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밀정’ 공유 “김지운-송강호와의 작업, 돈 받고 과외 받은 기분”

기사 등록 2016-09-2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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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영화 ‘부산행’으로 관객 수 천만 돌파 기쁨의 여운을 모조리 만끽하기도 전에 ‘밀정’(감독 김지운)으로 또 한 번 잭팟을 터뜨렸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19일까지 600만 명의 누적 관객 수를 넘어섰다. 지난 7일 개봉 후 2주가 채 지나기도 전에 도달한 수치다. 이 정도의 흥행 성적표를 받아든 적이 없던 공유는 얼떨떨해 하면서도 연신 분발하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공유는 올해 가장 행복한 시기를 누리고 있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공유와의 만남을 가졌다.

“‘밀정’은 처음부터 제 취향을 저격하는 영화였어요. 그간 나왔던 비슷한 시대의 영화와는 달리 강요받지 않는 느낌이었죠.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기도 했고요. 한국의 정서를 기반으로 한 소재의 영화는 강요당하는 느낌, 흑백으로 나뉜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밀정’은 영화적으로 잘 풀어내며 의미가 관객들에게 잘 전달된 것 같아요. 김지운 감독님이 시원하게 보여준 것 같았어요.”

공유를 비롯해 송강호,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 등 묵직한 존재감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밀정’은 1920년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 막히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렸다. 공유의 말처럼 영화는 시대가 낳을 수밖에 없던 회색분자의 고뇌를 표현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그런 한국인의 정서 한(恨)이 통했는지 ‘밀정’은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이어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는 영광을 안았다.

“해외에서 좋은 평을 받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막상 베니스 호평기사를 외신으로 접하니 전율이 들더라고요. ‘부산행’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인 거 있죠. 기존의 브랜드 파워가 있는 감독이 본인의 가치를 뛰어넘는 다는 것도 참 축하할 일이예요. 김지운 감독님은 전형적인 걸 굉장히 싫어하세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장면마다 미장센이 주는 힘이 얼마나 큰 지 새삼 느꼈어요. 장면들이 잔상에 남는 다는 것, 그걸 전달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감독의 힘이죠. 영화 속 그림과 음악들이 모두 말하고자하는 정서를 보여줘요. 대사 설명 하나 없이 보여준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극 중 공유는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 역을 맡아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 역의 송강호와 인간 대 인간으로서 교류를 한다. 적인 듯 동지인 듯 묘한 텐션을 유지하는 두 사람의 관계가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핵심 요소다. 처음에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로 비춰지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그 경계선은 무너진다.

“제 역할은 하나의 신념으로 올곧게 가는 인물이에요. 이정출 중심의 영화라는 말도 있지만, 저는 연기하는 사람으로서 이 영화가 총체적으로 말하고자하는 메시지에서 제가 하는 역할이 꼭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제 롤은 그런 김우진을 올곧게 잘 표현하고 이정출을 갈등하게 만드는 거죠.”

“김지운 감독님이 캐릭터를 평면적으로는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불친절하다고 생각이 들 수 있겠죠. 이정출에 비해 김우진은 단조로운 인물일 수 있어요. 하나의 신념을 가지고 가는 인물이기 때문에. 하지만 의열단 중 한 명이 밀정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면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을 거예요. 저는 과묵한 김우진을 보고 끝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으면 했는데, 이정출에게 읍소하기도 하고 약간은 수동적인 면도 있더라고요. 그게 김우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인간으로서 의심과 흔들림이 모두 있었겠죠. 그걸 안 후 김우진은 가장 현실적인 도박을 한 것 같아요.”

이정출에게 밀정이 존재한다는 말을 듣고 김우진은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의열단과 밀정을 솎아내려는 행동을 취하며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뇌한다. 양자의 입장에 모두 서야하는 이정출도 그렇지만, 김우진의 내면 갈등도 만만치 않다. 언뜻 보면 정의만을 쫓는 단편적인 인물일 테지만 의심, 경계, 자책, 분노 등으로 복잡다단하다.




“‘밀정’ 자체가 저에게는 까다로운 영화였어요. 지인들이 영화를 본 후 전한 ‘영화에 얼마만큼 고민했는지 보였다’는 말이 가장 보람됐어요. 이정출은 너무너무 어려운 역할이죠. 그걸 누구나 시도는 할 수 있겠지만 정작 전달하기는 쉽지 않겠다고 여겼어요. 송강호 선배님이 연기한 역할을 본 다음에 저보고 연기하라면 엄두가 안날 것 같았어요. 옆에서 바라보는데 자기만의 색깔을 놓지 않으면서 연기하시더라고요. 선배님만의 블랙코미디를 보고 저는 박자나 호흡을 어떻게 저렇게 잘 다룰까하고 감탄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영화계에서 내로라하는 거장들과의 합이었기 때문이다. 25년간 ‘넘버 3’ ‘조용한 가족’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살인의 추억’ ‘괴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박쥐’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사도’ 등 30여 편의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국민배우 송강호와 98년부터 ‘조용한 가족’ ‘반칙왕’ ‘장화, 홍련’ ‘달콤한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악마를 보았다’ 등 굵직한 작품을 내놓으며 국내와 해외 모두에서 작품성으로 손꼽히는 감독이 된 김지운이다.

