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가려진 시간’ 엄태화 감독 “박찬욱 감독에 ‘새로움 갈망’ 배웠다”

기사 등록 2016-11-17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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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배우 강동원이 함께한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단편 ‘숲’(2012), ‘잉투기’(2013) 등 이후 첫 상업영화 진출이 이 사실 하나만으로 성공적이라 일컬어진다. 더군다나 한국에서 좀처럼 시도하지 않는 판타지 장르를 독창적인 스타일로 완성도 있게 그려내 작품에 대한 호평도 꽤나 따르고 있다. 엄태화 감독과 그가 지난 16일 내놓은 ‘가려진 시간’ 이야기다.

‘가려진 시간’은 화노도에서 일어난 의문의 실종사건 후 단 며칠 만에 어른이 돼 나타난 남자 성민(강동원)과 유일하게 그를 믿어준 단 한 소녀 수린(신은수)의 세상은 몰랐던 둘만의 특별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이야기는 엄 감독의 디테일하고 감성적인 연출법이 과감하게 얹혀져 ‘믿음’에 관한 주제를 설득력 있게 던진다.

그렇게 충무로가 주목하는 라이징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엄태화 감독과 이슈데일리의 인터뷰가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됐다.




- ‘잉투기’ 이후로 두 번째 장편 영화 도전이다

“기술시사회, 언론시사회, VIP시사회 모두 세 번에 걸쳐 완성본을 봤어요. 엔딩의 정서에 가장 많이 힘이 실어진 것 같아요. VIP시사회 때 선배님들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며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사는 게 되게 빡빡한데 힘이 된다고들 해주셨어요. 저를 새로운 시도로 평가해 주시는 게 기분이 좋아요. 극장에 개봉시키는 영화를 만들어보려다 보니 장편이 됐어요. 제 전작들이 거의 저예산이었는데, 그 때보다 안정적인 시스템 안에서 촬영하다보니 편한 게 있더라고요. 온전히 배우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편했죠. 예산이 많이 들어가다 보니 부담은 아직 있기도 해요.”

- 비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믿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데...

“처음부터 굳이 그런 메시지를 던지자는 의도는 없었어요. ‘내가 재미있을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고, 소재를 멈춰진 시공간에서 잡아온 거죠. 이야기를 찾을 때 주로 이미지에서 찾는 편인데, 이번 영화도 그렇게 진행됐어요. 큰 파도 앞에 서있는 남녀의 그림을 봤고, 멈춰진 시공간을 떠올렸어요. 이후에 무슨 이야기를 담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지금 살고 있는 세상, 환경이 뭔가를 믿기는 힘든 세상인 것 같아요. ‘가려진 시간’에는 불신이 더 익숙한 제 피로감이 담긴 것 같기도 해요. 혹은 희망사항 같은 것이 무의식을 통해 나왔을 수도 있고요.”

- ‘믿음’이 가지는 양면성은 현 시국에 비교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보는 분들의 몫인 것 같아요. 제 손을 떠났으니 그런 걸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부분인 것 같고요. 영화를 만드는 목적에 소통이 있기도 하니까요. 사실 영화를 본 분들이 제가 몰랐던 부분까지 말씀하시는 걸 보고 제 내부의식을 알게 됐어요.”

- 궁극적으로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인데, 판타지 장르로서 화두를 던진 것이 흥미로웠다

“새롭다는 기준이 모호한 것 같아요. 지금은 한국 영화시장에서 판타지가 많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하지만 할리우드만 해도 판타지가 널려있으니 장르는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남들이 안 한 얘기를 하고 싶었죠. 저는 사회가 변한다는 의견에 대해 회의적인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작품들로 나타나는 것 같고요. 그래도 너무 염세적으로 보기보다는 그 와중에 희망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 정신은 어린 소년이지만, 몸은 갑작스레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측면에서 ‘늑대소년’(2012, 감독 조성희)과 비교할 수 있겠다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늑대소년’이 생각나기는 했어요. 아무래도 같은 판타지드라마를 풀어내다보니 그런 얘기는 당연히 나올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제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중심을 잘 잡으면 클리셰는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 ‘가려진 시간’이 ‘멈춰진 시간’으로 표현된 시각 효과가 인상적이다. 디테일한 작업이 이뤄졌을 것 같다

