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아수라' 정우성 "'아수라' 촬영, 시간을 거꾸로 돌린 작업"

기사 등록 2016-10-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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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배우 정우성과는 만날 때마다 어떤 기대감을 갖게 된다. 전작 ‘나를 잊지 말아요’로 만날 때는 제작자이자 영화계 선배로서의 자세가 돋보였고, 이후 만났을 때는 유쾌한 성격이 도드라졌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아수라(감독 김성수)’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는 배우 정우성만이 오롯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안 보고도 출연을 결정지은 건 김성수 감독님이니까, 였어요. 김성수 감독님 전작은 시나리오를 봤었지만, 그 영화에 대한 좋다 안 좋다 평가를 떠나서 감독님 색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장르 자체도 감독님의 장르가 아니었고요. 그래서 출연을 안하게 됐죠. 감독님이 오래간만에 하시니까 감독님스러운, 그런 색이 보일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랐습니다. 나중엔 ‘아수라’ 시나리오 보고 당황했어요. 주인공스럽지 않은 주인공이 있으니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암담했거든요.”

그렇게 말했지만 ‘아수라’에서 정우성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틈틈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연기는 물론이고 악인들 속에서 함몰돼가는 인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배우들과의 화합이 빛났던 것도 사실이다.

“캐스팅 됐을 때 기뻤어요. 고마웠고. 놀아볼 수 있겠구나 했어요. 배우들에 대한 선입견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분들이 저 정우성에 대한 선입견이 더 컸을 거예요. 서로 작업방식을 교류하지 않으면 정우성은 뭔가 많은 혜택을 받은 듯, 편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캐스팅은 한재덕 대표와의 관계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하지만 선택은 배우들 본인이 한거죠. 그리고 김성수 감독님에 대한 존중이 배우들에게 있기에 가능했어요. (황)정민 형도 감독님 작품 하고 싶다고 했고, (곽)도원이도 비슷한 연기가 나올까 고민하다가 감독님과의 무명일 때 인연이 있어서 선택하게 됐거든요.”

생각해보면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의 인연도 무척 특별하다. 시나리오도 안 보고 출연을 결정한 배우나 애초에 그 배우를 롤모델로 두고 시나리오를 집필한 감독,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는 ‘아수라’의 거침없는 힘과도 맞아 떨어졌다.

“전 김성수 감독님의 작업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얼마나 치열하게, 진지하게 현장을 대하시는데요.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의 컨디션을 확인하시죠. 리더로서, 감독으로서 최고이십니다. 그런 감독님의 작업방식이 선후배들에게 교감이 될 만한 스승이라고 확신해요. 제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나 자신감, 현장을 더 사랑할 수 있게끔 물꼬를 틔워주신 분이세요. 그래서 배우들이 감독님을 좋아하고 촬영 끝나는 걸 아쉬워하는 걸 보면서 안도를 했다니까요.”


그는 이번 ‘아수라’로 토론토영화제에 진출했다. 때문에 국내에서 시사회를 하기도 전에 두어 번 작품을 보았다는 정우성. 그에게 해외에 공개할 때와 국내에 공개할 때, 어느 쪽이 떨렸는지 물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서가 더 떨렸죠. 우리나라에서 보여주려고 만든 작품이잖아요. 당연히 우리집에서 인정받는 새끼가 되고 싶죠, 안 그래요?(웃음) 영화제는 축제이잖아요. 우리 영화라는 생각도 아니고. 그래서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 관객들은 ‘우리 영화’라는 시선이 있기 때문에 냉정할 수도, 따뜻할 수도, 반응이 어떨지 몰랐죠.”

극중에서 정우성은 한도경으로 여러 가지 연기를 펼쳐야 했다. 클로즈업부터 내레이션, 액션연기까지. 그는 그 중 내레이션만은 김성수 감독이 구체적으로 요구한 한 가지라고 밝혔다.

“누군가에게 얘기하는 자기회고 같은 느낌이죠. 시제도 애매모호하고. 삶에 찌들어서 앞에 있는 사람에게 힘없이 얘기했으면 좋겠다고 김성수 감독님께서 구체적으로 지시했어요. 촬영 이후 후반작업까지 끝나고 내레이션을 하려니까 정말 한도경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더라구요. 끝까지 끈질긴 작업이었죠. 내레이션 양이 많진 않지만 정말 도경이 할 수 있는 말을 골라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도 같이 더빙실에서 12시간씩 있으면서 내용도 수정하시고, 더빙실 들어가기 전에 핸드폰으로 녹음해서 편집본에 얹어보고 다시 수정하고 그랬죠.”

