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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스타칼럼-이병헌] 2부. 그리운 아버지..못다한 영화 이야기들

기사 등록 2013-07-2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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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속보팀]국내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로 천만 배우의 반열에 오른 뒤, 벌써 세 번 째 할리우드 영화 ‘레드: 더 레전드’를 통해 반전 매력을 드러낸 이병헌의 거침없는 행보가 눈길을 끄는데요. 이병헌은 극중 'R.E.D'의 리더인 브루스 윌리스(프랭크 역)를 노리는 최고의 킬러인 '한' 역으로 등장, 그 동안 아시아 배우들의 전형으로 자리 잡은 단순한 악역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지만 때론 무언가에 열렬히 집착하는 어딘가 2% 부족한 허당스러운 모습까지 더해 관객들에게 반전 매력을 선사하고 있죠. 네이버 스타칼럼을 통해 배우 이병헌의 인간적인 매력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편집자 주

# 생각지도 않았던 배우의 길

전 어렸을 적부터 배우가 꿈이 아니었고, 되고 싶단 생각도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KBS 공채 14기 탤런트가 된 것도 주변의 권유에 의해 지원한 것이죠.

대학교 재학시절 저는 군에 입대하려고 입영원서를 내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어요. 하루는 친구 어머니가 우리 집에 와서 저에게 KBS 공채 탤런트 원서를 주며, 배우에 도전 해볼 것을 권유했어요.

저는 친구 어머니께 “아이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는데 제가 어떻게 배우를 해요”라며 손사래를 쳤죠. 그러자 제 어머니는 “야~! 우리 집에서 배우가 나올 것이란, 기대는 하지도 않는다. 넌 얼굴도 못생겼는데 뭔 배우니?”라며 제게 핀잔을 줬어요. 그러면서도 제 어머니는 “그렇지만, 원서를 가지고 온 분의 성의도 있고, 남자가 태어나서 이것저것 경험 해보는 것도 좋다. 탤런트 지원을 언제 또 해보겠냐”라고 제안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전 사진학을 전공하는 제 친구에게 프로필을 촬영해달라고 한 뒤 서류전형에 응시했죠. 운이 좋게도 최종 전형까지 한 번에 합격했어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룬 성과였지만, 다른 합격자들과 전 마음가짐이 달랐죠.

그들은 정말 치열하게 배우가 되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있었지만, 전 그때까진 배우에 대한 별다른 끌림이 없었어요. 연수기간 중에도 잘하지 못하면 중도하차 시킨다는 소리에 다른 합격자들은 긴장감이 팽배했는데, 전 ‘내가 뭐 배우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닌데’란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있었죠.

그렇게 1991년 KBS 14기 공채 탤런트로 배우로서의 길을 걷게 됐어요. 정말 생각지도 않았던 직업을 갖게 돼 저 역시 신기했어요. 전문적으로 배우를 하려고 공부 한 것이 아닌데도, 데뷔 때부터 여러 드라마에 출연하며 차츰 인지도를 쌓아가게 됐죠.

그렇게 한해, 두해가 지나며 배우란 직업에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배우라면 내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으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일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만큼 매력에 푹 빠졌던 것 같아요.

정말 그리운 내 아버지

# 그리운 내 아버지..‘할리우드 키드’의 태동

그렇게 친구 어머니가 권유해줘서 배우의 길을 가게 된 것이죠. 어떻게 보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봐도 무방해요. 하지만, 요즘 문득, 제 주변이나 매체를 통해 유독 아버지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 같아요. 그 아주머니 이전에 작고하신 제 아버지가 저를 배우의 길을 가게끔 인도해준 것 같다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렸을 적에 아버지와 함께 주말의 명화를 비롯해 TV에서 해주는 무수한 흑백영화들을 봤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저에게 ‘저 배우는 이름이 000인데, 이번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고, 연기력이 뛰어나’ ‘저 여배우는 누구의 남편이고, 영화에 어떻게 캐스팅 됐으며, 눈빛연기가 참 아름다워’라며 마치 영화 평론가처럼 저에게 끊임없이 설명해주셨어요.