“멈춘 세계를 다룬 작품들이 많잖아요. 대부분이 스펙타클한 장면들로 구현을 하는데, 여건상 그러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우리 영화에 어울리지 않겠다 싶었어요. 좀 더 정서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려 했죠. 그러면서도 재미가 있으려면 작은 아이디어들이 모아져야 할 것 같았어요. 물이 시간이 멈추면 어떻게 될까 부터 뛰어오르는 고양이, 달리는 오토바이, 휘날리는 낙엽 등을 통해 주로 표현하려 했어요. 실제 찍을 때도 사람들이 멈춰있었고, 이후에 보정으로 또 작업했죠. 일일이 한 사람씩 움직임을 잡아서 작업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돌맹이 굴러가는 것, 눈 깜빡이는 것까지 다 잡아야 했죠. 일반 시사회 끝나고서도 옥의 티를 발견했을 정도니까요. 작은 거 하나에도 신경 썼어요. 고생 많이 했죠.”

- 어린 소녀와 나이차 많이 나는 청년의 만남이 자칫 순수하지 않게 왜곡돼 비춰질 수 있었지만, 강동원이 주연을 소화했기 때문에 설득력 있었다는 반응들이다

“강동원 씨가 캐스팅되면서 그런 점이 많이 해결된 것 같아요. 어린 소녀와 남자가 함께 있지만, 아이가 둘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거든요. 강동원 씨가 지닌 소년성이 충분히 그 역할을 해줬다고 생각해요. 동원 씨와 연기 톤에 대해서도 많이 얘기했죠. 어떤 때는 둘 다 아이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묘하게 어른스러워보이도록 했어요. 위화감 들지 않게. 순정만화 같은 이야기인데, 거기 가장 어울리는 배우가 누구일까 생각해보니 바로 강동원 씨가 떠오르더라고요.”

- 강동원과 동갑내기라 촬영도 편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촬영지 근처에 함께 맛집을 찾으러 다닌 일화도 유명하다

“아무래도 동원 씨가 저와 시대가 비슷하다보니 예전부터 봐온 영화, 만화, 게임 그런 얘기를 많이 했죠. 둘 다 뭔가 남에게 강요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에요. 그런 성향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되게 편하게 잘 작업했어요. 그렇지만 어떤 면에서는 저보다 경험이 많은 선배이기도하니까 현장에서의 어려움이 있으면 동원 씨가 형처럼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어요.”

- 강동원의 파트너로 처음 연기에 도전하는 신은수의 연기력이 굉장히 안정적 이었다

“사실 ‘가려진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가는 인물이 수린이에요. 아역배우들을 쭉 만나봤는데, 의외로 수린 나이 대에 딱 맞는 배우들이 잘 없더라고요. 요즘에는 어린 친구들 중에 끼 있는 친구들이 배우보다는 가수로 데뷔하려는 경향이 커요. 대형 3사로 불리는 SM, YG, JYP 엔터테인먼트를 통해서 프로필을 받았고, 그 중에 은수를 만났는데 일단 얼굴이 되게 좋았어요. 사연이 있는 듯한 얼굴이었죠. 수린이의 외로움을 느낄 수 있겠더라고요. 어떤 상황에도 주눅 들지 않는 면이 현장에서 필요한 덕목인데 그런 것도 갖췄고요. 억지로 꾸미려 하지 않는 친구였어요. 연기 경력은 없었지만, 연기를 해도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한 달 정도의 트레이닝 과정에서 확신이 들었고요. 실제로는 되게 아이 같고 딱 그 나이 대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아이돌 얘기도 많이 했어요. 중학교 1학년 여자 아이와 무슨 얘기를 할까 싶었는데 친구처럼 다가갔죠.”




