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리뷰]‘밀정’ 송강호X공유 연기 밀도는 ↑, 김지운 감독 자의식은 ↓

기사 등록 2016-08-2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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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항일과 친일 사이, 그 경계선에 선 인물들은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 속에서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국가와 개인의 존립이 위태로운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취할법한 암투와 교란작전이 1923년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바탕으로 다뤄졌다.

김지운 감독은 이번 영화 ‘밀정’을 연출하며 자신의 자의식을 최대한 배제했다. 앞서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악마를 보았다’(2010) 등으로 잔인함 속에서 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자신만의 색채로 강렬하게 드러낸 감독이었기 때문에 이번 시도가 더욱 흥미롭다.

25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 열린 ‘밀정’ 언론시사회에서 그는 직접 “영화의 흐름에 최대한 초점을 맞췄다”는 말로 변화를 입증했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의열단의 거사를 향한 움직임과 이를 추격하는 일본 경찰들 사이의 숨 막히는 내, 외적 신경전을 그린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까지 김 감독이 선보이던 잔혹 액션 드라마의 성격이 덧입혀져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익히 알던 역사이고 그만의 튀는 색채를 줄였음에도 영화의 인상은 매우 강하게 남는다.

이는 김 감독 특유의 화려한 카메라 무빙과 밀도 높은 연출, 탄탄한 구성의 각본과 더불어 배우들 모두의 호연이 돋보인 덕이라 할 수 있다. ‘밀정’은 혼돈의 시대에서 태어난 이중첩자가 가지는 정체성의 분열을 다루며 결국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 민족 전체가 겪었던 뼈아픈 고통이라는 주제를 던진다. 김 감독은 자신의 장기를 튀지 않는 선에서 적절하게 꺼내들어 관객들이 메시지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게끔 힘을 쏟았다. 덕분에 묵직한 의미는 그대로 전달하면서 장르적 쾌감과 서스펜스는 살아난다.




일제의 주요시설을 타격할 목적으로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물거품 시키려는 일본 경찰의 계획은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배우들의 호연으로 꽉 채워졌다. 배우 송강호는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을 연기하며 흔들리는 자아와 그 와중에 현실감 있는 인간미를 아이러니하고도 심도 있게 표현한다. 덕분에 이정출은 여타 영화에서 그려질 법한 ‘마냥 나쁜 놈’이 아닌 한층 입체감 있는 캐릭터로 거듭난다. 공유는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으로 분하며 그만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냉철함을 갖춘다. 송강호와의 호흡과도 잘 어우러지는 장면들을 통해, 공유가 이전보다 훨씬 깊이 있는 연기 진화를 꾀했음을 알 수 있다.

의열단의 핵심 여성단원 연계순 역의 한지민은 기대보다 다소 적은 분량의 등장으로 아쉬움을 살 법하지만, 영화 후반의 특정 장면을 통해 여배우로서의 벽을 제대로 깬 흔적을 보여준다. 연기만으로 소름 끼친다는 경험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한지민의 활약은 강하다. 일본경찰 하시모토 역을 맡은 엄태구는 초반부터 부하의 따귀를 가차 없이 때리는 강렬한 캐릭터 소개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정출과 의열단의 관계를 의심하며 영화 내내 날선 눈빛을 보이는 엄태구는 그만의 허스키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영화 속 가장 악독한 인물로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한다. 여기에 이국적인 외모까지 더해져 대체불가의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의열단의 핵심 단원이자 김우진의 10년 지기 조회령으로 분한 신성록은 차분한 겉모습 속에서 끝내 시대를 향한 회의감을 표하며 엄태구와 함께 인상 깊은 악역 연기를 펼친다. 또 여기에 이병헌의 의열단장 정채산으로의 특별 출연은 영화의 무게감을 더한다. 특별 출연인 만큼 그리 큰 비중이 아님에도 그의 존재는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밀정’은 차가움으로 시작해 뜨거움으로 매듭지어지는 영화다. 아무것도 남을 수 없던 시대에 피어나는 주권 확립의 본능은 당시를 넘어 현대에도 그 뜻이 관통한다. 영화는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암울했던 면면, 누구나 밀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전 과정을 담으며 한 나라가 위협에 처해졌을 때 개인의 존립마저 위험해질 수 있음을 주제로 내세운다.

김 감독은 시사회에서 “‘밀정’은 혼란한 시대를 상징하면서 개인에게 어떤 롤이 주어질 수밖에 없던 당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며 “그 와중에 실낱같은 희망, 민족이 취할 본령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지금의 우리가 선 곳 역시 일종의 경계선 위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9월 7일 개봉.





(사진=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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