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밀정’ 김지운 감독① “시대를 전면적으로 바라보는 영화 만들려 했다”

기사 등록 2016-09-1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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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차분했다. 연일 ‘흥행’이란 단어를 붙여도 좋을 만큼 자신의 작품 ‘밀정’이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 김지운 감독은 일말의 우쭐함 없이 차분했다. 과연 ‘콜드 느와르’를 만든 사람이구나 싶었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 만난 김지운 감독은 국내 작품으로는 6년만에 복귀한 셈이다. 그동안 한국 촬영 현장은 표준근로계약서가 정착화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오랜만의 현장 복귀가 어땠는지부터 물었다.

“헐리웃에서 시스템이 돼있는 제작을 해봤기에 한국 현장의 변화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체질화가 돼있었죠. 결과적으로 편하거든요. 여가시간이 생기니까 다음 날 찍을 것을 생각할 수 있었고, 현장 편집본으로 복기도 할 수 있구요. 이런 식으로 계획을 짜보니 생산적인 여가시간이 됐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표준계약서대로 진행하는 것도 어려울 게 없었죠.”

그가 ‘라스트 스탠드’ 연출을 위해 헐리우드 제작시스템을 경험한 건 전적으로 ‘약’이 됐다. 김지운 감독은 그 현장에서 12시간 작업 환경의 리듬을 익혔고 그건 ‘밀정’의 촬영 현장에도 도움이 됐다. 워너브라더스와의 협업도 그런 점에서 도움이 됐다.

“먼저 헐리우드에서는 확실히 제시된 게 있어야 해요. 새로운 안을 제시할 때 우리는 ‘감’으로 전한다면 헐리우드에선 프리비주얼(스토리보드, CG 등으로 사전시각화한 것)이나 스피치라도 해야 하죠. 그런 점을 빼고 처음 느꼈던 건 시간의 압박입니다. 그전 한국 현장에선 14, 15시간 정도 찍었지만 헐리우드에선 12시간 정도 작업하죠. 하루 두 시간이 사라진 셈이라 대신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리듬이 생겼어요. 그게 장착되니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좋았습니다. 워너 사도 간섭이나 압력이 없이 저에게 맡겨줬구요.”

그의 이번 작품 ‘밀정’은 굳이 현장의 이야기를 듣지 않더라도 많은 부분이 변화하기도 했다. 메시지보다 이미지를 통해 정서적으로 강한 울림을 줬던 그의 전작들과 달리 그는 이번 작품에서 의도적으로 ‘쿨’한 정서를 유지했다. 일제강점기를 다른 작품들과도, 심지어 그의 전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과도 유사한 듯 다른 구석이 있었다.


“김산의 ‘아리랑’처럼 만주에서 항일 운동을 하던 호방함, 그 모습들에서 활극적인 느낌을 ‘놈놈놈’이 가져갔다면 투사들의 목숨을 다투는 숨 막히는 비장감은 ‘밀정’으로 옮겨왔죠. 이 시대의 공기를 콘셉트 자체가 다르게 가져왔던 거죠. ‘암살’은 그 중간이죠. 그 영화도 ‘아웃고잉’과 ‘엔터테이닝’하는 요소가 있으니까요. 저는 ‘밀정’을 그보다 더 안으로 들어가는, 조여지는 인간의 내면과 심리로 파고드는 영화로 만들려고 했기에 다른 차별점을 두려고 했었습니다 그런 영화들의 ‘룩(시각적인 이미지)’이 목재건물이 많았던 시절이라 따뜻한 브라운 톤이 많았고, 다른 룩으로 만들어보고자 차가운 톤으로 만들었던 것도 그 일환이죠. 아무래도 그 시대를 다루면 선과 악이 뚜렷해지는데 그 경계선의 ‘회색’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때그때마다 자신을 변화시켰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인 셈이죠. 그 시대의 모순을 ‘밀정’의 이정출이란 인물이 잘 보여줄 것 같아서 ‘회색인’을 주인공으로 삼았구요. 시대가 사람을 변질시키는 것이 있어요. 시대의 공기라는 것이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 어떻게 사람을 몰고 가는지, 그래서 크게 말하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 것인지를 그리고 싶었어요. 종래의 다른 영화와 다른 재미, 그리고 다른 흥밋거리를 다루고 싶었죠.”

