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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모탐구]실뱅 쇼메, 무성영화를 사랑한 감독

기사 등록 2016-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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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성찬얼기자] 모두에게 과거의 것은 추억이란 이름으로 아름답게 남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을 다시 재현하거나 구현하는 것은 단순히 그 추억을 사랑하는 것과는 또 별개의 어려움이다. 하지만 실뱅 쇼메 감독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스스로 품은 애정을 작품으로 표현해왔다. 그의 작품들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그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은 '벨빌의 세 쌍둥이(2003)'. 국내에는 제작된지 13년이나 지난 올해 2016년에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작품은 그가 품고 있는 '무성영화'에 대한 애틋한 감성이 그대로 묻어있다.

사실 이 애니메이션 속 작화는 무척 감성적이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준다. 동글동글하게 디자인된 할머니 마담 수자는 척 보기에도 귀엽다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정감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의 손자 챔피온은 잘록한 허리, 굵은 허벅지 등 자전거 선수의 체형을 극대화한 모습으로 다소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은 대개 그렇게 일종의 도형을 연상시킬 정도로 극단적으로 표현돼있다. 조직의 검은 양복들은 아예 직각의 어깨를 가지고 있고, 벨빌의 세 쌍둥이는 커다란 코, 깊게 파인 주름, 삐쩍 마른 손가락 등 마담 수자와는 딱 정반대의 이미지로 노인을 형상화한다. 지나가는 인물들도 확연히 눈에 띄는 특색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스크린에서 움직이기 시작할 때면, 그 기괴하다는 느낌은 온화한 무성영화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오프닝부터 음악과 코미디가 주가 된 흑백영상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75분의 상영시간동안 그렇게 많지도 않은 대사만으로도 상황과 감정을 전달하며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그리고 거기엔 인물의 과장된 움직임, 영상과 맞아떨어지는 음악, 그리고 스쳐지나가듯 나오는 자크 타티의 영화를 비롯해 곳곳에서 사용되는 소품들까지 실뱅 쇼메 감독이 사랑했던 무성 영화에 대한 위트와 애정이 감춰져있다.

그의 열정 혹은 애정은 다음 작품인 '일루셔니스트(2010)'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국내에서도 많은 관객들의 호평을 들었던 '일루셔니스트'는 프랑스의 배우 자크 타티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다. 자크 타티는 윌로씨라는 걸출한 영화 캐릭터를 남긴 감독 겸 배우로 '프랑스의 찰리 채플린'이란 호칭을 들은 인물이다. 이 자크 타티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하게 된 실뱅 쇼메 감독은 그 편지 속 이야기를 각색했다. 그리고 자크 타티의 영화가 가진 감성뿐만 아니라 생전의 움직임을 그대로 모사해 영화 팬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일루셔니스트'가 많은 이들에게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았던 건 자크 타티에 대한 헌정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느껴봤을 양가적인 감정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말해 눈속임일 뿐인 마술사가 자신을 마법사로 착각한 소녀와 지내게 되는 이야기는 살면서 누구나 품어봤을 환상과 그것이 고개를 들었을 때 면면이 드러나는 삶의 비루함을 모두 짚어내면서 씁쓸한 현실 감각을 깨우기도 한다.

이런 감정들은 실뱅 쇼메 감독이 빚어낸 따듯한 파스텔 톤의 화면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럼에도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는 자크 타티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 속에서 그것을 타개해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던 무성영화 시절 작품들을 관통하는 정서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이후 실사 영화 연출에 도전한다. 그의 최신 장편 영화는 (벌써 3년이나 지났지만)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2013)'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실사영화에도 탁월한 감각이 있음을 입증했다.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실어증에 걸린 피아니스트 폴이 마담 프루스트를 만나게 되면서 변화하게 되는 내용을 풀어낸 이 영화는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프랑스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전작들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음악센스를 끌어올렸다. 실뱅 쇼메 감독은 이 작품에서 각본, 연출, 그리고 음악까지 맡아 시나리오와 음악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지점으로 이야기를 풍부하게 채워나갔다. "추억은 음악을 좋아하니까"라는 대사처럼 음악이 자극하는 인간 내면의 심리를 은유적이면서 깊이 있는 이야기로 완성시키기 위해 그는 당연히 음악을 사용했다. 많은 이들이 영화가 끝난 후 (이 영화의 원제인) 'Attila Marcel'를 곱씹는 것도 영화와 음악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 실뱅 쇼메 감독의 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음악을 부각시키고 상대적으로 대사량이 적은 작품이라서 그의 애니메이션만큼은 아니지만 실뱅 쇼메 감독이 선호하는 '무성영화' 스타일에 가까운 편이다. 거기에 그가 선사하는 동화적인 미장센은 그의 애니메이션과는 미묘하게 다른 감성으로 작품을 풀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실뱅 쇼메 감독은 실로 장인과 같은 사람이다. 자신의 존경심을 응집시킨 작품들을 완성하기 위해 그는 오랜 시간을 들였고, 그에 걸맞는 호평을 얻어내고 있다. 그런 그가 차기작인 '1천마일'에서는 "말많은 이탈리아인이 나온다"라고 예고할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임을 밝혔다. '무성영화'의 느낌을 떠날 그, 실망스럽다기보다 오히려 그 변화가 또 하나의 걸작을 완성시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어 행복하다.

성찬얼기자 remember_s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