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커튼콜’ 장현성 “배우, 상처받기 쉬운 영혼으로 걸어가는 이들”
기사 등록 2016-12-08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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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영화 ‘커튼콜’(감독 류훈)에서 장현성과 박철민은 극중에서도, 실제로도 참 많이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배우들이었다. 이날 인터뷰를 통해 만난 장현성은 차분하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다하는, 극 중 민기를 보는 듯했다.
8일 개봉한 ‘커튼콜’에서 장현성은 삼류 에로 연극을 올리던 배우들에게 ‘햄릿’을 공연해보자고 제안할 정도로 연극에 자부심이 큰 민기를 맡았다.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현성 본인도 배우에 대한 마인드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는 박철민의 ‘눈물’에 대해 묻자 “주책이죠”라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도 뭉클했어요.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란 것이 그래요. 흔히들 배우에 대해 정의들을 얘기하시잖아요. 그 중 하나가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유지하는 사람’이란 말이 있어요. 박철민 배우님만 해도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은 분입니다. 배우로서 가지고 있던 고민들이 확 무장해체돼서 터진 것이니 저도 배우로서 찡했죠. 사실 우리 배우들을 박수쳐주기도 하지만 손가락질도 하시곤 합니다. 결국은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유지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척, 안들리는 척 걸어가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날도 결국 다 모여서 낮술 마셨어요.(웃음)”
배우로서의 고민. 폭넓은 캐릭터 소화력으로 악역과 선역을 넘나드는 장현성에게는 사실 쉽게 떠오르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그만큼 능숙하게 캐릭터에 딱 맞는 자신의 연기를 펼치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배우로서의 고민’을 물었다.
“당연히 있어요. 모든 배우가 그럴 것이에요. 가장 큰 고민은 배우는 누군가 제안을 해줘야 하는, 고용의 불안정성이 큰 직업입니다. 연기하지 않는 배우는 실업자니까요. 다니엘 데이 루이스처럼 7~8년에 한 번 연기하고 아카데미 받은 후 이탈리아에서 구두 만들고, 이런 사람들이 아니죠. 매 작품마다 만들 때 제 의견이 다 반영돼서 만드는 게 쉽지 않아요. 모든 환경에서도 얼마나 저의 인물과 정서를 같이 유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작품의 완성도를 끄집어낼 수 있을까, 이런 게 늘 고민이죠.”
이미 장현성은 민기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꼭 빼닮았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도 그는 연극 연출을 공부하다가 배우로 데뷔했다. 남들은 걱정했다지만 급여를 받고 술만 먹던 그때가 재밌고 신났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더욱 극 중 민기한테 애정이 가요. 제대하고 졸업해서 공식적인 실업자 생활을 할 때, 당시엔 대학로에서 연출이 되려면 연출가 밑에서 10년간 따라다니면서 조연출을 하던 시절이었어요. 저는 그런 시간을 견디면서 연출가로서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그때가 박광정 선배님이 신인 연출가로 한참 뜨던 시기였는데 학전이란 극단이 생겨서 조연출로 간다고 하더라구요. 상까지 받은 분이 다시 조연출을? 그래서 물어보니 김민기 선배님이시라고 하시면서 오디션 볼 생각 없냐구 물어보셨어요. 그렇게 우물쭈물 봤는데 운이 좋게 붙었어요. 저한테는 운명처럼 자리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그 시절로 다시 간다고 해도 기쁘게 받아들일 만큼 당시가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장현성은 “가장 신났던 시절”이라고 언급할 만큼 연극에 빠져있던 그때를 떠올렸다.
“제 인생에 가장 아름답고 신났던 시절이에요. 그런 얘기가 있잖아요. 저 어릴 적엔 초등학교 때는 달리기만 잘하면 되고 중학교 때는 영어 수학 잘하면 되고 대학교 때는 술만 잘 마시면 된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면 이게 어려워요. 달리면서 다 해야하니까요. 저는 연극을 하던 시기에 연극만 하면 됐어요. 다른 소소한 고민은 있었지만 제가 충만하게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을 뺐진 못했어요. 내일 공연을 오늘 공연보다 좋은 공연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거 하나였죠.”
그래서일까, ‘커튼콜’의 민기는 고스란히 장현성의 애정이 묻어나는 역할이다. 그러면서도 극중 연출가답게 현장에서도 배우들을 이끄는 수장의 역할까지 톡톡히 했다. 그가 ‘커튼콜’ 촬영하면서 제시했다는 “배우들이 연극처럼 한 달간 연습할 수 있는 연습실”도 그가 고민한 결과였다.
