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판도라’ 김주현, 긴 공백기만큼 단단한 ‘내공’과 ‘의식’으로

기사 등록 2016-12-0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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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데일리 한해선기자] 배우 김주현은 옳고 그름에 판단이 명확하다. 올 상반기 SBS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 공개 오디션에서 1800: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그녀’로 낙점됐지만, 이후 최종 출연이 불발됐다. 누가 봐도 최고의 기회를 내려놓은 터라 속상한 마음도 컸겠지만, 곧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로 얼굴을 내밀며 뚜렷한 가능성을 입증했다.

개봉 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판도라’. 사상 초유의 원전 사고를 대한민국 최초로 다룬 이 영화는 국가 재난 발생시 밝혀질 법한 정부의 안일한 태도와 구조의 문제를 고발한다. 박정우 감독 스스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전한 만큼 배우들까지 외압을 감내하고 출연을 결정했다. 김주현 역시 용기 있는 선택을 한 하나의 국민이자 배우였다.

제작 기간 4년을 거쳐 완성된 ‘판도라’의 여주인공 김주현과 이슈데일리의 인터뷰가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됐다.

“항상 오디션이 주어지면 마지막인 것처럼 임했어요. 이번에도 오디션 자체에 큰 의의를 뒀죠. 시나리오 보고 와 닿아 참여하고 싶었어요. ‘판도라’ 같은 영화는 오디션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께서 빠른 기간 안에 저를 캐스팅해 주셨고, 촬영 때 코치도 많이 해주셨죠. 제가 이 영화에 대해 ‘성장통’이란 표현을 썼는데, 저 자신에게 있어서도 많이 배우고 성장한 작품이에요. 선물이기도 해요. 촬영하며 제 자신에 대한 부족함도 깨우쳤고요.”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한반도를 위협하는 원전 사고까지 예고 없이 찾아온 대한민국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사투를 그린 작품이다. 김주현은 주인공 재혁(김남길)의 연인이자 발전소 홍보관 직원인 연주 역할을 맡아 원전 마을 사람들의 피난을 책임지는 연기를 펼쳤다.




“연주와 제 내면은 비슷한 것 같아요. 표현 방식은 달라도 책임감과 내면이 강한 측면에서요. 연주는 직접적이잖아요. 와일드하고. ‘걸크러쉬’라는 표현을 써주시는데, 그 말이 꽤 좋았어요. 감독님과 처음 생각한 캐릭터 목표가 걸크러쉬였거든요. 분장도 그렇게 했고요. 제 안에 그런 면도 있긴 해서 연주의 성격이 공감됐어요. 처음부터 감독님이 이 정도 많은 비중일 거라 말해주셨어요. 감독님이 저를 혼내며 촬영했다는 기사들이 있는데, 감독님 좋으신 분이세요. 세세한 부분 많이 챙겨주시고 신인인 절 많이 도와주셨죠. 많이 감사해요. 연주 캐릭터 상의도 많이 했고, 재난 영화상 장면이 연결돼야 하니 그런 부분도 신경썼어요.”

극 중 비중 있는 역할 소화를 위해, 이전에 자신에게 없던 모습을 연기해야 했기 때문에 촬영 전 특별 훈련한 부분도 있다. 오토바이부터 대형 버스까지 종횡 무진하는 몰고 다니는 모습이 강인하고 당찬 여성으로 일종의 희망을 암시했다.

“오토바이는 자격증이 없어도 된다고 해서 연습만 했고, 극 중 버스 운전신이 커서 운전면허는 1종을 땄어요. 촬영장에 사기를 북돋기 위해 운전면허증을 따자마자 흔들고 다녔죠. 선배님들도 기특하게 여겨주시고. 그 동안 일 보다 쉬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런 작은 연습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예전에 활동을 쉬고 있을 때 엄마한테 ‘링거 맞고 연기 해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어떻게 보면 배우면서 연기한 거니까 큰 현장에서 재미있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사투리는, 예전 주말드라마에서 연변 사투리를 한 적이 있다고 하니 감독님께서 빨리 습득하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오히려 말이 섞여서 나오더라고요. 어려웠어요. 사투리만 하는 게 아니라 재난 영화다보니 감정과 동선 모두 생각해서 연기해야 했으니까요. 영화 들어가기 전에 사투리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말까지 신경 썼죠.”

