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스케치]‘고산자, 대동여지도’, 김정호가 빚어낸 민중의 사랑

기사 등록 2016-08-30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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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양지연기자]아무에게나 지도가 허락되지 않던, 그야말로 지도가 곧 권력이자 목숨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일부만 독점하고 있던 나라의 진짜 모습을 백성들과 나누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전국을 누빈 김정호의 삶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가게 될까.

30일 오후 서울시 성동구에 위치한 왕십리 CGV에서는 ‘고산자, 대동여지도(이하 고산자)’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이날 시사회에는 강우석 감독을 비롯해 배우 차승원, 유준상, 김인권, 신동미가 참석해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사극에 처음 도전한 강우석 감독은 “원작을 처음 읽고 과연 제가 김정호 선생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렇지만 자꾸 생각나고 안 하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아 시작했다”며 “그런데 시작을 하자마자 후회를 했다. 죽을 것 같았다”고 말해 촬영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짐작케 했다. 이어 그는 “그래도 훌륭한 배우들과 호흡을 잘 맞춘 것 같고 무사히 끝내서 관객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겸허한 자세를 내비치기도 했다.

극중 김정호로 분해 지도에 대한 무한한 열정과 애정을 보였던 차승원은 “과연 김정호 선생이 이런 지도를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만드셨을까 생각을 많이 해봤다.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느낀다”며 “그 엄청난 무게를 어깨에 지고 연기를 했는데 ‘만 분의 일이라도 쫓아갔을까’하는 생각에 겸허해지고 겸손해진다. 애정 어린 눈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김정호와 오묘한 관계를 유지한 흥선대원군 역의 유준상은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감독님의 스무 번째 영화를 함께해서 행복했고, 이 같은 연륜에도 저희들과 새롭고 설레는 마음으로 따뜻한 얘기를 나누고 열정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좋은 작업을 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차승원과 환상의 호흡을 펼치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깊은 슬픔까지 안길 여주댁 역의 신동미는 “영화를 처음 봐서 아직도 감동이 가시질 않는다. 이렇게 대단한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게 돼서 영광이다”고 말하며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벅찬 마음을 추스르던 그는 “제가 너무 대단한 영화를 찍은 것 같아서 너무 영광이다. 대단한 감독님, 여러 배우들과 편안하게 영화를 찍었다”고 소감을 마무리했다.

극중 김정호의 든든한 동료, 바우로 분한 김인권은 “현장에서 ‘이 느낌이 뭐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촬영했다. 영화를 보면서 당시 ‘뭐지?’했던 느낌이 이렇게 나왔구나하는 생각에 속으로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강우석 감독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각박하게 살고 팍팍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힘이 돼주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며 “원작을 읽었을 때 제가 볼 땐 목판 새기는 데만 해도 몇 십 년이 걸렸을 것 같은데 이분은 도대체 무엇을 얻으려고 이런 목판을 만들었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모두 끝난 후 실제 대동여지도의 목판본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그 부분에 대해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 원작에도, 시나리오에도 없는 원판이 너무 보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원판에서 저런 지도가 나왔을까하는 생각에 문화재청에 연락했다”며 “거기서도 오랜 시간 회의해서 받아들여졌다. 직접 중앙박물관 들어가서 촬영했는데 원판을 직접 본 순간 저와 촬영감독 등 모두가 기절할 뻔했다. 보면서 훨씬 더 울컥했고 아무도 말을 안 하고 엄숙하게 촬영했던 것 같다”고 말해 당시 강 감독이 느꼈을 감격스러운 감정을 짐작케 했다.


특히 강 감독은 김정호의 여러 가지 모습 중 그가 목판으로 대량의 지도를 찍어내서 백성들에게 나눠주려고 했다는 것에 집중했다. 감독은 “그 때문에 당시 권력자들과의 충돌은 물론이고 지도 제작을 후원해주는 사람의 목적도 김정호와는 달랐을 것”이라며 “자칫하면 너무 정치색이 강한 영화가 나올까 두려웠다. 그래서 그 부분은 인간적인 묘사나 그 당시 인물들끼리 부딪히면서 나오는 코미디를 통해 풀어냈다”고 의도를 설명했다.

강 감독의 말대로 영화에는 간간히 웃음코드가 등장한다. 사극을 보고 있음에도 배우들의 최근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대사도 있다. 차승원은 이에 대해 “감독님이 애드리브를 굉장히 싫어하신다. ‘삼시세끼 제가 다 해줄 수 있는데’라는 대사도 애드리브가 아니었다”고 해당 장면이 감독의 의도 하에 진행된 것임을 밝혔다.