“밀정을 향한 마음이 두 분을 향한 마음이었죠. 압박이 크기는 했어요. 이 영화에서 이정출에게 자극을 주고 건드리면서 제가 그 중심에 있잖아요. 저는 그 생각만 했어요. ‘이정출이 고민하고 갈등하게 만들자’는 생각만. 이정출과 김우진의 관계가 극의 중심 정서이기 때문에 제가 삐끗하면 텐션 자체가 존립이 안 될 수 있고, 이 영화가 가진 큰 구조까지 무너지겠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영화 전반의 흐름에 손실을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요.”

“모든 후배들이 송강호 선배님과 같이 호흡을 맞추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 무게를 감당하고 견뎌내는 책임감에 대한 부담이 있었죠. 아마 다른 후배들도 그런 마음이었을 거예요. 김지운 감독, 송강호 선배와의 작업을 통해 아주 좋은 과외를 받은 것 같아요. 돈을 받고 배운 거죠.(웃음) 끝나고 나니까 저도 깨우침을 받은 것 같았어요. 현장에서 송강호 선배님은 ‘잘하면서 엄살이야’라고 하셨지만, 저는 스스로를 옥죄었어요. 처음에는 이 작품을 김지운 감독님이 준비한다는 걸 모르고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처음에는 그저 신났는데 촬영이 시작될 무렵 점점 부담이 되더라고요. 저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텐데, 그걸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어요. 좋은 자극이었죠. ‘밀정’을 촬영하며 몰랐던 걸 알게 되는 순간들이 유독 많았어요. 대선배님들과의 작업은 절대적으로 좋다고 후배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그런 자세의 공유가 흡족했던 탓인지 송강호는 최근 인터뷰들에서 공유를 ‘다슬기 같다’고 언급했다. 생경하지만 어딘가 고개가 끄덕여지는 비유다. “다슬기라는 말은 뜬금없었죠.(웃음) 저희끼리 대기실에 있을 때 저보고 ‘다슬기’라며 ‘다슬기는 일급수에만 서식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유머러스하게 칭찬해주신 것 같아요. 제가 없을 때도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하셨대요. ‘공유는 젠틀하다’고. 선배님을 아직 좀 어렵게 대해서 그렇게 돌려 말하신 것 같아요. 작품을 같이 해보니 선배님도 귀엽고 순수함이 있으시더라고요. 먼저 장난도 해주시고. 제가 좀 더 곰살맞게 대할 걸 그랬어요.”




공유에게 올해처럼 바쁜 시기는 없었다. 지난 2월 ‘남과 여’부터 7월 ‘부산행’ 9월 ‘밀정’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영화의 흥행으로 더욱 동분서주하는 나날을 보냈다. 올해 마지막 작품으로는 12월 방영을 앞둔 tvN 드라마 ‘도깨비’(가제). ‘태양의 후예’ 김은숙 작가, 이응복 PD와의 만남, 배우 이동욱, 김고은, 유인나, 육성재, 이엘이 출연진으로 확정되며 일찍부터 하반기 기대작으로 거론되는 중이다.

“영화가 흥행하고서 다들 축하한다고 하는데 너무 바쁘다 보니까 제가 정작 좋아하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더라고요. 제가 좋아해서 선택한 일들이기 때문에 행복하고 기쁜 일도 생긴 것 같아요. 그와 동반되는 공허함도 있는 것 같고요. 다음에는 ‘도깨비’에 또 올인 할 거예요. 김은숙 작가님의 글은, 글로만 봐도 리듬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 하죠. 저를 선택해주신 것에 대한 보답은 제가 연기로 잘 녹이는 것이라 생각해요. SF 판타지 장르라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고민이긴 하지만 제 색깔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도깨비’에는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알콩달콩함이 있어요. ‘로코’의 감을 다시 일깨울 수 있지 않을까요. 고은 씨에게 도움 많이 받아야죠. 동욱 씨는 2개월간 제 군대 후임이었어요.(웃음) 그 때 그 친구의 민낯을 봤는데 의로운 친구라 생각해요. 같이 작품을 하게 돼 좋았죠. 동욱 씨와 약간의 브로맨스가 그려지기도 할 테니 기대해주세요.”

‘천만 배우’ ‘2016년은 공유의 해’라는 수식어를 달게 된 공유는 관객들 기대치에 끊임없이 부응 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있다. 그저 시청률이나 수치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송강호 선배님도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이 언젠가부터 붙었는데, 선배님도 사실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관객들에게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으로요. 드라마를 오랜만에 하는 부담감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좋으니 이전의 저와는 다르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부담감이 해로운 건 아니라 생각해요. 잘 하고자 하는 초석인 것 같아요.”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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