“영화 전체 톤의 조절이나 무대 위의 문법을 어떻게 영상으로 옮길 것인가, 고민했어요. 다분히 기술적인 것이라 제가 나서기엔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있죠. 제가 생각했을 때 촬영장에서 문제가 생긴다, 싶었던 부분을 많이 고민했어요. 그래서 그 연습실도 그 일환이었고 모든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고민했어요. 무대 위와 백스테이지, 객석. 세 공간이 실시간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얼마나 영화관의 관객들에게 믿어지게 만들 수 있는가, 그게 숙제였어요.”
총 20회차도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커튼콜’의 모든 인원들은 밀도 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촬영에 임한 듯했다. 그래서 완성된 ‘커튼콜’은 다소 유쾌한 분위기에도 사람을 움직이는 찡한 감동이 자연스럽게 묻어났다. 어쩌면 그것이 장현성의 소속사에게도 전해지면서 1억원이란 투자를 받게 한 계기였는지 모른다.
“나쁜 작품을 강권할 순 없어요. 그렇다고 영화라는 게 무조건 의미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도 아니에요. 그렇지만 이 작품은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죠. 무슨 짓이든 하고 싶었어요. 사무실에서 이런 영화가 이렇게 나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남한테 10만원 주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영화를 보고 생각이 비슷하면 투자해달라고 권유했어요. 동의를 해주신 거죠. 결국은 기자 분들 모신자리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영향력이 적기 때문에 작품이 좋으셨으면, 한 분의 관객이라도 정보를 접할 수 있게 절박한 마음으로 말씀드린 거죠.”
‘햄릿’을 무대에 올리는 영화답게 ‘커튼콜’에서는 무대의 매력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전무성의 선굵은 연기는 물론이고 장현성 역시 ‘햄릿’의 대사를 읊는 장면으로 일순간 관객들을 고요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그 말에 “장난 아니죠?”라며 장난스럽게 미소지으며 96년도에 국립극장에서는 호레이쇼 역으로 공연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민기에게 ‘햄릿’이 있다면 배우 장현성에겐 어떤 작품이 가장 무대에 서고 싶은 작품일까.
“막연하게 저런 역을 하면 어떨까 했던 건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텔레스하고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서 스카였어요. 파우스트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공연은 계속 되고 있는데, 원작의 서사 그대로, 클래식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걸 해보고 싶어요.”
그는 박철민과는 오래된 사이지만 공교롭게도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박철민이 스스로 장현성보다 잘 생겼다는 발언을 했던 것을 묻자 “뇌에서 명령을 내리기 전에 입에서 나오는 분이에요”라고 농담조로 절친한 사이임을 드러내기도 했다.
“관객입장에서 봤던 애드리브와 만나서 연기할 때 마주하는 애드리브는 정말 다르더라고요. ‘어디까지 하는 거야’ 싶었어요. 하지만 ‘커튼콜’이란 작품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이, 예를 들어 다른 영화처럼 ‘할 때까지 할 테니 잘라’라는 식은 될 수 없었죠. 그래서 다 연습하면서 정한 정제된 애드리브였어요. 관객 여러분들이 애드리브를 말하지만 사실은 정말 많은 노력과 고민이 있어야 나오는 것이에요. 많은 경우의 수를 염두해두고 나오는 거구요.”
그에게 놓을 수 없는 꿈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그건 변함이 없어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작품을 멋지게 만드는 거예요”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인생작’을 묻자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커튼콜’이에요”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모든 제작진과 출연진과 나눈 시간들, 같이 고민했던 영역, 그런 것들을 지나서 만들어진 이후 시사회 등을 통해서 보였던 관객들의 반응들, 개인적으로 상상했던 것들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작품으로서 주는 감동 같은 것들이 합쳐져서 그렇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커튼콜’을 볼 관객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커튼콜’의 수장답게 진지한 대답으로 열정을 내비치며 관객들에게 진심을 전했다.
“이번 작품 같은 경우는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보기에는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고 완성도가 있어요. 세계적으로도 한국은 영화적으로 큰 나라입니다. 스코어를 겨냥한 다소 편향된 제작 패턴에서 벗어난 문법의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조금은 수고스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 수고를 감당해주신다면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노력하신 그 시간 이상의 경험과 감동을 드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한 감정을 담아서 관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성찬얼기자 remember_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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