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누가 잘했나]‘세상 느긋한’ 영화 캐릭터들..김우빈부터 잭 블랙까지

기사 등록 2016-12-28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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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올 한해 우리 국민들은 유독 치열했고, 더 치열했다. 밤잠 설쳐가며 일하랴 공부하랴 생계 걱정하기도 바쁜데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까지 얹히다니. 연말의 어수선한 틈을 타 막간이라도 근심 좀 떨쳐보면 어떠랴. 이번 주 캐릭터 랭킹에서는 ‘세상 편안하게 사는’ 정신승리 급의 느긋한 영화 속 캐릭터들을 만나보려 한다.




# ‘스물’(2015, 감독 이병헌) - 김우빈

‘놈놈놈’(감독 김지운)의 극사실주의 청년판이라고 해야 할까. ‘스물’에는 ‘세 놈들’이 있다. 인기만 많은 놈 ‘치호’(김우빈), 생활력만 강한 놈 ‘동우’(준호), 공부만 잘하는 놈 ‘경재’(강하늘). 이제 갓 스무 살 성인이 됐지만 막연한 꿈만 좇을 뿐, 이들에게는 당장에 뚜렷한 미래가 없는 상황이다. 이 가운데 치호는 세 청년 중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잉여의 삶을 지향하는 백수로, 술과 여자, 멍 때리는 시간을 최고로 여기는 한심함의 결정체다. 버젓이 여자 친구를 두고도 바람을 피우는가 하면, 넉살 좋게 누워서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는 인간말종 유형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막상 욕바가지를 퍼 부울 수 없는 게, 틈만 나면 시전하는 유머감각과 말발, 의리는 또 기가 막히게 좋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감독의 꿈을 갖게 된 그가 ‘꼬추 행성의 침공’ 시나리오를 흡입력 있게 읊조리는 모습은 엉뚱함과 천진난만함을 능가해 경이로움마저 자아낸다.




# ‘주토피아’(2016, 감독 바이론 하워드·리치 무어) - 나무늘보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남긴 캐릭터는 귀여운 주인공 토끼 주디 홉스도, 무심한 듯 다정한 닉 와일드도 아닌 나무늘보 플래시였다. 동물들의 유토피아 ‘주토피아’ 도시에서 발생한 연쇄 실종사건에 토끼 경찰관 주디는 48시간 안에 사건 해결을 명받고 사기꾼 여우 닉과 초 단위를 다투는 협동 수사를 펼친다. 하지만 수사 중 가장 큰 복병에 맞닥뜨리니, 그는 동사무소 직원 플래시였다. 한시가 급해 죽겠는데 이름부터 아이러니한 이 나무늘보는 입 여는 것부터 도장 찍는 것, 타자치는 것, 심지어 웃는 반응도 세월아 네월아다. 할 일 다 제쳐놓고 닉의 유머를 옆 자리 직원에게도 전하는 친절한 나무늘보 씨의 복장 터지는 모습은 현실 속 안일하고 나태한 공무원을 풍자해 더욱 눈길을 끈다. 대조적 느림의 미학으로 카타르시스를 안겼던 ‘엑스맨’의 퀵실버와는 또 전혀 다른 매력이다.




# ‘터널’(2016, 감독 김성훈) - 탱이

최악의 상황에서 돌발행동으로 주인공에게는 분노를, 관객들에게는 웃음을 선사한 캐릭터가 있다. 집으로 가는 길, 터널이 무너져 그 안에 홀로 갇히는 상황을 그린 재난드라마 ‘터널’에서 정수(하정우)는 생존 문제를 돌파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차까지 뚫고 들어온 콘크리트 잔해에 비좁은 공간 속 사투를 벌이는 정수에게 가진 거라곤 78% 남은 배터리의 휴대폰과 생수 두 병, 그리고 딸의 생일 케이크가 전부다. 구조대의 더딘 작업에 오로지 아내 세현(배두나)이 전한 희망만을 안고 최소한의 식량 섭취로 시간들을 버텨 나간다. 그런 와중 근처 차량에서 넘어온 퍼그 한 마리가 애잔하게 정수를 쳐다보며 그를 외로움에서 구출한다. 귀여운 친구를 얻은 기쁨도 잠시, 정수가 자는 사이 강아지 탱이는 남겨진 케이크를 모조리, 야무지게도 먹어치운다. 뒤늦게 이를 발견하고서 터널이 떠나가라 욕을 내뱉는 정수의 비극은 최고 폭소를 유발한다. 이에 총총 발걸음을 옮기고서 고개를 갸우뚱 하는 탱이의 모습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이후 개밥까지 나눠먹는 전무후무한 우정으로 정수와 탱이는 종족을 뛰어넘는 브로맨스를 과시한다.




# ‘걷기왕’(2016, 감독 백승화) - 심은경

‘걷기왕’ 주인공 만복(심은경)은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를 대중교통 하나 없이 오로지 걸어만 다니는, 요즘에 보기 드문 여고생이다. 4살부터 찾아온 선천적 멀미증후군으로 세상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경악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걷기에 열중하는 씩씩한 만복은 세상 걱정 근심 하나 없이 소순이(안재홍) 여물 주고 평화로운 농촌가정에서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서 재능을 발견한 담임 선생님은 경보선수가 되기를 추천하며 만복의 삶을 순식간에 바꿔놓는다. 하지만 천하태평 그에게 무조건 ‘꿈과 희망만 있으면 된다’는 말과 함께 ‘빨리와 열심히’, ‘열정’을 강요하자 만복은 해맑던 웃음도 잃고 이내 지쳐버리고 만다. 그리곤 택한다. 경보로 ‘빠르게 걷기왕’이 아닌, 한 번 쯤 누워도 보는 ‘느리게 걷기왕’이 되기로.




# ‘터네이셔스 D’(2006, 감독 리암 린치) - 잭 블랙

이유 있는 열정과 자신감으로 정신적 느긋함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터네이셔스 D’의 JB(잭 블랙)다. 어릴 적부터 끓어오르는 록 본능을 실현시키고자 부푼 꿈을 안고 무작정 할리우드로 가출을 감행한 JB의 의지부터 그의 ‘직진 본능’을 보여준다. 우연히 KG(카일 가스)를 만나 록 듀오를 결성한 후 두 사람은 음악과 풍류에 취해 산다. 그러면서 최고 목표로 멋진 록스타가 돼 많은 여자를 만나길 희망하는 JB는 철없는 인간으로까지 비춰진다. 오픈마이크에 나가려 준비하던 중 한 악기점 남자 직원(벤 스틸러)으로부터 사탄의 이빨로 만들어진 전설의 피크 ‘POD’(Pick of Destiny)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그것을 찾으러 나선 두 사람. 이후 마주친 사탄과 무아지경 록음악 대결을 벌이고, 결국 사탄의 뿔을 획득하게 된다. 최고 아이템을 손에 쥔 후에도 JB는 마지막에 방귀로 마스터피스를 연주하는 능청스러움을 보인다. 이 골 때리는 캐릭터를 선보인 잭 블랙과 카일 가스는 이미 2001년부터 실제 듀오 터네이셔스 D를 결성해 현재까지 진득한 열정으로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스물’, ‘주토피아’, ‘터널’, ‘걷기왕’, ‘터네이셔스 D’ 포스터 및 스틸)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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