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이병헌이 논한 ‘마스터’와 ‘내부자들’ 차이, 그리고 現 시국
기사 등록 2016-12-1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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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이젠 어떤 범죄 스릴러를 봐도 시시할 거예요. ‘마스터’ 제작을 3년 전에 했는데, 최근 사회 현상과 이야기가 들어맞다니 소름끼치더라고요.”
지난 화제작 ‘내부자들’(2015, 감독 우민호) 못지않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영화 ‘마스터’(감독 조의석)를 들고 온 배우 이병헌의 발언이 의미심장하다. 이번 영화에서 이병헌은 8년 만에 악역으로 희대의 사기꾼 진회장 역을 열연했다. ‘나쁜 놈’이 돼보니 ‘진짜 나쁜 이들’의 검은 속내를 꿰뚫어보게 된 것 같았다. ‘내부자들’에서는 정부와 기업, 검사, 심지어 언론까지 사회를 움직이는 큰 손들의 의리와 배신을 고밀도로 그려냈다면, ‘마스터’에서는 사회 지도층을 이용해 조 단위로 사기를 치는 진현필 회장(이병헌)과 그를 쫓는 검사 김재명(강동원), 그 사이를 오가는 박장군(김우빈) 세 명이 두뇌 플레이를 펼친다.
이슈데일리는 13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한 카페에서 ‘마스터’로 또 한 차례 연기 변신을 한 이병헌과 작품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마스터’가 ‘내부자들’과 많이 비교되고 있는데, 아무래도 현실을 반영하고, 그 현실을 파헤치다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영화 자체의 색깔과 템포는 굉장히 다르죠. ‘내부자들’이 가져가는 무겁고 음침한 지점과 ‘마스터’에서의 경쾌하고 빠른 템포의 지점이 다르기 때문에 관객층이 다를 거라 생각해요. ‘내부자들’을 불편해했던 관객들도 있을 텐데 둘이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내부자들’이 청불이라 못 봐서 아쉬운 나이 어린 분들은 이번 영화로 새롭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제작 의도도 그렇지만, 이 영화는 오락액션 영화예요. 상업적인 부분을 생각하고 재미있는 오락영화를 만들려고 했죠. ‘내부자들’처럼 사회를 통렬하게 비판해보자는 의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신나게 즐기는 장르로 잡아놓고 촬영했고, 그게 이 영화의 의도이자 장점이에요.”
‘마스터’는 건국 이래 최대 규모의 조 단위 사기 사건을 둘러싸고 이를 쫓는 지능범죄수사대와 희대의 사기범, 그리고 그의 브레인까지 그들의 속고 속이는 추격을 그린 범죄오락액션 영화로, ‘내부자들’보다 한결 톤 업 된 것이 특징이다. 이 가운데 이병헌은 수만 명 회원들에게 사기를 치며 승승장구해 온 원네트워크의 대표이자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로 악의 축을 담당한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부터 조의석 감독이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마스터’가 최근에 벌어지는 사회 문제들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많은데, 일단은 픽션이에요. 마지막 부분은 완전히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죠. 참고를 하긴 했지만, 굳이 실존 인물 조희팔 회장을 따라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는 암묵적으로 조희팔 얘기를 잘 안 꺼내왔잖아요. 이 영화를 계기로 수면 밖으로 나왔는데, 캐릭터를 연구하다보니 실제로 위에 어마어마한 분들까지 연결이 돼 있더라고요. 장부가 있고, 그 사람의 돈이 안 간 곳이 없고 사회 전반에 깊고 넓게 뿌리 박혀 있더라고요. 금융사기를 이야기해도 비리까지 닿을 수밖에 없는 얘기였어요. 이전 영화들이라면 범인을 찾아낸 순간에 모든 얘기가 끝났겠지만, 이걸 공론화 시킬지 고민하는 부분까지 나오잖아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잔상으로 남은 ‘내부자들’ 속 안상구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을 돕는 정치깡패로, 더 큰 성공을 원해 이들의 비자금 파일로 거래를 준비하다 발각된 후 폐인으로 전락했다. 작품의 성격이 얼핏 유사하다보니 이번 ‘마스터’의 조희팔과도 많이 비교되고 있다.
“‘내부자들’ 안상구도 여러 가지 모습을 변화를 주면서 보여주잖아요. 이번 작품에서도 캐릭터가 많이 변화해서 비슷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내부자들’에서는 안상구가 20년 동안 잘 나갔을 때부터 망가졌을 때의 변화를 보여줬고, ‘마스터’에서는 변화라기보다 변신을 하는 거죠. 줄곧 도망치는 입장이다 보니까 머리 길이부터 머리색, 수염모양, 의상 등 스스로를 위장하듯 변신을 하죠. 말투에서 오는 기시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진회장은 회사에서 그렇게 친절한 신사이다가 자기가 유일하게 내 식구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건방진 말투를 쓰잖아요.”

“안상구와 진회장은 캐릭터 밝기도 차이가 나죠. 진회장은 못된 짓만 하고 못된 생각만 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유머를 구사하지 않는 설정으로 갔어요. ‘내부자들’에서는 안상구와 우장훈 검사로 친근함을 줘야했기에 유머를 가미했죠. 이번에는 오히려 악이 온전히 전달되도록 친근감이 들지 않게 연기했어요. 영화에서 필리핀식 영어를 쓰는 건 제가 제안한 아이디어인데, 워낙 진회장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말투와 마음가짐, 눈빛이 모두 달라지면서 변화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랬어요. 그렇게 말하는 게 진회장의 비즈니스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이었을 거예요. 직접 현지 분들이 대사를 읊어주면 그걸 가지고 연습했어요.”
