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탐구]'남영동1985'-'26년', 1980년대 대한민국의 어두운 과거를 들추다

기사 등록 2012-11-26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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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조정원기자]‘그 날’의 진실을 밝힌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메시지들 던지며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들고 있다. 30~40대 이상의 대중들만이 겪은 5.18 광주 민주화항쟁, 군사독재 시절 공공공연하게 자행돼 왔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작품인 ‘남영동 1985’(감독 정지영)과 ‘26년’(감독 조근현)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이 영화들의 배경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상영 중인 ‘남영동 1985’는 1985년, 공포의 대명사로 불리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22일 간의 잔인한 기록을 담은 실화로 故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를 영화화했다.

故김근태 의원은 자신의 책 ‘남영동’에서 고문을 당했던 당시의 상황과 남영동 대공분실을 ‘인간도살장’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아무 양심의 가책 없이 잔혹한 고문을 일삼는 수사관들에게 굽히지 않고 진술을 거부하지만, 인간이 버틸 수 없는 극한의 고문은 한 사람의 신념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릴 만큼이었다.

이 작품은 인간의 끔찍한 야만성과 비인간성을 증언하며, 고문이 인간의 육체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파괴하는 끔찍한 행위임을 고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온 우리의 현대사에 감추고 싶은 상처를 들춰내고 있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에게 가했던 입에 담기도 힘든 끔찍한 폭력들. 특히 국가의 이름하에 자행된 일들은 동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던 관객들에게는 충격이요, 당시를 경험했던 관객들에게는 꽉 쥔 두 손을 펴지 못하게 할 만큼의 일이었다.

당시 사상이 의심되는 자는 여지없이 각 지역 고문실로 연행돼 고문을 받았고, 스스로를 빨갱이라고 진술한 뒤 반송장이 되거나 죽어서야 고문실을 나갔다. 이 모든 일이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된 일이었다.

정지영 감독은 고문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불행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 ‘김종태’라는 인물과 시대가 만들어 낸 괴물 ‘이두한’이라는 가상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왔던 ‘부러진 화살’ 이후 정지영 감독의 또 다른 작품 ‘남영동 1985’가 주는 메시지에 관객들로 하여금 극장가로 발걸음을 옮기게 만들고 있다.

오는 29일 개봉을 앞둔 또 다른 작품 ‘26년’은 1980년 5월 광주의 비극과 연관된 조직폭력배, 국가대표 사격선수, 현직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이 26년 후 바로 그날,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펼치는 극비 프로젝트를 그리고 있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향해 대한민국 국군들이 상부의 지시를 받아 자행했던 이 무자비한 학살극은 확인된 사상자만 4,122명으로 6.25 전쟁 이후 가장 큰 비극이다. ‘26년’은 당시 군의 권력자가 이 만행을 발판으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사실을 전하며 그날의 상처를 담은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영문도 모른 채 시위 현장에 끌려왔다가 민간인을 죽이게 된 계엄군, 누나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던 어린 동생, 아버지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어머니를 눈에 담아야만 했던 한 소년, 자신의 이름만 남기고 밖에서 쏘아진 총탄에 운명을 달리한 어머니와 이로 인해 반 폐인처럼 변한 아버지와 단 둘이 살게 된 소녀 등 그날의 참상은 양쪽 모두에게 끔찍한 일임을 전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주범인 ‘그 사람’은 2중, 3중으로 겹겹이 둘러싼 보안 속에서 호화로운 나날을 지내고 있다.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은 29만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풍자극을 벌이면서.

1980년 5월, 그날의 희생자들은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이 ‘그 사람’에게 원하는 것은 그날에 대한 사죄였다.

‘26년’은 그날의 비극이 아픔을 재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아픔과 상처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2008년부터 2012년 까지 4년 동안 몇 차례에 걸쳐 제작시도를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던 이 작품은 관객들의 간절함을 담아 ‘제작두레’ 방식으로 개봉됐다. 이는 대기업의 자본 없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한국영화 산업구조의 변화를 꾀하기 위한 돌파구이자, 모두가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는 의의를 되새기고 있다.

‘남영동 1985’와 ‘26년’은 어떤 방향에 있어서든지 다가오는 대선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지영 감독도 이미 이러한 의견을 피력한 적 있으며, 두 영화에 모두 출연한 배우 이경영 또한 “어느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일들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들이었지만, 영상으로 재구성된 ‘남영동 1985’와 ‘26년’이 전하는 힘 있는 메시지에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더불어 그날의 아픔을 간직한 관객들에게는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도록, 충격적인 과거를 처음 접한 젊은 관객들에게는 자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조정원기자 chojw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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