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를 위법으로 확정하면서 관세 체계와 한·미 경제관계 전반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토대로 구축해 온 트럼프 2기 대외경제 전략에 구조적 조정이 불가피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IEEPA 관세 위법 확정…6대 3 판결
연방대법원은 20일(현지시간) IEEPA가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판시하고, 이를 근거로 한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를 무효화한 하급심 판단을 6대 3으로 확정했다. IEEPA는 국가 비상사태 시 거래·자산 동결 등을 허용하는 법이나, 대법원은 법 문언 어디에도 관세 부과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다며 행정부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판결로 IEEPA를 근거로 한 ‘10% 글로벌 기본관세’와 국가별 상호관세, 이와 연동된 일부 긴급관세(예: 펜타닐 관련 관세 등)는 일괄적으로 위법 판단을 받게 됐다. 다만 무역법 301조나 무역확장법 232조 등 다른 법률에 근거해 이미 부과 중인 품목별·국가별 관세는 이번 판결 대상이 아니어서 즉각적인 효력 상실의 대상이 아니다.
-‘상호관세’는 무효…품목·다른 법 기반 관세는 유지
이번 판결의 직접적 대상은 IEEPA를 근거로 부과된 상호관세와 그에 연동된 긴급관세다.[1] 따라서 IEEPA에만 의존해 부과된 10% 일괄관세와 국가별 상호관세는 법적 근거를 잃었고, 관세당국은 이미 납부된 관세의 환급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관세·통상 전문 로펌들은 아직 ‘청산(licquidation)이 완료되지 않은’ 수입 건에 대해 사후 정정과 환급 청구 절차가 필요하다고 안내하고 있다.
반면 철강·알루미늄, 특정 반도체, 일부 자동차 등은 IEEPA가 아닌 다른 법률(예: 무역법 301조, 232조 조치, 별도 행정명령 등)을 근거로 한 관세가 상당 부분 혼재해 있어 일괄 소멸되지 않는다. 한국산 자동차 관세 등도 IEEPA가 아닌 다른 조치와 결합돼 있어, 세부 품목·법적 근거에 따라 효력 판단이 엇갈리는 ‘복합 체계’가 된 상태다.
-3,500억 달러 대미투자, 명분 약화 속 철회는 난망
한국이 지난해 7월 미국과 합의한 3,500억 달러(약 505조 원) 규모 대미투자는 상호관세 인하와 연계된 ‘정치·경제 패키지’ 성격이 강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15% 수준으로 낮추는 대신, 한국은 선박·방산·첨단제조 등을 중심으로 3,5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상호관세가 무효화되면서 한국 정부와 기업이 관세 인하를 전제로 한 투자 약속을 재검토할 명분은 커졌다. 그럼에도 해당 합의가 법적 구속력이 낮은 양해각서(MOU)와 정치적 약속에 기반해 있고,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대체 관세 인상(예: 한국산 제품 관세 15→25% 경고 등)을 공언해 온 만큼 투자 약속을 전면 철회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워싱턴과 서울 외교·통상 소식통들은 “투자를 뒤집을 경우 더 높은 보복 관세나 비관세 장벽 위험이 커지는 만큼, 한국은 투자 구조·속도 조정 정도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 트럼프 행정부의 ‘플랜 B’…무역법 301조 등 총동원 예고
트럼프 행정부는 IEEPA가 막힌 대신 무역법 301조, 232조, 각종 긴급수입규제(세이프가드) 등 다른 법적 수단을 총동원해 관세 정책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Scott Bent·추정 표기)는 “전체 세수 기준으로 유사한 수준의 관세 수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IEEPA 관세 공백을 다른 형태의 ‘대체 관세’로 메우겠다는 의지를 시사했다.
다만 IEEPA처럼 하나의 비상법으로 전 세계 거의 모든 수입품에 즉각·포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은 다른 법 체계로 단기간에 그대로 대체하기 어렵다.[1][2] 국가·품목별로 서로 다른 법적 근거와 절차를 밟아야 해 정책 설계와 집행 속도가 떨어지고, 국내외 소송 리스크도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금융시장은 ‘단기 안도’ vs ‘중기 불확실성 확대’
JP모건 등 주요 투자은행들은 판결 전부터 “판결이 관세를 전면 유지하느냐, 즉시 무효화하느냐, 중간 단계에서 점진 폐지하느냐에 따라 S&P500이 –1%에서 +2% 사이의 단기 급등락을 보일 수 있다”고 분석해 왔다. 실제로 판결이 나온 20일 뉴욕증시는 관세 부담 완화 기대를 반영하며 수입업체·내수주를 중심으로 상승 출발하는 흐름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시장 전반의 반응은 ‘완전한 환호’보다는 ‘예상된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데 따른 제한적 안도’에 가까웠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IEEPA 관세는 사라지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빠르게 대체 관세를 설계해 세수를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아 중기적으로는 통상·관세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 트럼프 2기 경제 어젠다에 정치적 타격
미국 헌법상 관세권은 의회에 속해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IEEPA를 활용해 의회 동의 없이 사실상 ‘관세 입법’에 준하는 조치를 취해 왔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즉각적·무제한적으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은 트럼프 2기 경제정책의 핵심 축이었으며, 이번 판결로 그의 대표적 통상 레버리지에 구조적 제약이 생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판결 전부터 “대법원이 이 관세들을 뒤집는다면 미국의 ‘황금기’를 위협하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등 강한 불만을 표시해 왔다. 이번 판결이 2026년 중간선거, 나아가 향후 대선 구도에서 ‘사법부 vs 행정부 권한’ 논쟁을 촉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 한국에 커진 ‘투자·보복관세’ 딜레마
이번 판결로 한국은 한편으론 상호관세 무효로 인한 관세 부담 축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3,500억 달러 대미투자의 명분이 약해진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보복성 대체 관세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새로운 리스크에 직면했다. 결과적으로 ‘상호관세는 지워졌지만, 더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관세 체제’가 열리면서 한국 기업과 정부의 대미 통상·투자 전략 수립이 한층 어려워졌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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