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누가 잘했나]이별이 남긴 것들 -영화 속 실연 캐릭터 편-

기사 등록 2016-07-27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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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소준환기자]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다. 그리고 캐릭터들도 넘쳐난다.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인지도 모르는 그들을 하나의 주제에 놓고 선별해 볼 필요가 있었다. <편집자 주>

평소 연락 없던 친구에게 갑자기 술 한잔 사달라고 전화가 오면 99% 사귀는 사람과 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그 친구를 만나보면 상실감, 미안함, 분노, 미련, 자책 등 알파고와는 정반대인 수많은 감정의 결정체를 목격할 수 있다. 어쩌면 사랑에 ‘유일한 정답’은 없겠지만 ‘유일한 정리’는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소중하고 행복한 추억을 연인이란 이름으로 공유하고 있다. 그러다 어떤 이유로든 끝이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타인이 된다. 누군가는 이별의 아픔에 온갖 후회와 괴로움의 시간을 보낼테고 어떤 이는 후련함과 해방감으로 혹자는 짙은 그리움으로 열병을 앓을 터. 이처럼 사랑을 해보고 이별을 해봤다면 더욱 공감될 영화 속 '실연 캐릭터'를 선정해봤다.

1. ‘이터널 선샤인’ - 조엘(짐 캐리)



얼마만큼 이별에 아프면 사랑했던 기억까지 지우고 싶을까. 영화 속 조엘이 그렇다. 앞서 그는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클레멘타인은 각양각색으로 염색한 헤어스타일 만큼이나 고혹적인 여인. 당돌하고 솔직한 그의 매력에 조엘은 핑크빛으로 물든 연애를 시작한다(공교롭게도 필자 역시 이같은 성격의 여인을 좋아한다). 그러나 불꽃같은 사랑도 잠시 여느 연인들이 그렇듯 성격차이와 권태기 등의 이유로 두 사람은 이별을 맞는다. 또 여느 헤어진 사람들이 그렇듯 그리움과 미련 넘치는 순간을 보낸다. 이별의 고통 속 참다못한 조엘은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라쿠나사를 찾아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기억이 사라져 갈수록 조엘은 첫만남,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 행복한 기억들, 마음 속 각인된 추억들을 지우기 싫어하는 스스로를 느낀다.



헤어짐이 슬픈 게 아니라 헤어진 이후가 슬프다는 말이 있다. 이런 차원에서 젊은 청춘들에게 ‘이터널 선샤인’은 ‘시리지만 뜨거운’ 역설적인 작품으로 다가올 수 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사랑’과 이별’하면 떠올려지는 명작으로도 유명하다. ‘이터널 선샤인’에는 봄처럼 따듯한 사랑도 겨울처럼 혹독한 이별도 모두 담겨있기 때문. 특히 조엘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경험이 있는 남성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캐릭터다. 이별에 힘들어하는 건 대부분 행복했던 기억으로 인한 경우가 많으며 조엘 역시 그 애수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기에 그렇다. 실연에 빠진 독자라면 ‘이터널 선샤인’과 조엘의 감수성에 흠뻑 빠져 한층 더 높은 몰입감을 가질 수 있을 것.



그렇다면 이별은 그 기억 때문에 아픈 걸까. 아니면 영화처럼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그 고통이 사라질 수 있을까. 보다 더 정확한 건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에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별에 있어서는 덜 후회하는 쪽이 승자인 셈이다. 그러나 이별에 아파하는 쪽도 무조건 패자는 아니다. 그 이유는 그 아픔에서 배운 점을 통해 이전보다 도약할 수 있기에 그렇다.

2. ‘봄날은 간다’ - 상우(유지태)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이제는 거의 전설이 된 상우의 명대사다. 상우는 음향기사다. 그렇기에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인 은수(이영애)를 만나 실과 바늘처럼 금세 가까워진다. 하지만 급한 연애는 빠른 이별 역시 포함하고 있다. ‘이터널 선샤인’의 커플이 로맨틱한 사랑을 했다면 ‘봄날은 간다’의 두 사람은 보다 현실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예컨대 상우는 은수와 결혼을 하고 싶어 하고 은수는 이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렇게 겨울에 만난 두 사람의 관계는 봄을 지나면서 삐걱거린다. 제목처럼 결국 상우의 봄날은 간다. 영원할 것 같던 사랑이 변하자 상우는 깊은 시름에 잠긴다. 이같은 상황 속 그의 할머니(백성희)는 상우에게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건넨다. “여자와 버스는 한 번 떠나면 잡는 게 아니란다”. 이별을 맞은 사람들에게 심금을 울릴 만한 대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상우는 은수를 기다린다. 이미 지나간 버스에게 손을 흔드는 공허함처럼 상우는 떠난 이에게 쓸쓸히 손을 흔든다. 그의 뒷모습은 처연한 만큼 애절하다.



그러나 상우의 슬픔은 일종의 집착에서 비롯된 경향도 있다. 그는 마치 은수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했으나 상실되자 이를 되찾기 위한 몸부림 역시 보이고 있는 것.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각자를 인정하는 안에서 온전할 수 있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에. 또 서로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통감할 수 있을 때 ‘너와 나’를 넘어선 ‘우리’가 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상우와 은수는 이를 충족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별이 아픈 만큼 그 다음 사랑을 보다 성숙하게 할 수 있으리라. 이번 편에 선정되진 않았지만 또 다른 걸작인 ‘클로저’ 속 “사랑은 순간의 선택”이라는 대사처럼 연애의 경험과 체화에 비례해 이 다음 사랑의 깊이와 방법도 무르익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별은 누구에게나 아프다. 그러나,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강렬한 교훈을 남긴다. 이별의 이유가 배신과 변심이든 혹은 상황과 갈등의 심화이든 한 가지 확실한 건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에’ 헤어졌다는 것이다. 긍정할 수 있는 건, 진심으로 사랑을 해야 그 이별도 아플 수 있다. 다시 말해 조엘과 상우도 사랑하던 그 순간만큼은 온 마음을 다해 임했다. 헤어져도 아프지 않았다는 건 애초에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점이 모여 선이 되 듯 사랑의 경험이 모여 더 나은 사랑을 이끌 수 있다. 무더운 여름 ‘이터널 선샤인’과 ‘봄날을 간다’를 감상하며 수많은 회한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사랑과 이별을 응원한다.

(사진='이터널 선샤인'-'봄날은 간다' 스틸컷)

 

소준환기자 akasoz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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