- 전작들에 지속적으로 출연한 동생 엄태구가 이번 영화에도 등장 하더라

“태식이라는 아이가 성민과 함께 큰일을 겪고 중간 과정 없이 바로 어른이 되는데, 이 친구가 어떻게 변했을까를 생각해보니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으로 있다가 한 순간에 불안해지고 유약해진 아이가 될 것 같더라고요. 엄태구라면 ‘잉투기’때도 그랬듯이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실제 엄태구는 조용해요. 되게 세 보이잖아요. 근데 사실 여리고 부드러운 면이 있어요.”

- 감독 형과 배우 동생의 다작 공동 참여로 ‘제2의 류승완-류승범 형제’라 불리기도 하는데?

“류승완 감독님은 실제로 원래 알고 있었어요. 이미 ‘잉투기’ 때 GV를 진행해주셨거든요. 저희를 보고 ‘옛날 생각난다’며 예뻐해 주셨는데, 저희로서는 되게 감사하죠. 그 분들의 후광효과를 받는 걸 테니까요. 엄태구는 제 영화중에 역할에 맞는 게 있으면 계속 함께 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무명 생활을 하다가 ‘밀정’으로 많이 주목받게 됐는데, 배우라는 직업이 되게 힘든 걸 알기 때문에 저도 참 기뻤죠.”

- 감독으로 데뷔와 동시에 과거 ‘친절한 금자씨’ 등 박찬욱 감독 사단으로 주목받지 않았나?

“박찬욱 감독님과 일하면서 제가 영향 받은 부분 중 하나가 뭐든지 새로움을 추구하는 거였어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새로워야 한다는 것. 저도 그렇게 하려 노력 중이고요. 감독님은 작품을 만들 때 스토리 보드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스토리보드 그대로 촬영해도 수많은 변수를 만나게 되잖아요. 사전 작업을 치밀하게 준비하시죠.”

- 홍익대학교 광고디자인과를 전공한 후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몸담게 된 계기가 있을까?

“사실 광고 디자인이 적성에는 안 맞았어요. 우연한 계기로 영화 미술팀 알바를 하게 됐고, 원래 만화 그려주고 누군가한테 얘기 듣는 걸 좋아했거든요. 미술팀을 하면서 좋아하던 게 구체화된 것 같아요. 제가 복학하고서 저희 학교에 영상 영화과가 생겨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어요. 영화 만드는 게 취미라면 취미였는데 이렇게 일하게 되니 행복하죠.”

- 엄태화 감독이 선보이는 필모그래피는 참 신선하다

“일기 쓰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작품에 담기는 제 무의식, 제가 이제껏 봤던 것들, 느꼈던 것들이 어떤 식으로든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그 때는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그 감정들을 일기를 통해 쭉 써 나아가는 것 같아요. ‘가려진 시간’도 10년 후에 보면 제가 느꼈던 것들, 주위의 것들을 다시 그대로 느낄 수 있겠죠.”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일기를 미리 쓸 수 없듯이,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제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일화를 말씀 드리자면, 스즈키 세이준 감독이 2006년에 ‘오페레타 너구리 저택’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온 적이 있거든요. 산소 호흡기를 끼고 오셨는데 그 모습이 되게 인상 깊었어요. 건강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한국까지 와서 무대에 오르는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 무대인사에서 한 관객이 ‘감독님만의 작품을 만드는 노하우가 뭐냐’고 질문했는데, 스즈키 세이준 감독은 ‘미래의 라이벌에게 내 노하우를 알려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분의 태도처럼 저도 중심을 잘 잡고 가고 싶어요.”

 

한해선기자 churabbit@ 사진 박은비 기자 smart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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