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은의 잼있게 미술읽기] 고흐의 신발2-삶의 일부로서의 가치.
기사 등록 2011-08-3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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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미술전문객원기자]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대가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던 고흐. 그의 이야기를 나는 지난 칼럼에서 그의 작품 ‘신발’로 풀어보았습니다. 어찌보면 고흐를 ‘문화 빈민가’란 의미에서 이야기를 풀어갔던 것입니다. 그럼 이번 컬럼에서는 그의 작품을 ‘자신의 삶의 일부분’으로 풀어보려 합니다.
화가는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그의 인생을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작가들의 작품은 소리없는 언어로 자신을 나타내는 표현이며, 그림을 그릴 당시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분출하는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림에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 작가의 감정을 읽어내기도 합니다. 이렇듯 화가의 작품은 그 사람의 감정은 물론 그 당시의 상황과 심지어 경제상태까지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곧 그 그림은 작가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도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어떠한 계기가 마련되었을 때,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하게 꿈틀댈 때가 많습니다. 그런면에서 고흐의 신발, 이 작품은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흐 자신의 삶의 애환과 삶의 무게로 인한 고통, 그리고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그대로 묻어있는 작품입니다.
화가의 삶과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작품을 대하는 것은 감상의 기본적인 예의인데, 그것을 내게 새삼 일깨워 준 것이 바로 고흐의 신발이란 작품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낡은 구두 두짝만 그려놓음에도 우리에게 많은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아버지의 성경'이란 그의 작품이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과 대조적으로 이 낡아빠진 구두 그림은 정말 신비스러울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입니다. 철학자들도 이 그림을 즐겨 강의 주제로 삼았을 정도였습니다.
독일의 하이데커는 이 구두에서 주인의 고생스런 걸음걸이를 상상했고, 해가 떨어질 무렵 이 구두가 외롭게 걸었을 밭길을 떠올렸으며, 이 신발에는 소리 없는 대지의 아우성이 진동하고 있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구두를 둘러싼 공방전을 치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외심과 신비감을 불러일으킨 이 낡은 구두. 고흐는 과연 이 주인없는 구두를 통하여 '부재'를 그린 것일까요?
어쩌면 이 구두의 주인은 죽고 없어졌지만, 현존하는 실재로써 이제 구두만 남아있습니다. 고흐는 그 부재의 현존을 보여줌으로 우리를 고독한 명상으로 이끌어 준건 아닐까요?
사회에서 가장 비천한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발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사회에서 소외되고 천대 받는 삶을 보여주는듯 합니다. 그의 어려운 삶 만큼이나 그는 신발이란 작품을 통해 사회는 공평하고, 또 공평해져야 한다는 것을 외쳤는지도 모릅니다.
나 역시 고흐의 이같은 생각에 전적으로 공감을 표합니다. 나의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벗어놓은 뾰족한 구두를 보면서 이질감이 느껴져야 하는데 묘한 동질감마저 느낍니다. 나도 특별한 외부 강의가 있는 날에는 가장 아끼는 예쁜 구두를 신습니다. 어쩌면 내 삶보다 조금 더 화려해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런 날 나는 신발을 벗는 순간, 포장되어진 내 모습을 벗고 고단한 내 삶을 내려놓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 천대받는 삶은 아니지만, 아니 혹자는 이 글을 읽으면서 그와 반대의 부류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오늘 내 나름의 고단하고 힘든 삶의 신발을 벗으면서 내려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물론 그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어떤 감정의 표현과 내가 생각하는 느낌은 다를 수 있겠지만, 그 어떤 것을 표현하고 또 그렇게 표현된 것을 보면서 느끼는 것 사이에는 어떤 공감대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흐가 일생 동안 그린 7점의 신발 정물화 중 생레미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 '신발'은 그 자체로 그림의 소재가 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고흐가 그린 낡은 신발들은 시골 노동자들의 힘든 삶에 대한 연민을 상징 하는 것으로 흔히 해석 되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그린 낡은 구두가 갈색 과 검정의 어두운 색조였던데 반해 고흐는 이 작품에 많은 양의 황토색과 녹색, 붉은색을 더해 오래되고 낡은 신발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습니다.
전에 고흐가 그렸던 작품과 느낌이 많이 달라서 논란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훗날 고흐가 답사 할 때 신었던 신발을 그린 것 이라는 동료 화가 에밀 베르나르의 증언으로 인해 작품 속의 신발은 고흐의 것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고흐는 화가로서의 작업에 도움을 받기 위해 헤이그에 있는 사촌 모베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모베는 그를 나막신이 있는 정물 앞으로 데려갔다고 합니다. 이 나막신은 고흐가 그린 최초의 구두라 할 수 있습니다.
낡은 한 켤레 구두가 가지는 안식, 툰테르트, 브뤼셀, 누엔넨, 안트베르펜. 수많은 도시와 이름 없는 풍경을 밟았던 초행길. 별의 해안선을 걸었던 발자국. 기억조차 아득한 것이 되어버린 어둠. 고독하고 고뇌어린 삶의 무게에 눌려 헤매었던 긴 편력의 끝.
밑창이 다 닳아버린 낡고 낡은 구두에서 전해지는 외로운 삶의 무게와 고단함. 그와 함께 고흐의 지나간 시간들의 흔적들인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이 신발에 비교해 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어떤 좋은 신발을 신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신발을 신고 자신이 추구해보고 싶은, 또는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을 하러 다녔던 그 순간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흐의 '신발'은 우리시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박정은 pyk73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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