사랑하는 남자와의 영원한 동행을 결행했습니다.

두사람의 슬픈사랑에 감동한 양가 부모님들은 이들을 합장해, 그들의 고결한 사랑을 기렸습니다.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기억이라도 하듯 이들의 피 위에 난 힌뽕나무는 그 뒤로 붉다 못해 검붉어져 갔습니다. 아마도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잊지않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조격인 티스베와 피라모스의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사랑을 소제로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워터 하우스의 작품은 티스베의 애절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그만의 아름다운 색채와 사실주의적 섬세함으로 잘 표현해 냈습니다. 그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잘 표현해내 신화를 가장 신화적으로 구현한 화가로 이름이 높습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진실하고 심층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으며, 이상적인 여인상을 추구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티스베와 피나모스를 묘사한 위의 작품에도 순간적인 상황에 대해서 지극히 사실적이며, 전형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을 보면 유난히 색채가 아름답습니다. 몽환적이며 신비스럽기 그지없는 여인의 실루엣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화가중 한명입니다. 그렇지만 위의 작품은 티스베의 절절한 사랑에 초점을 맞추어 티스베의 아름다움보다는 안타까움이 더 많이 묻어나 있습니다.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사랑의 달콤한 보다는 그 뒤에 찾아올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이 내포되어 있는듯 합니다. 사랑의 달콤함을 나누는 티스베의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불안과 함께 '근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워터 하우스는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을 암시하면서 이 작품을 그린 것 같습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 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타인들의 반대가 심하면 심할수록 당사자인 남여의 사랑은 결속력이 단단해 지면서 사랑은 더 깊어지는것을 말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문의 열렬한 반대가 있었기에 오히려 서로에 대한 사랑이 죽음까지 함께할 수 있는 맹목적인 사랑으로 이어갔으며 삼국사기에 전해져 오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또한 그러했습니다. 요즘 '공주의 남자' 로 한참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사극 또한 '로미오와 줄리엣효과'로 인해 그들은 본인들의 사랑의 깊이보다 어쩌면 더욱더 깊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시대나 이야기가 조금씩 다를뿐, 죽음도 두렵지않는 순수하고 맹목적인 사랑은 다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사랑을 하고 또 너무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같은 사랑'을 하는 요즘 현대인들에게 이들의 '순수한 사랑'은 한번쯤 되세겨볼만 합니다. 죽음도 두려워 하지않는 '사랑의힘' 이야말로 세상을 바꿀수 있는 가장 강력한힘이 될수도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원조격인 '티스베와 피나모스의 사랑'을 '워터하우스'의 의미있는 그림으로 한번쯤 감상해보는 것도 이 여름의 끝자락에서 의미있는 행보가 될 듯 합니다.

 

박정은pyk7302@naver.com

 

기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