배우로서 외압의 위험 부담을 안고 작품에 참여하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대형 스케일 재난물에서 사투리, 운전, 감정표현 등 신경 써야 했던 부분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인내를 가지고 끝까지 촬영에 임할 수 있던 이유는 명확했다.




“굉장히 현실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굳이 포장하지 않았어요. 딱히 누구를 그린 영화는 아니었고, 전체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소재 자체가 무겁다보니 잘 어우러지고 싶었죠. 지금 시국과 문제를 그 때 알고서 확대해석해 촬영한 건 아니었어요. 개봉을 앞두고 그런 부분에서 질문을 받으면 마음이 많이 어려워요. 많이들 꼭 보셨으면 좋겠어요. 경각심이 일어나는 영화예요. 아닌 부분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죠. 실제 지진이 일어난 곳의 주민들은 큰 아픔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저 지금 같은 현실에 마음이 아프죠.”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위해선 재난 주민들 면면부터 공적 책임자와 대통령까지 다뤄지며 여느 작품보다 수많은 배우들이 함께 했다. 주인공 김남길부터 김영애, 문정희, 정진영, 이경영, 강신일, 김대명, 유승목 등 내공 있는 연기파 배우들의 대거 집합이다.

“너무 큰 규모의 영화고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이 계셔서 많이 부담되긴 했어요. 김남길 선배님은 제가 시나리오로 예상한 이미지와 실제로도 닮은 부분이 많았어요. 평소에도 재혁과 닮았어요. 거리낌이 없도록 대해주셨는데 감사했어요. 현장에서 많이 챙겨주셨죠. 전화 통화하는 장면 등 신경써야할 장면이 많았는데 많이 도와주시고 제가 신인이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배려해주셔서 촬영하셨어요. 김영애 선배님은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감정이 생기게끔 만들어주셨어요. 현장에서 주눅 들었을 걸 생각해서 마음대로 해보라며 제 편이 돼주셨고요. 문정희 선배님은 옆에서 에너지를 주셨죠. ‘할 수 있어. 왜 못해’라며 기운을 북돋아주셨어요. 가족 같았고 낯설지 않은 촬영장이었어요.”

알고 보면 김주현은 지금이 데뷔시기가 아니다. 이미 2007년 영화 ‘기담’에서 조연 아오이 역으로 시작해 2008년 ‘그녀는 예뻤다’ 단역 여고생, 단편드라마, 2014 ‘모던파머’까지 몇몇 작품을 거쳐 왔다. 스크린에서 안방극장으로 넘어가며 약 4년간의 공백기를 거쳤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상당한 공백기라 할 수 있다.




“부족했죠. 당시에는 연기에 대한 갈증과 열정이 좀 적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쉬고 있어도 나름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여행도 다니고 미술관도 가고. 그러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예전에는 친구들과 맛집도 다니고 많이 놀러다녔지만, 그 당시에는 철저하게 혼자 있으려 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야 잘 나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로지 연기와 배우에 대한 생각만 가졌던 것 같아요.”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깊이 있는 김주현이 존재할 수 있었다. 김주현은 비록 적지 않은 나이임과 동시에 그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으로 중무장돼 있었다. 눈빛과 말투에서 뿜어 나오는 강인한 면모에서 ‘의식 있는 배우’임이 느껴졌다.

“속상해도 계속 곱씹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저에게 도움 되지 않는 이야기는 빨리 떨치려고 해요. ‘엽기적인 그녀’ 같은 경우에도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던 거죠. 공개오디션이어서 더 얘기가 불거진 것 같아요. 작품을 하다보면 엎어지고 캐스팅이 바뀌는 건 흔한 일이기도 하니까요. 재난 영화를 해봤으니 다른 쪽으로 연기해보고 싶어요. 제 나이 대에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어요. 멜로도 좋고 드라마도 좋고요. 어릴 때는 스릴러 영화를 좋아했어요. 제 감성에서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전부터 제 연기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느낀 점은, 마음을 전달하는 일이더라고요. 저도 마음이 동해야 표현이 바깥으로 나가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공감해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도 드라마 보며 공감하고 힐링 하거든요. 그런 작품이 되고 싶어요.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진=이슈데일리 한동규 기자)

 

한해선기자 churabb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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