저는 그때 초등학생이었고, 완전히 꼬마였는데 말이죠. 꼬마가 뭘 알겠어요. 영화의 내용과 배우의 이름이 뭔지 아무것도 몰랐죠. 그저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면서 설명 듣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했던 것 같아요. 또 아버진 절 극장에도 많이 데리고 가셨어요. 아마도..‘아버지 덕분에 제가 무의식 속에 영화와 극장이라는 판타지를 굉장히 크게 갖고 있었는데..성장하면서 그걸 몰랐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야 생각해보니 말이죠.

영화만큼이나 극장이란 공간도 무척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마치 영화 시네마 천국의 토토와 알프레도 아저씨처럼, 저 역시 아버지를 존경하고 잘 따랐던 것 같아요. 그 영화의 전체적인 정서처럼 말이죠.

어렸을 적 극장을 추억하면 그땐 좌석표도 없었고, 그냥 선착순으로 들어가서 앉으면 됐죠. 심지어 인기가 많은 영화는 좌석표가 매진돼 입석으로 보고도 했어요. 그러면 오징어나 땅콩, 영양갱 등 주전부리 할 수 있는 식품들을 파는 분들도 돌아다니시고요.

제가 4살 때 영화 ‘빠삐용’으로 처음 봤는데, 저를 포함해 어린애들은 서서 영화를 보다가 오줌이 마려워도 참았어요. 잠시 화장실에 갔다가 몇 장면 놓치는 게 싫었기 때문이죠.

극장 안에는 여러 가지 냄새가 뒤섞였던 것 같아요. 오징어와 땅콩냄새, 아이들 오줌 지린내, 시멘트 냄새 등등 말이죠.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극장에 들어가면 그 내음이 제 콧속으로 들어오고 저는 그때부터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어요. ‘영화가 좋은 건지, 극장이 좋은지’ 모를 정도로 말이죠. 조건반사 같은 것 같아요.

어렸을 적 제 아버진 저에겐 히어로 같은 존재였어요. 어머니와는 정말 상반된 이미지였죠. 저의 어머님은 제가 앞으로 가정을 이끌어야 할 가장이고, 큰 아들이었기 때문에 무척 저를 엄하게 키우셨거든요. 아버진 그런 저를 항상 다정하게 감싸 안으셨어요. 일반적인 가정과 정반대였죠. 하하하. 철없는 어린 시절엔 아버지는 정의를 수호하는 히어로였고, 어머니는 악당처럼 느꼈어요.

3개월 동안 매일 생선 15마리 먹고, 운동한 몸매에요..^^

# 고마운 딘 패리소트 감독님과 사랑하는 가족들..

최근 개봉된 ‘레드: 더 레전드’ 촬영 당시, 감독님이 하루는 저에게 ‘당신의 어릴 때 사진이 필요하다. 아버지와 같이 찍은 사진 없냐?’고 물어봐서 전 유년시절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감독님께 보내드렸죠.

영화 속 브루스 윌리스가 제 비행기에 들어와서 제 사진을 들어서 보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그 장면에 쓰일 사진이었더라고요. 촬영이 바쁜 시기여서 한참을 잊고 지냈죠. 촬영 말미에 비행기 세트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제가 감독님께 보내 준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했죠. 정말 울컥하더라고요.

제가 브루스 윌리스에게 “어디부터 찢어줄까”라고 한국어로 대사하는 장면입니다. ^^

그 즉시 감독님을 찾아가서 아버지가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 말해줬어요. 저는 감독에게 “얼마 전 할리우드에서 핸드 프린팅을 했다. 당시 ‘아버지는 할리우드 마니아였다. 15년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 내 곁에 없지만 어딘가에서 나를 정말 자랑스럽게 지켜보실 것이다’라고 소감을 말했다”라고 전했죠. 그리고 전 감독님에게 또 “아버지 사진이 영화에 나온다니 정말 감동스럽다”라고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어요.

그러자 감독님은 ‘난 당신의 이야기가 더 감동스럽다. 엔딩 크레딧 스페셜 땡스에 아버님 이름을 넣어드리겠다. 스펠링을 불러 달라’라고 제게 말했죠. 그때 또 감동했어요. 최근 뉴욕에서 있었던 ‘레드: 더 레전드’ 정킷에 갔는데 감독님이 아버님 성함을 엔딩 크레딧이 아닌 메인 연기자 타이틀에 넣어주셨죠. 제 이름 바로 밑에 아버님 성함이 나와요. 정말 감독님은 제게 여러 번 감동을 주셨죠.