‘내부자들’에 명대사 “모히또 가서 몰디브 마시자”가 있다면, ‘마스터’의 명대사는 무엇일까. “극 중에서 진회장 대사에 의도적으로 ‘사기꾼’이라는 표현을 많이 넣었어요. ‘세상에 얼마나 사기꾼이 많은 줄 아냐’는 말을 하는데, 정작 자신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모르는 거죠.” 이와 함께 공개하는 진회장의 비밀 하나. “에필로그에서 갑자기 진회장이 젊어 보일 수도 있을 텐데, 감독님이 애초에 나이를 설정하지 말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끝까지 진회장 나이를 알 수 없어요.”
‘마스터’가 화제를 모으는 이유로는 이병헌 주연에 ‘감시자들’(2013)로 완성도 있는 연출력을 인정받은 조의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김우빈, 강동원의 조합으로 각각 20, 30, 40대를 대표하는 A급 배우들의 화려한 라인업 결성이 시선을 끌어당기지 않을 수 없다.
“동원 씨는 스크린과 실제 모습에서 되게 다른 면이 많이 보여요. 실제로도 되게 쿨하고 멋있죠. 처음 함께 작품을 하면서 안 사실이, 사투리를 심하게 써서 놀랐어요. 영화 고사를 지낼 때 제작사 분이 무슨 무슨 신을 내려달라고 하는데, 우빈 씨가 ‘표준어의 신이 내리게 해달라’고 한 게 생각나네요.(웃음) 평상시에는 더 진한 사투리를 써요. 절친인 배정남 씨와 둘이 앉아서 대화 나눌 때는 정말 심하게 써서 부산에 와 있는 느낌이었어요. 우빈이는 진짜 아주 예의바르고 의리 있고 주변 모든 사람들을 챙기는 친구예요. 저런 동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죠.”
“굳이 따지자면 이번 ‘마스터’로 가장 수혜를 입은 건 우빈인 것 같아요. 박장군은 진회장과 김재명 사이에서 파생될 수 있는 인물인데, 초반에 시나리오를 봤을 때 되게 통통 튀는 인물이었어요. 그 인물이 없었으면 영화가 경쾌하게 흘러갈까 싶을 정도로요. 자칫 그 역할을 맡는 배우가 완전히 오버해서 연기해버리면 역효과가 날 수 있었을 텐데 우빈이가 선을 넘지 않는 정도로 애드리브도 잘 했어요. 자기 몫을 잘 해낸 거죠. 우리 세 사람은 각자 다 스타일이 달라요. 어떻게 이렇게 모였을까 싶어요. 이번 영화에서 달수 형님 빼고는 다 처음 같이 연기해보는데 신선한 긴장감이 있었어요. 좋은 시너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싶었는데 잘 나온 것 같아요.”

이 영화는 범죄오락액션 장르를 충실히 수행하는 만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폭발신, 카 체이싱 등 화려한 액션으로 가득하다. 특별히 필리핀 로케이션 촬영으로 이국적인 풍광까지 더해져 신선한 자극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현지 촬영장의 환경은 미국 뉴욕의 할렘가 못지않게 위험천만했다고.
“그 자체가 긴장감이고 어려움이었어요. 곳곳에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었죠. 마닐라 수도 한 가운데 어떻게 그런 지역이 있을 수 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예요. 그 지역 사람들은 거의 다 홈리스로 보였는데, 그 중에 9살짜리와 10살짜리의 총격전이 있었고 결국 둘 다 죽는 사건이 있었다더라고요. 그 곳에서는 사제 총을 만들 수 있다네요.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지역인 거죠. 저희가 촬영할 때는 그렇게 시끄러운 일은 없었지만, 메인 촬영장은 돼지 도살장이어서 돼지 멱따는 소리, 바닥에 돼지 피가 고인 환경에서 습한 날씨와 함께 촬영 했어요. 날씨 탓에 돼지가 금방 부패해서 되게 징그럽고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마스터’ 촬영 당시의 기억을 줄줄 쏟아내는 이병헌을 보고 있자니 작품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힘든 작업 속에서 완성도 있게 만들어진 자신감 또한 느껴졌다. “자신감이 강해보이는 건, 어쩌면 위축되기 싫어서 불안한 거 보이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자신감을 찾으려 하는 지점은 있어요. 의기소침해 있을 때 더 그렇죠.”
극 중 워낙 다양한 모습을 겸비한 진회장이다보니 어떤 면에서 닮았는지 궁금했다. “딱히 크게 닮은 부분은 없는 것 같은데 때에 따라 다른 마음가짐과 말투를 사용하는 것 같기는 해요. 보수적으로 배워서 그런지, 데뷔 당시에는 선배님들이 ‘카메라를 70, 80세 된 어른이라고 생각하라’ 했어요. 예의를 갖추라는 말이죠. 요즘에는 카메라 앞에서 대부분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지만, 저는 예전에 그렇게 배운 부분이 커서 요즘도 카메라 앞에서 경직되는 게 있어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식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평상시에는 저도 터프하게 툭툭 잘 말하는 편이에요.”
이병헌은 ‘마스터’를 소개하며 현실에 빗대 냉정한 안목을 보이기도 했다. ‘내부자들’이 1년 전에 개봉했음에도 지금 시점을 예견한 영화라는 웃지 못 할 소리를 듣고 있는 와중에 ‘마스터’까지 현실 속 이야기를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라는 게 현실보다 늘 기발하고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것인데, 이제는 영화에서 경악함을 느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이제부터는 아니길 바라요. ‘마스터’에는 잘 선택한 템포와 경쾌함이 있어요. 이런 템포가 아니었다면 현실과 너무 비교 당했을 거예요.”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제공)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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