그의 설명처럼 ‘밀정’은 다른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콜드 느와르’라는 장르명이 드러내듯 보다 차가운, 당시 뜨거웠어야만 했던 독립투사들의 차가워야만 했던 상황들로 채워졌다. 이 때문에 ‘밀정’은 흥행성적과는 별개로 호불호가 갈렸던 것도 사실이다.

“한번쯤은 과잉으로 가지 않는, 신파로 가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죠.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시대를 전면적으로 바라보는 영화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의 밸런스를 맞춰가는 작업들이 힘들었습니다. 그런 지점을 경계했기에 선악의 차이에서 오는, 처단의 통쾌함을 바라지 않았어요. 이렇게 만들면서도 성취와 성과가 있다면 그게 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다 복습하고 반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했습니다. 이걸 다른 시각으로 제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재미가 의미가 되고 의미가 재미가 되는 영화,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전혀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어떤 작품이 모두의 마음에 들 수는 없잖아요. 그 결과를 보면 ‘의의’의 가늠치를 결정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놈놈놈’ ‘악마를 보았다’ 등 장르적으로 극대화된 작품을 만들어봤기 때문일까, 김지운 감독은 관객들의 부정적인 반응도 이미 각오하고 있던 듯했다. 그건 아마도 ‘밀정’으로 과거 첩보영화들의 느낌을 이어받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감수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밀정’에서는 과거 영화들의 향수가 느껴지는 디졸브 기법과 현대적인 줌·모션블러 등이 혼용되곤 했다.


“이 영화는 클래식해요. 하지만 과거 옵티컬 디졸브가 아닌 CG 디졸브를 사용했어요. 이정출이 두 사람에게 교란을 피울 때나 차가 들어오는 장면 등 그런 식으로 고전적인 표현을 보여주는 방식에 현대적인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또 스파이 영화의 콘셉트에 맞춰 스릴러의 기본적인 문법을 사용했어요. 인물에게 미스터리한 서술 방식을 택한 거죠. 부분만 보여주면서 기대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등장들이 그런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는 연기에서도 특유의 연기지도법을 더욱 극대화했다. 인물의 표정, 호흡, 시선을 중심적으로 디렉팅하는 ‘스몰 액팅’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평소 그의 영화 속 연기지향성이기도 하지만 이번엔 ‘스파이 영화’인 만큼 더욱 강조했다고.

“‘밀정’의 메소드를 스몰 액팅으로 주문했습니다. 계속 숨기고, 꺼내는 것을 호도하거나 본심이 아닌 것일 수도 있죠. 혹은 본심이면 상대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거나요. 숨기려고 하는 연기를 드러나게 해야 하기에 스몰 액팅이 필요 했어요. 우리 안에 밀정이 있다는 전제 하에 누군가와 시선을 교류할 때, 시선을 부딪치고 피하거나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읽어야 하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고 저변에 팽팽한 긴장감을 두텁게 하는 방식이죠. 공유씨가 ‘공기 반 소리 반’이라고 했다던데 실제로도 결정적인 순간에 호흡을 일일이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배우가 힘들기도 했겠지만 나름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이에요. 호흡을 먹고 할 때, 빼고 할 때 등등 다 다르거든요. 연기는 어떤 면에서는 리액션이 70%라고도 하는데 이런 스몰 액팅에서는 호흡이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지운 감독의 '밀정' 인터뷰는 18일 2편에서 이어집니다.

 

성찬얼기자 ent@ 사진 조은정 기자 j_e_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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