이후 영화의 편집이 진행됐는데 편집하시는 분이 아버지와 제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오는 장면을 삭제하려고 했죠. 영화 전개상 그렇게 필요 없다고 판단했나 봐요. 그러자 딘 패리소트 감독님은 ‘다른 건 다 빼도 저건 못 뺀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해주셨어요. 정말 인격적으로 굉장히 훌륭하다고 느꼈죠. 저 말고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늘 한결같이 사려 깊으세요. 이 감독님은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늘 저에게 엄하고 무뚝뚝하셨던 어머니도 이번 영화는 남다르셨던 것 같아요. 브루스 윌리스, 안소니 홉킨스, 존 말코비치, 헬렌 미렌 등 이름만 들어도 전설 급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 말이죠. 이제야 제가 할리우드 배우가 됐다는 걸 느끼시는 것 같아요. 사실 어머니는 ‘지아이조’ 촬영 당시 제가 ‘채닝 테이텀, 시에나 밀러와 연기하고 있어요’라고 말해도 시큰둥하셨거든요. 어머니 세대는 그들을 잘 알지 못하잖아요. 하하하.

가족들도 ‘레드:더 레전드’를 봤는데, 다들 가슴 뭉클해하더라고요. 어머니 역시 눈가가 촉촉이 젖으셨더라고요. 울컥한 느낌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에게 ‘아버지도 자신이 사진이 스크린에 나온 걸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라고 제 등을 토닥여주셨어요.

‘레드: 더 레전드’의 주역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들입니다.(오른쪽 위부터 시계반대 방향으로 존 말코비치, 브루스 윌리스, 안소니 홉킨스, 헬렌 미렌, 메리-루이스 파커)

# 가장 이상적인 배우관과 현실과의 괴리..

요즘 후배들을 위해 강의를 할 자리가 많아요. 저는 그런 자리가 아직도 낯설어요. 애초에 배우가 꿈이 아니었고, 체계적으로 연기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교과서 적인 말들을 해줄 수가 없었죠. 그래서 전 제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말을 해줘요. 내 안에 아직 소년성이 있다면 그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철 들으려 노력하지 말라고요..

제가 ‘지아이조1’ 스티븐 소머즈 감독님의 집에 방문한 적이 몇 번 있었어요. 감독님의 개인공간에 애들이 노는 놀이터가 꾸며져 있더라고요. 전 처음에 감독님의 아이들이 노는 곳이구나 생각했더니 아니었더라고요. 그곳은 감독님의 놀이터였어요. 나이가 성인이 됐는데도 이렇게 놀이터가 있다는 건 아직 소년성을 버리지 않은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기발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와 감독들처럼 창의력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 소년성을 없애거나 창피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나라 문화는 ‘이제 철 좀 들어라!’ ‘옆집 아이는 안 그런데 넌 왜그러니?’라며 핀잔 받잖아요. 늘 이렇게 듣고 자라온 제 후배 연기자들에게 와 닿을 것 같아요.

법적으로 위배되지 않는 한 일탈이라는 것도 경험해봤으면 좋겠어요. 일상에서 빠져 나오는 행위일지언정, 남들이 보기에 이상하더라도 한번 경험해보라는 것이죠. 내 감정이 이끄는 대로 하는 것은 중요해요.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는 도덕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엉뚱하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행동할 때 힘든 점도 많을 거에요. 저 역시 연기자로서 도덕적인 잣대로 창의적인 생각이 제한 받을 때 힘들었거든요. 세상과 타협해서 여러 가지 지키면서 살려고 하지만, 후배들에겐 내 이상적인 배우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해요.

제 이야기 재밌었나요? 늘 그랬든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

제 긴 얘기를 읽어주신 네이버 스타칼럼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새 영화 ‘레드: 더 레전드’ 많이 사랑해주시고요.

영화 이후에 저는 오는 8월 10일 현명하고 함께 있으면 항상 웃게 만들어주는 좋은 사람을 만나 인생의 또 다른 시작의 날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배우로서의 본업도 충실히 하며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저는 다시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더 좋은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