그가 한도경으로 돌아가기 싫었다는 건 그만큼 한도경이란 인물이 받는 스트레스를 촬영 내내 상기해야했기 때문이다. 정우성은 이 ‘주인공답지 않은 주인공’을 스스로 설득력 있게 해석해야 했고 그 결론은 바로 ‘스트레스’였다.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 걸까 고민했어요. 텍스트 뒤에 감춰진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야 했습니다. 40대의 나만의 가치관으로 이해할 수 없는, 50대의 감독님이 수용하려고 하는 것이 뭘까 싶었죠. 제가 내린 결론은 스트레스였어요. 감독님께 질문도 안하셨기에 확답을 바라지 않았어요. 찾아서 현장에서 보여줬을 때 감독님의 얘기를 듣고 수정하는 식이었죠. 제 스스로의 그걸 찾는 과정을 함께 작업한 셈이에요.”

사실 그 과정은 알게 모르게 배우 정우성에게 힘든 길이기도 했다. 그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김성수 감독에게 “형, 나 힘들어서 죽겠어요”라고 토로하기도 했다고. 그래서 아직도 ‘아수라’를 보고 즐길 수가 없다는 그. 아직 한도경의 잔향이 남아있기 때문이란다.


“앞으로도 이런 류의 작업을 할 거예요. 물론 좀만 쉬었다가요(웃음). 고된 작업이 되겠구나 싶다가도 현장에서의 그 짜릿함, 자극이 끌어당기는 것이 있거든요. 그리고 배우들이 좋아하니까요. 저는 보고 즐기면서 할 여력이 없었지만 다들 좋아하니까 잘 가고 있구나 했습니다. 도원이도 그렇고 (정)만식이도 그렇고 주지훈도 그렇고 정민이 형도 그렇고. 감독님이 찍어놓은 걸 가끔 배우들이 없을 때 보여주는데 배우들이 야 좋다, 좋구나 하더라구요. 같이 술도 많이 마셨어요. 그분들이 오시면 마셨죠. 한 씬 끝나면 마시면서 얘기하고, 서로의 작업방식을 공유하고 존중하하면서요. 힘들고 지쳐도 그런 교감이 있을 때 잘 가고 있구나 싶어서, 그게 보약이 되는 거죠.”

‘아수라’ 팀과 함께 ‘무한도전’에 출연한 정우성. 특유의 유쾌함을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 대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는 “즐기는 걸 좋아하는데, 예능에 맞다 안맞다는 평가하지 말아주세요”라며 웃을 뿐이었다. 잘생겼다는 그 많은 칭찬에도 그는 “대국민 세뇌교육입니다”라며 웃어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 생에는 익명성을 가지고 살고 싶어요. 그럼 부잣집 아들로(웃음). 뭐가 됐든지 다른 공부를 해보고 싶기도 해요. 요새도 관심사를 찾아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악기면 악기, 공예같은 것도 배우고 싶고요. 정신수양은 제가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어요(웃음). 캐릭터에서 깨어나려면 끊임없이 자각하고 자신에게 경고를 해야 해요. 어떤 방법이든지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하죠. 그러지 못하면 배우로서, 개인으로서의 인생이 힘들어집니다. 몰입이 일상의 매몰이 되기도 하니까요. 캐릭터와 자아, 작업 끝나면 자신에게 계속 얘기해서 깨워야 하고 자신의 감정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저는 잘하는 편인 거 같아요.”

이제 데뷔한지 20년도 넘은 그. 한결같은 외모 덕에 잊곤 하지만 정우성도 어느새 40대이다. 많은 작품 속 연기는 물론, 제작과 연출에 매니지먼트까지 도전 중인 그는 현재 자신의 삶이 얼마만큼 와있다고 생각할까.

“음, 해질 무렵 같아요. 빨리 어두워지는 것처럼 체력도 빨리 사라질 것 같아요. 이제는 일 욕심보다 이 일을 어떻게 즐길 줄 아는지 터득한 거 같아요.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거죠. 20대 때는 이 일을 하고 있다, 영화배우 잘해야지 처럼 정돈된 마음이 아니라 투박했고 30대 초반에는 어느 정도 알 것 같아 싶었다면 40대에는 관습적인 태도가 있었나 봐요. 그냥 하면 되는데, 그런 게 있어서 뭐하고 있니, 매일 하는 일이 똑같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다른 일인데, 다른 걸 표현하고 있고 다른 에너지를 쓰고 있는데 왜 그럴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과의 ‘아수라’ 작업을 했고, 한도경을 표현하는 게 고단했지만, 이 시점에서는 시간을 거꾸로 돌린 작업이었구나 싶습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성찬얼기자 remember_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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