또 다른 웃음 포인트였던 김정호와 바우의 ‘네비게이션’을 연상케 하는 대화에 대해서는 김인권이 “대본을 받았을 때 그 장면을 보고 당황했다”고 당시 인상을 전했다. 그는 이어 “제가 이 영화에서 담당해야 되는 게 이런 부분이구나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사극에서 네비게이션 개그가 관객들에게 통할까 걱정도 있었고 감독님을 뵐 때마다 정말 못 웃기면 죽이실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막상 촬영해보니 아니었다. 근데 그냥 대본대로 하면 해학이 나타나는구나 하는 것을 영화를 보고 깨달았다”고 하며 감독의 노련한 연출력에 감탄을 내비쳤다.


차승원은 김정호라는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해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것 같다”며 부담감을 토로했다. 그는 “많은 분들이 생각하는 그 분의 위대함을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 하더라도 쫓아갈 수 없다. 그런 부담감에서 출발했고, 사실은 지금도 처음 시작할 때와 거의 비슷한 부담감이 있다”며 “다만 영화를 찍으면서 김정호 선생의 집념보다는 그분의 인간적인 면을 많이 생각하면서 찍으려고 노력했다. ‘고산자’는 제 배우 인생에 중요한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해 본인이 영화에 대해 가진 애정을 느끼게 했다.

그런가하면 김인권은 가장 어렵고 부담감이 컸던 부분을 “광화문에서 대동여지도를 펼치는 장면”으로 꼽았다. 그는 “감독님이나 차승원 선배님이 리딩 할 때부터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다. 네가 잘못하면 이 영화 잘 안 된다’고 하셨다. 정말 죽일 것 같은 느낌에 부담이 됐다”며 “촬영 전날에도 잠을 자지 못했고 세팅할 때부터 나가서 바우의 감정에 최대한 몰입하려고 노력했다. 전날 세팅할 때 광화문 앞 날씨가 안 좋았다. 바람 불고 추워 지도를 깔아도 계속 날아갈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고 힘들었을 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놨다.

그러나 촬영 당일, 어제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하늘이 맑게 개어 있었다고. 그는 “영화 속 백두산이 CG로 보이는 것처럼 광화문 하늘도 CG처럼 너무 맑고 따뜻했다”며 “그때 이게 잘 맞아 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에 돌입해 지도를 볼 때 밀려오는 감동은 연기하면서 처음이었다. 제가 견딜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고 벅찬 감정을 전달했다.

무엇보다 ‘고산자’는 김정호가 발자취를 남겼던 우리나라 여러 곳을 넓은 시선으로 담아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풍경이 CG가 아니라 실제 장면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감독은 이에 대해 “자연경관 펼쳐지는 부분에는 CG가 없다. 어느 산을 찍는데 철탑이나 전기선 지우는 것도 CG라 하면 CG이겠지만 다 발품 팔아 찍었던 것이다. 계절변화도 물론 기다려서 촬영했다”고 말해 감탄을 자아냈다. 이어 감독은 “영화의 영상에 대해서 비난이 나오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촬영 끝날 때까지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주인공이 우리나라의 면면을 사랑했던 김정호인 만큼 영화를 보는 관객도 따라서 애정 어린 시선으로 우리나라를 바라보게 된다. 백두산은 물론이고 분홍빛 꽃이 산들거렸던 황매산, 눈부신 일몰로 처연함까지 자아낸 여수 여자만 등 실제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곳곳의 풍경에 감독 역시 특별한 감상을 드러냈다.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까지 아름다운지 몰랐다. 찍고 찾아다니며 이런 곳이 있었구나 싶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마라도부터 백두산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강산을 못 담고 결국 돌로 표시했던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백두산을 찍어 위로가 됐다”며 아름다운 영상을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싶었던 욕심을 드러냈다. 이어 영화 초반 대부분의 여정이 드러난 것에 대해 “영화 중반 김정호의 족적을 따라가면 독도라는 중요한 장소가 또 나오기 때문에 초반에 여정을 보여주자고 생각해서 풍광을 한꺼번에 몰아버렸다”고 의도를 설명하기도 했다.

‘고산자’는 영화 내내 김정호라는 한 사람의 인생과 그의 신념을 따른다. 그의 시선을 공유하다보면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곳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끊임없이 상기하게 된다. 이 영화는 우리와 같은 땅에서 삶을 살았던 김정호라는 사람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국가가 아닌 민중을 위해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김정호의 신념을 전달한다. 이 같은 시대를 초월한 시선과 감정의 공유가 관객들의 진심에 다가가 깊은 울림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 오는 9월 7일 개봉.

(사진=이슈데일리 DB)

 

양지연기자 jy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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